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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2일 15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2일 15시 27분 KST

어느 시흥산 명품 스위스 시계 이야기

SBS 보도화면
huffpost

<빈센트 앤 코>라는 이름의 시계 브랜드가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유럽의 왕실들, 이를테면 영국이나 모나코, 스웨덴 등의 로열페밀리만을 고객으로 상대해온 장인의 브랜드로, 시그니처 모델의 경우 1억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장인이 깎아 만든 무브먼트를 다이아몬드가 알알이 박힌 베젤이 감싸고 악어가죽 스트랩이 둘러진 유럽 왕실의 최고급 선물용 시계. 일반적인 경우, 이 신비롭고 매력적인 브랜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는데 빈센트앤코가 21세기를 맞이하며 100년에 달하는 브랜드의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만들기 위해 폐쇄적인 마케팅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명품 시장에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12년 전인 2006년 드디어 한국 시장에도 기세등등하게 진입했다. 나는 이 브랜드의 한국 론칭 과정을 우연히 지켜보게 됐는데, 당시 군인 신분으로 딱히 할 일이 없는 주말에 패션지 GQ나 에스콰이어를 정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빈센트앤코의 론칭 광고를 몇 달 째 접하고 있던 터였다. 시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런 시계는 프레드릭 콘스탄트 같은 중견 브랜드와는 비교가 안 되는 고급스럽고 과감한 디자인을 표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브랜드가 설명하는 역사와 가치관 뿐만 아니라 외형으로 드러나는 디자인 역시 꽤 즐거운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명품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론칭 행사는 2006년 6월에 청담동의 한 라운지바에서 치러졌다. 브랜드의 역사와 그 규모에 걸맞게 이정재, 최지우, 류승범 등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스타들은 물론 각종 패션잡지 편집장과 에디터, 유명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셀럽들이 총동원됐다. 이 론칭 행사에만 1억4000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유럽의 로열페밀리가 점유하던 어떤 가치를 이제 동등하게 소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고, 그 욕망의 실현을 가시화 하기에 역시 톱스타-아이돌이 제격이었다. 론칭은 성공적이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총 서른두 명의 고객이 서른다섯 개의 시계를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여덟 명의 톱스타가 협찬 형식으로 시계를 제공 받았고 다섯 명의 연예인은 억대의 시계를 직접 구입했다. 당시 여권 중진 의원의 부인도 빈센트앤코의 시계를 구입했다.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모은 유럽 왕실의 보물과 같은 시계 브랜드의 한국 시장 진입은 역설적으로 현대적 의미의 로열패밀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100년의 폐쇄적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100년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하려던 브랜드, 유럽의 왕실이 점유하던 시크릿 브랜드를 동등하게 소유하고 싶어하던 부유층 사람들의 욕망이 섞여 왕실 밖의 왕실을 다시 조명하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실 밖의 왕실, 21세기의 귀족, 새로운 100년 같은 것이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린 것은 브랜드 론칭 행사로부터 두 달 뒤였다. 9시 뉴스에 ‘빈센트앤코‘가 언급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골자를 말하자면 스위스에는 빈센트앤코라는 브랜드 자체가 없었고 이 시계들은 중국산 무브먼트를 사용해 만들어진 시계를 경기도 시흥시의 한 공장에서 부품 형태로 다시 분해한 후 스위스로 가져가 조립해 ‘메이드 인 스위스’로 최종 출하된 시계였던 것이다. 수백만원대에 달하는 시계는 원가 9만 원 정도의 시계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의심하고 있었노라고. 론칭 행사에 스위스 사람은 한 명도 없었노라고. 무슨 스위스 시계가 수리 맡기고 이틀만에 찾아가라는 연락이 오느냐고. 결국 이 모든 것을 꾸몄던 당시 40대 초반의 이모씨는 구속되고 말았다. 경찰은 이 시계를 구입했던 톱스타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기 위해 출석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이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이씨는 2004년부터 고급 미용실이나 홍보대행사와 접촉하며 친분을 쌓았고, 이 친분을 토대로 패션잡지 등에 광고를 냈는데, 2년 만에 업계의 마당발 수준으로 유명해진 이모씨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고를 대행하던 회사는 그저 빈센트앤코라는 회사에서 보내준 내용을 토대로 광고를 만들었을 뿐이고 유명 패션잡지 광고부서 사람들은 그저 계약된 광고를 내줬을 뿐이다. 명품 브랜드의 한국 시장 진출이라는 타이틀은 투자자들을 모으는데도 이용됐는데, 애초에 글로벌 초특급 명품 브랜드가 한국지사를 설립하는 것도 아니고 독점 수입 총판업자와 계약하는 형태로 시장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경계하지 못했던 투자자들은 수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이씨에게 지급해 빈센트앤코의 압구정 매장 설립을 돕는 호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건의 거의 마지막에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따라 붙는다. 굴지의 대기업 CJ그룹의 상무였던 황모씨가 준오헤어의 경영자로 변신한지 불과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姑 다이에나 왕세자비 등 1%의 귀족만 즐기던 100년 전통의 스위스 시계”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것. 그는 이모씨를 만나자마자 이모씨의 브랜드 설명을 듣고 그자리에서 2억원을 건넸고 사흘 뒤 8억원을 더 건넸다. 총 10억원의 투자금을 받은 이모씨는 이 돈으로 압구정에 빈센트앤코 매장을 차린다.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된 황씨는 7월 어느날 이씨에게 논의할 일이 있다며 약속을 잡은 후 동시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준오헤어의 직원에게 ”가서 10억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김씨는 알고 지내던 깡패 세 명과 함께 가서 이씨를 폭행한 후 감금하다 이대 앞 준오헤어 옥상으로 끌고가 옷을 벗기고 다시 폭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씨는 2억3000만 원을 1억3000만 원짜리 외제차와 함께 황씨에게 돌려줬다. 이 사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고 황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불구속 되었다. 물론 지시를 받아 깡패와 함께 이씨를 폭행한 김씨는 구속되었다. 10년이 흐른 후 황씨는 덕성여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여자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이 없다”, “여자들은 회식 자리에서 소주를 먹지 않고 백세주 같은 술을 시키더라”라는 말을 했다가 준오헤어에서 보직해임 됐다.

