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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에게 집 사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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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다음날,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조간신문에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신혼부부가 4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하면 취득세 절반을 깎아준다’는 기사가 실렸다. 현재 수도권에 4억원짜리 집을 사면 취득세 400만원을 내야 한다. 그중 200만원을 국가가 대신 내주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당일 오전 내가 참석해 심의했던 정부부처 합동 저출산 종합대책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위원회에 보고된 주거대책에는 신혼부부를 위한 공적임대주택을 추가로 늘리는 방안이 맨 앞에 강조됐다. 공적임대주택 확충 정책과 취득세 감면은 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공적임대주택을 늘리면 집을 사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주택구매 때 세금을 깎아주면 집을 사야 할 이유가 늘어난다. 위원회에서 심의받은 주거정책과 반대 기조의 주택구매 감세 정책이 흘러나갔다.

신혼부부는 집을 살 돈이 없다. 부모의 돈으로 사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산 뒤 오랜 기간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취득세 감면은 결국 돈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주면서, 돈 없는 신혼부부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유인하는 정책이다.

진상은 짐작이 간다. 다음날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이 ‘보유세 인상, 거래세 인하’라며 신혼부부 취득세 감면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했다.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정부안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대책 성격이다.

기획재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찔끔 올렸다. 시가 기준 23억원짜리 집 한채를 소유한 사람의 연간 세금을 28만원 올렸다. 그럼에도 반발이 두려웠다. 이것은 증세가 아니라는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마침 저출산 종합대책 발표가 있었다. 여기 얹어 부동산 감세안을 내놓고 증세 비판을 무마하기로 마음먹었다. 신혼부부 주거대책이 들어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기획재정부 장관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이지만 5일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참석한 차관은 침묵하다 일찍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언론에 신혼부부 취득세 50% 감면안이 흘러나왔다. 살기 좋은 공적임대주택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은 모두 묻히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메시지가 청년들 마음에 다시 한 번 꽂힌다.

일석이조다. 집으로만 수십억대 자산을 가진 부자들에게,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보여주며 변명할 수 있었다. 동시에 ‘청년과 신혼부부도 집 사러 나설 테니 집값이 오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집 가진 이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집 부자들을 안심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둘로 나뉜다. 집 살 수 있는 신혼부부와 그렇지 않은 신혼부부로.

누군가는 ‘로또분양’으로 대박이 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내 집 마련하면 성공한 인생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공식은 깨져야 한다. 신혼부부가 집을 사지 않아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옳은 방향이다. 공적임대 확대가 옳다.

정부는 민심을 잘못 읽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69.8%는 주택가격이 앞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7.7%만이 올라야 한다고 했다. 주택구매 지원은 7%를 위한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신혼부부·청년 주거대책 발표 행사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 개인과 가족이 너무 큰 짐을 져왔는데 이제 국가가 나눠 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집을 사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게 집 사는 사람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뜻이었을까?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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