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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9일 10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09일 10시 35분 KST

전쟁 공포, 난민 공포증

huffpost

수년 전, 필자와 상담을 했던 30살 청년 ㅁ. 그는 아프리카 한 국가로부터 온 난민이다. 그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 단 두 명. 하지만 다른 사람은 유학생 신분이어서, 그는 철저하게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영어는 유창하지만, 한국 생활 3년을 지나는 동안 그의 신분으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항변했다. 자신은 한국에 체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경유하러 들어왔는데 한국 출입국관리소에서 그를 억류하고 난민으로 분류해 버렸단다.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에 갇혀 버린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난민 지원 단체가 제공하는 자신의 숙소 건물 앞에 나와 있는데 경찰이 와서 잡아가더란다. 왜 잡아 왔냐고 물으니, 왜 거기 서 있었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왜 잡아 왔냐고 물으니 그냥 길 가던 사람이 수상한 흑인이 저기 있다고 해서 잡아 왔다는 것이 경찰관의 대답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승강이를 하다가 풀려났으나, 그때부터 불면증이 생기고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삶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오직 자유로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한국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실향민, 다른 말로는 피난민, 줄여서 난민이었던 내 아버지도 남한에 사는 동안 ‘삼팔따라지’라고 불리며 남한 사람들의 혐오 섞인 배척을 어지간히도 당했다고 했다. 이북 것들이 굴러 들어와서, 자신들의 질서와 관습을 무너트린다는 경멸도 모질게 경험했단다. 당시 내 아버지의 나이도 서른 무렵, 잘 곳도 머물 곳도 없었고, 말이 다르다고 멸시도 받았다. 필자를 포함해,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난민의 자손들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들 상황이 보도되면서 난민이 주요한 사회 주제가 되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꽤 배타적인 것 같다. 나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난민에 대해서는 혐오에 가까운 부정적인 의견들이 압도한다. 난민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내면 좀 과장해서 ‘가루가 되게 까이는’ 분위기다.

의문이 든다. 난민이 문제일까, 우리의 공포증이 문제일까? 수백만의 난민들과 그 자손들이 함께 건설한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왜 난민들에 대해서 이리도 집단적 공포증을 숨기지 않는 것일까?(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와 난민에 대한 공포증의 양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의 공포에 시달려 왔다. 이 정도의 경제 개발을 이루고도 이렇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아직도 우리는 휴전상태이니 엄밀히 말해 전쟁상태다. 전쟁의 흔적과 그 비극의 상속은 이 땅에 널려 있다. 게다가 또다른 전쟁광인 수구보수 집단은 전가의 보도처럼 전쟁 위협을 들먹였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70년간 준비된 피난민이었다.

이렇게 겨우겨우 전쟁을 피하며 살고 있는데, 비참한 난민들의 처지는 우리 공포를 실체로 확인시키는 것이리라.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 사태 앞에서 속수무책인 민간인들이 어떻게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를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혐오가 아니라 공포증이다. 사실 예멘 난민은 타자가 아니라 무의식으로 상상하는 우리 자신의 몰락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보듬는 것이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더 깊은 경험이 될 것 같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