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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0일 13시 48분 KST

1950년대 할리우드의 게이 아이콘 탭 헌터가 86세로 사망했다

그는 ‘사이코’에 출연한 앤서니 퍼킨스와 오랫동안 사귀었다.

FPG via Getty Images

1950년대의 인기 배우 탭 헌터가 86세로 사망했다. 헌터는 후에 게이로 커밍아웃했다.

헌터와 30년 이상 함께 한 파트너인 프로듀서 앨런 글레이저는 헌터가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버라 카운티의 집에서 다리의 혈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AP가 보도했다. 글레이저는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사망 소식은 헌터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탭이 87번째 생일을 사흘 앞둔 오늘 밤 세상을 떴다.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의 기억을 기려달라. 그가 좋아했을 것이다.”라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헌터의 본명은 아서 앤드류 켐이었다. 에이전트였던 헨리 윌슨이 탭 헌터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윌슨은 록 허드슨의 예명도 지어주었는데, 허드슨 역시 인기 배우였으며 당시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 남성이었다.

헌터는 1950년대에 ‘애욕과 전장’(Battle Cry, 1955), ‘그가 남겨두고 간 소녀’(The Girl He Left Behind, 1956), ‘끝없는 결투’(Burning Hills, 1956), ‘댐 양키즈’(1958) 등의 영화로 유명해졌다. 음악계에도 진출해, ‘Young Love’로 1957년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금발과 뚜렷한 턱선이 돋보였던 그는 전형적인 미국 소년으로 불리며 십대 소녀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다년 계약을 맺었던 워너 브라더스는 그를 보면 보면 탄식하게 된다는 뜻으로 ‘더 사이 가이’(The Sigh Guy)라는 별명을 붙였다.

헌터의 전성기 시절 미디어는 나탈리 우드와 데비 레이놀즈 등의 스타와 헌터의 로맨스에 대한 추측 기사를 냈다. 그러나 2005년에 나온 자서전 ‘탭 헌터 컨피덴셜’(Tab Hunter Confidential: The Making of a Movie Star)에서 그는 ‘사이코’에 출연한 앤서니 퍼킨스와 오랫동안 사귀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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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행복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에 정직해지는 것에 달려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고, 지금도 믿는다. 물론 딜레마는 내 자신에게 정직해진다는 것이(섹슈얼한 이야기이다) 1953년에는 불가능했다는 점이었다.” 헌터의 글이다.

1955년에 잡지 컨피덴셜이 게이들이 참석한 ‘파자마 파티’에서 풍기문란으로 체포되었던 5년 전 사실을 보도해 헌터는 아웃팅될 뻔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의 스타 파워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박스 오피스에서의 성공과 우드와의 염문설 때문이었다. 헌터는 후에 우드를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라 묘사했다.

헌터는 다른 기회들을 찾기 위해 1959년에 위약금을 지불하고 계약을 끊었지만(나중엔 후회한다고 말했다) 잘 되지 않았다. 후기 출연작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유명한 드랙 퍼포머 디바인과 함께 등장한 존 워터스 감독의 ‘폴리에스터’(1981)가 있었다.

앤드류 라넬스, 하비 피어스타인, 재커리 퀸토 등이 소셜 미디어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퀸토는 J. J. 에이브럼스와 함께 헌터와 퍼킨스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Michael Ochs Archives via Getty Images

헌터의 자서전은 2015년에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호평받았다. 영화 프로모션 투어 중 그는 할리우드 황금기에 커밍아웃하지 않은 배우로 살던 것의 장단점에 대해 말했다.

“살면서 우리는 남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건 정말 중요하다. 나는 나눠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 아주 감사한다. 좋은 여정이었다. … 가끔은 힘들기도 했다.” 헌터가 할리우드 리포터에 했던 말이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