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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3일 22시 28분 KST

언니는 웹디자이너 동생의 죽음 6개월 만에 회사의 사과를 받아냈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장례 다음날부터 직장 동료와 퇴직자 30여명을 찾아다녔다.

한겨레
인터넷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과로자살’한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가 지난 4월 17일 오전 ‘에스티유니타스’가 입주한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앞에서 회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한겨레’ 보도로 처음 알려진 인터넷 강의 업체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 장민순씨의 ‘과로 자살’과 관련해, 회사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또 회사는 생전에 장씨가 바랐던 ‘야근 관행 근절’을 약속했다. 장씨가 숨진 뒤 꼬박 6개월 만이다.

에스티유니타스 공인단기·스콜레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윤성혁 에스티유니타스 대표이사가 지난 12일 오후 장씨 유족을 만나 공식 사과했다고 13일 밝혔다. 회사에서 강의 서비스 개편 작업을 맡았던 장씨는 잦은 야근과 업무 과정에서 상사에게 받은 모멸감 등을 호소하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 악화가 장씨의 자살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회사의 사과와 야근 근절 등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장씨의 죽음이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오다 6개월 만에 태도를 바꿔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대책위가 공개한 윤 대표이사 명의의 글을 보면 “짧은 기간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야근 문화와 업무 소통 및 인사 관리의 문제점 등 잘못된 기업문화를 인지하고 개선해야 했지만, 저희 회사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고인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적혀 있다. 회사는 유족과 대책위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해 △법정노동시간 준수 △업무시간 외 업무지시·과외업무 금지 △직원 대상 심리상담 및 치료 지원 △근무환경 및 고충처리를 위한 고충처리센터 운영 등을 약속했다.

회사가 태도를 바꾸는 데는 장씨의 세살 터울 언니인 장향미(39)씨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향미씨는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가 끝난 다음날부터 동생의 직장 동료와 퇴직자 30여명을 찾아다녔다. 동료와 퇴직자들은 “기획이 수시로 엎어지고, 컨펌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야근이 늘어났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고 있을 때가 많았고, 없던 불면증도 생겼다”고 증언했다. 장씨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았다. 이런 증언들이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됐다. 향미씨는 1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증언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동생이 회사에서 겪었던 문제가 무엇인지,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스티유니타스 제공
12일 서울 양재동 인터넷 강의 업체 에스티유니타스 사옥에서 윤성혁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오른쪽)이 지난 1월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장민순씨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동생의 산재 신청을 준비 중인 향미씨는 과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산재인정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자살은 산재승인율이 매우 낮고, 과로 자살의 명확한 개념도 없는 상태다. 그는 “과로 자살을 ‘나약한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피해자에게 ‘당신이 약하기 때문에 맞아서 다친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과로 자살은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이며 피해자를 탓할 게 아니라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향미씨는 게임업체 넷마블의 직원이기도 하다. 넷마블 역시 지난해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의혹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근로감독을 받았고, 이후 야근 관행을 비롯한 회사의 조직문화가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근로감독 전과 후의 삶의 차이를 알았던 향미씨는 동생이 숨지기 전 지난해 12월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며 울다 잠든 모습을 보고, 고용노동부 누리집에 이 회사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을 올렸다. 하지만 고용부는 차일피일 근로감독을 미뤘고, 향미씨는 한달 뒤 동생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했다. 고용부는 지난 4월 ‘한겨레’의 보도 이후에야 회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근로감독을 진행 중이다.

향미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사과를 받아야 할 제 동생은 이미 세상에 없고 수천번 사과를 한들 제 동생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대표이사의 사과를 받았지만 허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면서도 “모든 기업이 동생의 생전 바람대로 야근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지키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회사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