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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옆에 ‘미로같은 옥상’이 있다

이름은 '통일상가'다.

통일상가는 원래 30여 채의 건물을 하나로 이어 만들어, 옥상만 보면 여러 건물로 보인다. 
통일상가는 원래 30여 채의 건물을 하나로 이어 만들어, 옥상만 보면 여러 건물로 보인다.  ⓒ한겨레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 속 건물 위 옥상은 시민들이 발 딛기 어렵다. 서울 도심은 기업, 상가, 관공서 등의 건물이 땅을 점유하고 있다. 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건물들을 통해야 한다. 건물은 시민에게 불친절하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상주 기업 임직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시민들을 먼저 맞이한다. 그런 팻말이 없는 건물, 그 위의 옥상을 찾아 나섰다. 도심 탐험가에게 더없이 흥미로울 공간 ‘통일상가’로 갔다.

‘통일상가’. 많은 사람이 그 이름과 위치를 알고 있는 ‘평화시장’에 맞닿아 있다. 서울 중구 청계천 옆으로 길게 늘어선 평화시장. 청계천 위에 전태일 다리가 놓인 곳이 있다. 그 다리 위 전태일 동상을 오른편에 두고 서면, 길 건너로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너비로 길이 나 있다. 그곳에 들어서서야 ‘통일상가’ 간판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옥상을 탐험해 본다면 통일상가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곳이 될 것이다.” 공공 미술가이자 동대문시장 신발 상가 위에 자리 잡은 ‘동대문옥상낙원(DRP)’의 매니저인 박찬국씨의 설명이다. 동대문옥상낙원은 동대문 일대의 지역적 특성과 놀이·예술을 엮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찬국씨를 비롯한 몇몇은 신발 상가 위에 아지트를 마련하기 전인 2013년 겨울 ‘동대문리서치’를 수행했다. 그때 통일상가의 옥상을 발견했다. 서울 도심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에 그들은 놀랐다. 여러 옥상이 끊어질 듯 이어져, 옥상이나 벽을 넘나드는 ‘파르쿠르’(장애물 돌파 이동기술)를 떠올렸다. 박씨는 “아마 처음 들어가면 옥상을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다. 워낙 안이 복잡해서. 2시간 걸린 사람도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기껏해야 5층짜리 건물인데, 2시간이나 걸린다고?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했다.

도심 속 옥상을 찾아가는 탐험을 시작했다. 햇볕이 아주 뜨겁던 지난 4일 오후 3시 통일상가로 향했다. 통일상가 간판과 상표에는 ‘SINCE 1955’라고 쓰여 있었다. 통일상가는 평화시장과 비슷한 초기 역사를 가졌다. 한국전쟁 뒤 청계천 주변에 정착해 의류 제조와 판매를 하던 상인들 가운데는 실향민 비율이 높았다. 상인 10명 중 6~7명이 실향민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하나의 상가를 형성해 ‘평화시장’, ‘통일상가’ 등의 이름을 붙였다.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실향민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통일상가 안 청계시장 성당
통일상가 안 청계시장 성당 ⓒ한겨레

