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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1일 1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1일 17시 31분 KST

남들은 뭐래도, 난 이런 소소한 것들이 하고파요

[엄마, 나 시골 살래요 ②]

이아나
1 점심 밥상에 사용한 우리 주변의 풀잎들   2 뽕잎, 호박잎 쌈밥   3 색과 맛이 다양한 경단   4 잎을 올려 부친 장떡   5 산초 간장으로 조미하고, 꽃잎으로 장식한 두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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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사를 마친 30대 싱글 여성이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저자는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던 중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농촌생활학교를 발견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록하여 6주간 합숙하며 귀농·귀촌의 현실과 농촌의 민낯을 확인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망설이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농촌생활학교의 교육 기록을 정리했다.

4일차 - 피할 수 없는 욕망을 미루지 않기

엄마! 오늘 교육은 아주 다양했어요. 오전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할 때 필요한 기술 중 하나인 농기계를 다루는 실습을 했고, 저녁에는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농촌에서 부동산을 거래할 때 필요한 기초 상식을 배웠어요. 우선 오전에 했던 ‘요리조리’라는 수업을 좀 소개할게요!

자연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자연식 요리법들을 연구하는 김혜정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녹색이 가득한 바구니 하나를 보여줬어요. 수업 시작 전에 센터 주변을 산책했는데, 그때 선생님 눈에 들어온 식재료들이래요. 물론 9월 초엔 웬만한 시골 텃밭에만 가도 다양한 풀(?)이 많지만, 선생님은 텃밭이 아니라 센터 뒷산과 밭 사이를 다니면서 그 식재료들을 획득했대요. 뽕잎부터 두둑마다 자라고 있는 호박잎, 열매만 주로 수확해서 버려지기 쉽다는 콩잎과 고춧잎, 잘 발견하기 어렵다는 산초 열매 그리고 처음 보는 풍년초, 고들빼기, 명아주잎 등등. 이것들을 이용해서 우리의 점심을 준비했어요.

뽕잎과 호박잎으로는 쌈밥을, 두부는 지져서 산초 간장에 곁들이고, 가난해서 먹을 게 없던 시절에나 만들어 먹었다던 장떡은 각종 잎과 고추로 장식하고, 찹쌀 반죽에 찐 단호박을 으깨 넣어선 노란 새알을, 먹다 남은 포도를 끓인 즙을 부어선 보라색 새알을 만들어 경단 디저트까지 준비했어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요리 직전에 수확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건강한 음식을 여럿이 함께 먹어서 그런지 점심이 정말 맛있었어요.

선머슴 같은 딸이 이렇게 요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놀랍죠? 그런데 난 언제부턴가, 뭔가 대단한 음식을 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은 아니어도 직접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을 때의 기쁨에 빠져 있어요. 그래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자연에서 온 재료들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좀 행복했어요.

배가 부를 대로 불러 귀차니즘이 몰려왔지만, 오후 수업을 해야 했죠. 2014년 초 제천으로 귀농해서 살고 있는 류지수 선생님은 오늘과 내일 우리에게 주요 농기계를 사용하고 간단히 수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고 하셨어요. 예초기, 기계톱 그리고 관리기. 세 종류의 농기계를 선생님의 안내대로 분해도 해 보고, 작은 원인으로 고장 난 기계들을 수리해 보기도 했어요.

“사실 큰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에 사용하는 농기계들은 정해져 있어요. 우선 사용한 뒤에 관리만 잘하면 큰 고장이 날 확률은 낮죠.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이렇게 간단히 수리해서 고칠 수 있구요. 그런데 그걸 할 줄 모르면, 한창 바쁜 농번기에 고장 난 기계를 들고 읍내 수리점까지 가서 수리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하루가 다 날아가요. 저도 그랬구요. 수리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시간이 아까워서 사용 설명서와 농업기술센터에서 나온 자료들을 구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이젠 대체로 수리가 가능해졌고, 그걸 아신 동네 어르신들은 읍내로 나가기 전에 저부터 불러서 확인을 하세요. 덕분에 동네 분들에게 인심도 얻었죠.”

이렇게 말하며 센터에서 준비해 놓은 고장 난 기계들을 척척 해체하고 부품들을 자신 있게 손질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요. 자신이 일상에서 다루는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내가 늘 사용하는 것들 각각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현대인이 사용하는 물건 중에는 복잡한 원리로 만들어져 알기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물건이라는 것이 점차 ‘돈을 주고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려서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내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스스로 알고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하고 있기에 그간 쌓은 노하우를 우리에게 전수하며 행복해하는 거겠죠?

