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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맥덕이라면 '맥주 종량세'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 박세회
  • 입력 2018.07.13 10:17
  • 수정 2018.07.13 10:20
ⓒhuffpost

만원의 기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1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맥주 과세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나자 수입 맥주 4캔을 만원에 홀짝이는 기쁨이 사라질지 모른다며 맥주 애호가들이 한탄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트위터 사용자 XX 씨는 “이 망할XX들아!”라고 절규하며 ”삶의 낙을 빼앗지 마라”고 외쳤다. 또 다른 사용자는 “이거 거짓말이라고 해달라”라며 읍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나라에 쓸만한 복지혜택이라곤 수입 맥주 네 캔 만원뿐”이라며 분노를 토했다.

그런데 정말 만원에 4캔 특가 상품이 사라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작은 행복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급 맥주를 지금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게 마실 가능성은 오히려 커질 예정이다. 일단 이번 주세 개편의 골자인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자’는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가세는 쉽게 말해 ‘제조장 출고가’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국산은 제조원가에 일반관리비와 통상이윤 약 11%를 더해 이를 과세표준으로 한다. 이 경우 마치 월급쟁이의 통장처럼 깔끔하게 과세할 수 있다. 국세청에서 원료 재고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때문에 비용을 임의로 신고하기란 꽤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 과세를 보면, 맥주 한 병의 공장 출고가를 1000원으로 가정하면 주세가 720원(출고가의 72%), 교육세가 216원(주세의 30%) 붙는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193원(출고가+주세의 10%)이 붙으면 1000원으로 만든 맥주가 2129원이 된다.

수입 맥주는 과세율은 같지만, 과세 대상이 다르다. 해외에서 만든 맥주를 수입해 팔다 보니 ‘수입신고가’를 기준으로 한다. 수입 신고가는 ‘CIF 가격(물품 가격+운송료+보험금) + 관세’를 적용하지만 적어내고 싶은 대로 적어내는 게 가능하다. 수입 신고가를 낮춰서 세금을 적게 내고 판매가는 높여 이윤을 늘릴 수도 있고, 전략적으로 가격을 낮춰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

이번 한국조세제정연구원 발표의 골자는 수입과 국산 간 세 부담에 차이가 있으니 이를 아예 비슷한 도수의 술을 묶어서 리터당 같은 금액을 과세하는 ‘종량세’로 바꾸자는 것. 종량세로 바꾸면 가격을 신고할 필요 없이 같은 도수의 술 같은 양에는 같은 세금이 붙는다. 즉 수입과 국산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특히 FTA로 관세율이 0%인 EU와 미국 맥주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지금 가장 가능성 높게 거론되는 세액은 리터당 840~850원. 아래 표에서 보듯이 비싼 맥주일수록 현행 과세 방식보다 종량세로 세금을 더한 가격이 낮아진다.

위 표를 보면 출고가가 각각 500원, 1000원인 A, B 두 제품의 경우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했을 경우 각각 주세와 교육세를 더한 가격이 637원, 169원이 늘어나지만, 1500원, 2000원인 C와 D는 각 299원, 767원 감소한다.

C와 D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수입원가가 비싼 맥주일수록 더 큰 세금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고급 맥주 수입 업체 대표는 ”해외의 고급 맥주들을 들여오고 싶어도 그동안 종가세 체계에서는 93.6%의 세금이 수입원가에 연동해 붙었기 때문에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라며 ”종량세로 바뀐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수입가격이 높은 고급 맥주를 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의 보도를 보면 대표적인 수입 맥주 중에도 ‘가격이 낮아지는 범위’에 들어가는 맥주들이 있다.

기네스는 현행 종가세 체재 하에서의 주세가 리터당 1400원대 후반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일본 맥주 브랜드 ‘아사히‘와 ‘기린‘·’삿포로′ 등은 1010원대, 프랑스의 프리미엄맥주 ‘크로넨버그1664’는 900원대 후반대, 덴마크의 ‘칼스버그’는 900원대 중반이다. -뉴스1(2018년 7월 11일)

특히 일각에서 ‘만원에 4캔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예측한 것과는 달리 뉴스1은 한 업계 관계자가 ”종량세 개편 이후에는 더욱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발판으로 수입 맥주의 할인판매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런 계산을 놓고 보면 향후 맥주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의 세 부담은 높아지겠지만, 비싼 맥주의 세 부담은 낮아질 예정이다. 그 한계선은?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1180원보다 수입원가 또는 출고가가 높은 맥주는 종량세로 전환하면 세 부담이 적어진다.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고급 맥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는 얘기다. 다만 대부분의 맥주 업체들이 수입신고가를 밝히지 않고 있어 어떤 맥주가 ‘만원에 4캔’ 카테고리에 어떤 맥주가 남을지를 예측하기란 힘들다.

지금까지 시장이 흘러간 양상을 보면 최악의 경우 수입 맥주 업체들이 이를 빌미로 저렴한 맥주의 가격은 올리고 고급 맥주의 가격은 동결시킬 가능성이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다. 맥덕들이 맥주 시장을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종량제 전환의 이점은 또 있다. 맥주의 종량세 전환으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국산 소규모 양조장들이다. 소규모 양조업자들의 경우 실력 있는 양조업자들을 영입해 좋은 재료로 고급 맥주를 만들고 싶어도 세금이 제조 원가에 덩달아 증가하는 ‘종가세’ 체계 때문에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재 3종류의 에일과 1종류의 라거를 케그(생맥주) 형태로 시장에 판매 중인 ‘안동브루잉컴퍼니’의 이인식 대표는 ”종가세는 좋은 맥주를 만들기가 힘든 과세 체계다. 세금을 매기는 출고가에 인건비, 임대료 등이 다 포함되다 보니 세금을 줄이려면 사람을 적게 쓰고 임대료가 싼 곳에 양조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라며 ”게다가 홉이나 몰트 등을 원재료를 좀 더 좋은 걸 쓰고 싶어도 재룟값에 세금이 붙어 불어나니 동인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맥주 업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맥주 업계에서는 종량세 전환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수입 맥주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얘기가 나왔다”라며 ”결국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원했는지,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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