전태일 다리를 건너 진입한 길 양옆이 통일상가다. 오른쪽에는 에이(A)동과 비(B)동이, 왼쪽에는 시(C)동이 들어서 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살폈다. 그런데 에이동과 비동 입구만 14곳이다. 어떤 입구는 1층 상가로, 어떤 입구는 2층 상가로 이어진다. 앞뒤 입구를 다 합하면 입구만 22곳이다. 옥상으로 가기 위해 어떤 입구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외관 구조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마침 에이동 2층에 간판을 수리하는 사람이 보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2층 간판 수리 장소로 택했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길을 잃었다. 위로만 올라가면 옥상을 찾을 수 있겠거니 하며 가파르고 들쭉날쭉한 계단을 오르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섰더니 옆으로 난 복도만 있고, 그 복도는 수 갈래의 더 작은 복도로 갈라졌다. 2층은 의류 도매 시장으로 가게 문들마저 다 닫혀 있어, 길을 물을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사람 두세 명이 지날 수 있는 비교적 넓은 복도를 겨우 찾았고, 그 길을 쭉 따라갔다. 그 길의 끝에 의외의 이름을 마주쳤다. ‘청계시장 성당’. 이 성당의 주소는 이렇다.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260-6 통일상가 철계단 5층’. 이 성당은 통일상가 에이동과 비동 사이에 난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당 사목회장인 오동섭씨에게 옥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물었다. 그는 “통일상가 위 옥상은 하나가 아니다.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여러 개다”라고 말했다. 더욱 알쏭달쏭해졌다. 그를 따라 옥상으로 향했다. 다시 그 길을 찾아야 할 경우를 대비해 길을 외워보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성당에서 나와 살짝 한 층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반 층 정도 올라서고, 미로 같은 복도를 몇 개 돌고 나서야 햇빛이 비치는 옥상 입구를 찾았다. 옥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입구부터 아슬아슬하게 놓인 철 계단을 올라서야 했다.

상가 안 계단은 불규칙하게 나 있다. 
상가 안 계단은 불규칙하게 나 있다.  ⓒ한겨레

“와!”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옥상의 경관은 정말 신기했다. 크고 작은 옥상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어떤 옥상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고, 어떤 옥상끼리는 파란색 플라스틱 패널로 이어져 있었다. 공통점은 녹색의 방수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옥상 위 면적과 높이, 시설이 저마다 달랐다. 옥상 아래가 하나의 상가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상가인 걸까? 옥상 탐험을 마치고 찾아간 사단법인 통일상가관리운영위원회에서 37년째 일하고 있는 곽은해 과장을 만나 설명을 들었다.

“원래 이곳은 30채 정도 있었다. 그 사이가 아주 비좁았는데, 1960년대 말 그 건물들을 하나로 이어 상가화한 것이다. 거의 맞닿아 있는 건물의 벽을 트고, 그 사이에 계단과 통로를 만들었다.” 곽 과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상가 내 길이 아주 복잡하다. 상가의 땅 면적은 3636㎡(1100평) 정도 되는데, 1~3층의 상가 개수는 626개나 된다. 예전에는 상인들이 길이 너무 복잡해 화장실을 못 찾아 울기도 했었다.” 미로나 다름없다. 통일상가에서 40년 넘게 의류나 부자재 나르는 일을 하는 하원철(79·가명)씨 정도의 경력이 되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 하씨는 “구조를 다 알고, 목적지까지 한 번에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라며 “예전에는 40명 가까이 있었던 통일상가 짐꾼이 이제는 10명 안쪽으로 그 수가 줄었다. 나도 이 일을 일 년 정도나 더 할까 싶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상가에서 짐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하원철(79·가명)씨. 
40년 넘게 상가에서 짐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하원철(79·가명)씨.  ⓒ한겨레

통일상가 옥상으로 향하는 길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 입구가 폐쇄되어 있지는 않다. 누구나 가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상인들과 상가 관계자들은 도심 탐험가들이 몇 가지 ‘에티켓’을 지켜주길 바랐다. 통일상가의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전장수 주임은 “일반 시민들이 통일상가를 찾아오는 것은 환영이다. 그래야 더 활기를 띄고, 알려질 수 있으니까”라며 “대신 방문하는 시민들이 상가의 규칙도 잘 지켜줬으면 한다. 특히나 화재 위험 등은 큰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 건물은 독특한 구조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5년 전부터 건축학과 학생들 중심으로 찾는 이들이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도시 탐험가들에게도 점차 명소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동대문옥상낙원의 박찬국 매니저도 옥상을 찾는 시민들에게 당부한다. “시민들이 옥상 탐험을 할 때 거주하는 상인이나 다른 시민에게 예의를 지켜줬으면 한다. 탐험가들은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겠지만, 거주 시민·상인들에게는 일상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심 탐험가들이 그 공간과 그 안에 사람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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