농기계를 다루는 놀라운 솜씨에 난 선생님이 귀농 전엔 기계와 관련된 일을 하던 분이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녁 시간, 농촌 지역에서 집과 땅을 거래할 때 필요한 상식을 강의하러 다시 나타나셨어요. 기계를 다루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인중개사 일을 하던 분이었다니! 선생님은 농촌에서 땅이나 집을 살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들을 안내해 줬어요. 예를 들면, 도시에 있다가 시골에 오면 땅도 집도 너무 싸게 느껴질 수 있대요. 그럴 때 덜컥 사 버리기보단 자기가 정한 지역에 좀 살아보면서 천천히 결정하는 것이 좋대요. 귀농·귀촌인들이 몰려 가격이 오른 지역도 많지만, 여전히 시골의 시세는 현지 사람과 거래할 때와 외지 사람과 거래할 때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자칫하면 바가지를 써서 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땅을 살 때는 그 땅이 도로 접근이 전혀 안 되는 맹지는 아닌지, 전기나 상수도 문제는 없는지 꼭 확인해야 한대요. 실제로 차로 접근이 가능한 도로가 있어서 땅을 샀는데 지적도상에는 그 길이 없는, 그러니까 주민들이 임의로 만든 길이라 그 길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대요. 그러니 농촌에서의 부동산 거래는 천천히,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사실을 확인하면서 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은 현재 전문적으로 공인중개사 일을 하진 않지만, 종종 주변 귀농인들의 거래를 상담해 주신대요. 역시, 자신의 특기를 잘 활용하면 (귀농해서도) 나도 그리고 남도 도우며 살 수 있나 봐요!

동기들은 서로 부쩍 친해졌어요. 시골의 밤은 길고 또 깊다는 말처럼 하루 교육이 끝나고 나면 우린 숙소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오늘은 술도 한잔했죠. 막내인 나는 아직 귀농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동기 언니 오빠들은 모두 교육이 끝나면 거의 바로 귀농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한 언니가 내게 묻는 거예요.

“그런데 아나, 아나는 정말 귀농해도 괜찮겠어? 솔직히 아직은 어리잖아. 야망 같은… 그런 거 없어?”

헉. 갑자기 엄마가 내 앞에 있는 줄…. 그런데 다른 동기들 몇몇도 인생 1막을 끝내고 2막을 준비하려는 자신들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내가 이런 교육에 들어와 있는 게 희한했나 봐요. 내가 훅- 펀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 다른 동기가 화제를 돌리긴 했지만, 지금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아마 이 질문…. 엄마도 내게 하고 싶었던 질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직은 30대.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인생 2막을 준비한다고 하기엔 뭔가 어리다고 여겨지고, 쌓아놓은 인맥과 경력을 이용해 (취업이 쉽지는 않지만) 뜻하는 일을 펼쳐 앞으로 죽죽 나아가야 한다고 여겨지는 나이. 그런 나이의 내가 농촌 지역으로 간다는 건 뭔가 어색하고 희한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이 교육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더 잘 알겠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야망이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준에서의 야망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꿈이 없다거나, 삶의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른 차원의 야망(!)이라서, 사람들이 야망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을 뿐이죠.

난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오늘 그랬던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고, 내가 쓰는 물건들을 잘 알고 제대로 쓰며 행복해하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하고 싶어요. 그런 종류의 욕망은 끊임없이 내 마음에서 솟아나고 있어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무 살에 도시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종류의 소소한 욕망이 점차 점차 늘어났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남들에게 말하기엔 뭔가 별것 아닌 것들뿐이라서 그 욕망을 모른 척했죠. 그런데 이제 더는 그 욕망을 미루고 싶지 않아요. 인생에 1막, 2막이 어디 있고, 청춘이라는 게 꼭 어느 시기로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오늘 하루가 바로 내 인생이고, 그 인생에서 생기는 이 욕망을 누리면서 살 때 행복해지는 것이구요.

엄마 오늘 하루, 난 행복했어요. 엄마도 행복했길….

내일 만나요! :)

* 에세이 ‘엄마, 나 시골 살래요!(이야기나무)’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