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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의지의 유무

ⓒYves Herman / Reuters
ⓒhuffpost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 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며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도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는 입장을 취하였다”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빈손’으로 귀국한 뒤 미국에선 북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비핵화가 물건너갔다’고까지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 지 불과 한달 만의 풍경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단 한번의 ‘실패’가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북한은 정녕 비핵화 의지 없이 ‘과거의 패턴’을 되풀이하며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일까?

중국 고전 <홍루몽>엔 ‘가작진시진역가’(假作眞時眞亦假)라는 말이 나온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면 진짜도 가짜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북핵 30년 동안 북한의 ‘가짜’를 ‘진짜’로 보았기에 북한에 ‘속을 대로 속았다’고 하고, 그렇기에 오늘의 북한이 ‘진짜’로 나와도 ‘가짜’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 뒤 “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되였다”고 했다. 북한의 말대로 흔들린다면 그 의지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읽자면, 북한이 왜 비핵화를 들고나왔는지 그 변화의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변화를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로 분류했다. 양적 변화가 극에 달하면 질적 변화, 곧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양적 변화를 통해 많은 복합적 요소를 쌓아가다 질적 변화를 일으킬 임계점에 이르게 된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임계점, 곧 북한 변화의 임계점에 직면해 있다. 일각에선 이 임계점이 북한이 제재에 버틸 수 없어 타율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양적 변화는 ‘북핵 30년’ 내내 이뤄져왔다. 그 30년은 북한에 너무나 처절한 경험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경제의 절정기를 누렸던 북한은 불과 10년 만에 수천~수만의 아사자가 생겨나는 참혹상을 겪었다. 어찌 보면 10년 동란을 겪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맞먹을 거대한 피해를 입으며 변화에 대한 절박감이 강하게 생겨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하며 북한은 조용하지만 뚜렷한 양적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권력이 아래로 내려가고, 전국에 20여개의 개발구를 설립하는 등 큰 로드맵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실시되며 경제는 불가사의하게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바로 이 변화를 갈망하는 절박감에서 읽어야 한다.

북한은 4월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미사일 실험 중지, 경제 매진’이라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내놨다. 북핵 30년을 되돌아보면 이는 혁명에 가까운 질적 변화를 공식 예고한 것이다. 사실 ‘경제 매진’과 ‘비핵화’는 공진공명(共振共鳴)의 관계다. ‘경제 매진’의 울림이 클수록 ‘비핵화’의 울림도 커지고, 거꾸로 ‘비핵화’가 ‘선도차량’ 구실을 하면 ‘경제 매진’도 일사천리로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이 큰 로드맵이 아니라 일각에서 말하는 ‘꼼수’로 ‘핵 보유’를 이루려 한다면, 북한은 거창한 목표를 접고 다시 지긋지긋한 ‘고난의 행군’ 시절로 되돌아갈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오늘의 한반도 정국은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임계점에 들어섰다.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굳게 하는 것은 북한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몫이기도 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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