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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갑질 없애려면

ⓒGetty Images
ⓒhuffpost

“저는 ○○공사 기간제 근로자로 ○개월 단위로 계속 계약을 했습니다. 직속 상사가 ‘재계약을 해줄까 말까, 티오를 줄여야 하는데 김아무개씨를 자를까 이아무개씨를 자를까?’라고 했습니다.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어 책임자께 말씀드렸더니 그대로 가해자에게 전달했고, 저는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계약해지를 당했습니다.”

한 공기업 교육 시간에 공공기관 갑질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 회사 비정규직 직원의 제보를 보여줬다. 누군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라졌다고 했다. 최근에 온 제보라고 확인해주자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지난 5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우리 사회의 못난 갑질은 이제 세계적 수치가 됐다”며 공공분야부터 갑질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경찰은 특별 단속을 벌여 인격침해형 범죄를 처벌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무원 행동강령에 갑질 규정을 신설하고, 국무조정실은 연내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이제 공공부문 갑질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일까?

직장갑질119 첫 제보는 청와대였다. “야, 넌 시키는 거나 해. 알았어 몰랐어?”, “네가 하는 게 뭐가 있어?”, “너 교육받았다며 내 말 못 알아들어?” 그는 “인격모독, 언어폭력으로 퇴사를 고민 중에 있다”며 죽고 싶다고 했다. 갑은 공무원, 을은 계약직이었다.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밤샘·휴일근무를 시키고 휴가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제보는 국무조정실이었다.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회, 신고리공론화위원회, 살충제달걀티에프가 구성될 때마다 이들은 컴퓨터 수십대에 보안시스템을 깔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라 날밤을 새웠다. 갑은 공무원, 을은 하청이었다. 한 계약직 연구원은 성추행을 당한 동료의 대리인으로 내부고발을 했다가 가해자에게 견디기 힘든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역시 정규직이 갑, 비정규직이 을이었다.

수원시청 계약직 노동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냈는데도 상급자에게 밉보여 무기계약 전환에서 탈락했다고 제보했다. 공기업 파견노동자도 정규직 눈 밖에 나 전환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억울해 상급자에게 호소했지만, 가재는 게 편. 끈끈한 정규직 유대는 비정규직에게 ‘넘사벽’이었다.

갑질 바이러스는 약자인 비정규직과 여성에게 집중됐고, 노조가 없거나 약화된 곳에서 창궐했다. 보육시설, 농·축협처럼 폐쇄적인 공간에서 기승을 부렸다. 바이러스는 보복의 공포를 거름 삼아 전염됐다. “뭐 믿고 파견직이 갑질이냐고!”(드라마 <나의 아저씨>) 정규직이 소리친다. 계약직, 파견직은 정규직 대리와 팀장이 사장만큼 두렵다.

정부가 갑질 신고센터와 전담 직원을 운영하고, 카카오톡 익명 신고 방법을 마련한단다. 청와대 101경비단장이 부하 경찰관들을 개인 헬스트레이너로 부리고 마사지까지 시켰다. 언론에 알려진 뒤 경호처가 모든 경찰관을 상대로 익명 설문조사를 했다. 사실이 드러났고, 갑질은 수그러들었다. 익명 설문조사는 보복을 막고 갑질을 없애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부 갑질 대책이 일시적인 약발은 있겠지만 갑질을 뿌리 뽑기는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는 땜질 처방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른다. 약자들이 뭉치는 것이 갑질 근절의 지름길. 직장갑질119를 통해 방송 스태프, 어린이집 교사, 중소병원 간호사, 콜센터 상담사 등 을들이 모이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직원들도 용기를 낸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가마니로 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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