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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2미터 이하

ⓒHenry Romero / Reuters
ⓒhuffpost

내심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응원했다. 최고 수준 선수들이 뛰는 최고 수준 경기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카메룬-알제리계로서 전설을 써나가는 10대 선수 음바페, 기니계로서 세계 최고 게임 조율자인 포그바, 말리계로서 세계 최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캉테, 카리브해 출신으로 세계 최고 수비수인 바란…. 23명의 국가대표 선수 중 21명이 이민가정 출신으로 구성된 이 팀은 프랑스 대표팀이자 지구의 소수민족 대표팀 같은 인상을 준다.

1998년 월드컵 우승 이래 프랑스 축구의 영웅 계보는 이민가정 출신으로 이어져왔다. 지네딘 지단과 카림 벤제마는 알제리계 무슬림이며, 티에리 앙리는 카리브해 출신, 파트리크 비에라는 세네갈계 프랑스인이다.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인 마린 르펜이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피부색을 문제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축구대표팀의 인종 구성은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백인 선수들이 국가대표 차출에 불이익을 받았다거나, 축구협회가 ‘더 하얀’ 대표팀 구성을 위해 인종 쿼터를 계획한다는 음모론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왜 프랑스 국가대표팀에는 이주민 출신이 그렇게 많은가?” 이 질문은 그 자체로 프랑스 사회에서 금기인 것처럼 보인다. 국적을 가졌다면 국가대표의 조건은 모두 갖춘 것이다. 생물학적 민족주의가 끼어드는 순간 국가주의는 인종주의가 된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성공은 인종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 덕분이라는 분석은 국내 언론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선발 명단을 이주민 출신으로만 채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빈자리를 드러낸 관중석이 자연스레 뒤따라 떠오른다.

 

한국농구연맹은 국내 선수 보호를 명목으로 올해부터 외국인 선수의 신장을 2미터로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선수의 신장을 공평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 농구팀과 맞붙는 외국팀 역시 신장 2미터 이상의 선수를 출전시킬 수 없다’는 우스꽝스러운 규정을 추가로 도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촌극의 이면에는 키가 큰 외국인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면서 관중 동원이 부진해졌다는 연맹의 암묵적 판단이 깔려 있다. 확실히 젊고 잘생긴 아마추어 선수들이 ‘농구대잔치’를 벌이던 시절이 국민적 관심을 끌기는 더 나았을 것이다. 새로 도입된 외국인 신장 제한 규정은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철회될 조짐이 보이지만, 농구연맹을 괴롭혀왔을 질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왜 관중은 ‘순혈 한국인’이 활약하는 스포츠를 보고 싶어할까?

지금 스포츠를 향하는 질문은 미래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릴 시험이다. 그것은 이주민이 얼마나 불쌍한가, 혹은 얼마나 위험한가를 논쟁하는 시기 다음 단계에 온다. 이주민 중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층간소음을 두고도 범죄가 일어나왔듯이. 이주민 중 누군가는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인구 항아리에 위치한 젊은 세대끼리 늘 일자리를 쟁탈해왔듯이. 이주민 중 누군가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시리아계 미국인이 미국 최대의 회사를 소유했듯이. 이주민 중 누군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혜택을 누리겠지만, 끝까지 모국의 문화와 모국의 이름을 고수할 수도 있다. 한인 동포들이 으레 그래 왔듯이.
나와 내 가족을 추방하지 못할 근거로 이주민을 추방하려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 유혹은 점점 더 강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종주의의 간판을 걸고 등장하는 대신 객관의 기준으로 위장할 것이다. ‘신장 2미터 이하’처럼.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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