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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짐을 돌려줘

ⓒhuffpost

정글짐에서 떨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나쁘지 않게 그린 덕인지 그 시절 상은 참가자들에게 다 줬던 것인지, 매년 서울에 전국사생대회 상을 받으러 왔다. 어린이회관 뒤엔 큰 놀이터가 있었다. 큰 놀이터에는 큰 정글짐이 있었다. 시상식을 기다리다 지루해진 나는 정글짐에 올랐다. 학교 정글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았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발을 헛디뎠다. 정글짐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아팠다. 팔에는 생채기가 났고 온몸은 타박상으로 욱신거렸다. 나는 아픈 몸을 툭툭 털고는 다시 시상식장으로 들어갔다. 정글짐에서 떨어진 건 그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정글짐에 올랐고 정글짐에서 떨어졌다. 다 커서 더는 정글짐이 재미있지 않을 때까지 오르고 떨어졌다. 정글짐은 그러라고 세워진 것이다. 아이들은 떨어져서 상처 입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오르고 또 떨어진다. 그러면서 어떻게 스스로와 남의 안전을 지키며 성장할지를 배운다.

어른들의 안전 강박증

정글짐은 더 이상 없다. 한국의 많은 놀이터는 2008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의 유예기간이 2015년 1월로 종료되면서 폐쇄 혹은 개·보수 폭탄을 맞았다.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놀이터들은 이용이 금지됐다. 정글짐 같은 전통적인 놀이시설들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사다리도 사라졌다. 높은 미끄럼틀도 사라졌다. 바닥의 흙은 푹신한 우레탄으로 대체됐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거냐고? 글쎄, 정글짐을 해체하고 우레탄을 까는 법률은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어른들의 강박증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난민법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에 70만여명이 참여했다. 서울 광화문 앞에서 난민법 폐지 집회도 열렸다. 소셜미디어는 좌우, 보수와 진보에 관계없이 난민에 대한 근심과 분노로 넘친다. 온갖 사진들을 짜깁기한 가짜뉴스는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 그 와중에 법무부는 예멘을 무비자 입국 불허 대상국에 포함하면서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순찰을 강화하고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겠다”고 했다.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난민을 일종의 ‘잠재적 가해자’로 이르게 프레임화해버린 셈이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은 한 포럼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난민의 인권, 그중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자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무비자 입국 불허 대상국에 예멘을 포함한 것에는 “이런 식으로 난민의 입국을 제어하는 것은 난민들이 어느 나라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성이 내포된 방법”이라고도 말했다. 인터넷에는 이 인도주의적 말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진다. 난민을 국경으로 한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면 한국은 혹여나 혹시나 혹 벌어질지 모른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가상의 범죄들로부터 완벽한 청정국이 되는 것일까.

제거와 금지에 목맨 국가

우리는 종종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어떤 대상을 미리 제거하거나 금지해달라고 국가에 요청한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런 상상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언제나 제거와 금지를 택해왔다. 정글짐을 제거하는 것으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글짐과 흙이 사라진 놀이터의 아이들이 다른 국가의 아이들보다 안전하게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아이들은 여전히 정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더 많은 정글짐을 포용할 수 있는 국가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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