재미있는 것은 빈센트앤코의 1억대 시계가 실제로 다이아몬드와 최고급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제조 원가가 3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싸구려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00년 이상의 명품이라고 알려진 브랜드들이 내놓는 제품들 중에는 제조 원가가 100만 원을 넘지 않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싸구려가 아닌 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과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진 명품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살포시 놓인다. 컴퓨터의 오류 없는 계산과 기계의 정밀함으로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고장은 날지라도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 컴퓨터와 기계가 깎아낸 톱니바퀴가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깎은 톱니바퀴에 비해 품질이 떨어질 리는 만무하다. 100년의 역사든 200년의 역사든 21세기의 세계 시장을 소화하는 명품 브랜드 역시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장인, 그저 장인이라는 두글자로 대부분의 의심을 쉬이 거둬버리게되는 ‘누군가‘가 만든 톱니바퀴나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떤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모델명이 뭔지 연식이 어떻게 되는지 알 방법이 없는 기계, 그저 기계라는 두글자로 뭔가 쉬이 만만해 보이는 ‘어떤 것’이 만들었는지는 사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바쉐론 콘스탄틴과 애플워치의 사이에서 명품의 기준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나는 그 격의 차이가 오직 시간 뿐이라는 결론과 마주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다주는 느낌들, 이를테면 느낌으로서의 신뢰, 느낌으로서의 존경, 느낌으로서의 고집, 느낌으로서의 철학이 결국 명품이라는 것의 실체인 것이다. 19세기에 생겨나 산업화를 견뎌내고 신자본주의의 세계화까지 적응한 무언가라면 응당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는 무언가인 것이다. 나는 이 시흥산 스위스 명품 시계를 둘러싸고 펼쳐진 우스꽝스러운 일련의 사건들이야말로 21세기에 막 들어선 한국을 장식한 정말로 멋진 이벤트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고를 복원해 봤다. 복원하면서 알게된 것이 있는데, 로고에 쓰인 워드마크 ‘Vincent & Co.’의 폰트는 Times New Roman 이텔릭 볼드였다. 화룡점정이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