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7월 06일 16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2일 13시 10분 KST

23년 전, 옴 진리교는 왜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했나

그들은 일본 정부를 전복시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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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주범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23년 만이다. 당시 공범으로 기소된 옴진리교 소속 인사들의 사형도 함께 집행됐다.

23년 전, 아사하라 쇼코 교주는 왜 테러를 계획했을까? 아사하라 쇼코의 정체와 옴 진리교의 탄생등을 다시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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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더 재팬’의 무로하시 유우키 기자가 지난 2016년 3월, 허프포스트일본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아사하라 쇼코는 원래 요가 지도자였다. 그는 1984년 도쿄 세타가야에서 ’옴의 모임’이란 이름으로 단체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요가 동호회였지만, 곧 아사하라가 ‘공중부양’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오컬트 잡지에 소개된 후 이 단체는 종교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옴 진리교’란 이름으로 종교단체화 된 건 1987년의 일이다. 아사하라 쇼코는 스스로를 해탈의 경지에 올라 초능력을 지닌 영적 지도자로 소개하면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심지어 ‘달라이 라마’와 만났다는 사실을 강조해 홍보에 이용하기도 했다.(달라이 라마는 그를 만났을 뿐이지, 옴 진리교를 지지한 건 아니다.) 신도는 계속 증가했고, 1995년 3월 사린 테러 사건 당시 옴 진리교의 신도는 약 1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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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츠츠미와 그의 가족 

하지만 교세가 확장하면서 ‘옴 진리교’의 활동을 문제삼은 이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인권변호사인 사카모토 츠츠미다. 많은 청년들이 옴 진리교에 빠져든 후, 실종상태에 빠지자 그 가족들은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때 사건을 맡은 사람이 사카모토 츠츠미였다. 그는 옴진리료 피해자 모임을 만들고, 여러 방송 인터뷰를 통해 옴진리교의 전도방식등을 비판했으며 옴 진리교의 종교법인인가 취소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했다. 그런데 1989년 11월, 사카모토 츠츠미와 그의 아내, 그의 1살짜리 아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들이 살해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도쿄 사린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였다. 당시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가 신도들에게 살인을 명령했고, 6명의 신자가 나서 사카모토 변호사의 일가족을 살해했던 것이다.  이들은 시신을 드럼통에 넣은 뒤 세 곳의 외딴 시골 지역에 따로 암매장했다고 한다. 사건 당시 일본에서는 옴 진리교 신도들의 살해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수사는 종결되어버렸다.

사카모토 츠츠미를 살해한 옴 진리교는 이후에도 교세를 확장시켰다. 1990년에는 ‘진리당’이란 정당을 만들어 중의원 선거에도 나섰다. 이때 아사하라 쇼쿠를 비롯환 25명이 출마했는데, 덕분에 TV와 신문 인터뷰에 나서면서 지명도를 높였다. 하지만 모든 후보가 낙선했다. 낙선과 함께 선거 공탁금도 몰수되자, ‘옴 진리교’에는 이탈자가 속출했다. 1995년 테러 사건 당시 일본 내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옴 진리교’가 테러를 계획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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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하라 쇼코의 목적은 일본 정부의 전복이었다. 일왕을 폐위시킨 후, 아사하라 쇼코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는 ‘진리국’을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건은 1995년의 도쿄 지하철 사린테러 사건이지만, 옴진리교는 이전에도 사린을 이용한 테러를 자행했다. (무색·무취의 사린은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5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6월 일본 나가노 현 마츠모토시에서 발생한 사린가스 살포사건이다. 옴진리교의 마츠모토시 지부는 옴진리교란 이름을 숨기고 이 도시에 토지를 취득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발각되자, 마츠모토 시 시민들로부터 퇴거 압력을 받으면서 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 재판을 무력하시키려한 옴진리교 측은 마츠모토 시 재판소가 있는 지역에 사린가스를 살포했다. 이 사건으로 총 8명이 사망했고, 66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옴진리교의 의도대로 이후 재판은 진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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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년 후인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 옴진리교의 신도들은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한다. 이 테러로 13명이 사망했고, 6,3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실 일본 정부의 전복을 꿈꾼 아사하라 쇼코는 여러 형태의 테러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무기 제조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군용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한다는 테러 계획도 있었다. 또한 그해 11월에는 도쿄 전역을 상대로 사람들을 대량학살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도쿄 테러 사건 이후 아사하라 쇼코와 그 일당들이 체포되었다. 1995년 10월에는 도쿄 지방 법원에 의해 단체 해산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사하라 쇼코의 딸 마츠모토 레이카는 다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또한 잔존세력 중 일부는 2000년 ‘알레프’란 이름으로 종교명을 바꾸어 지금까지 포교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러시아에도 아직 옴 진리교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러시아 보안 당국이 모스크바에서 옴 진리교의 교단 시설을 적발하기도 했다. 러시아에는 약 54개소의 옴진리교 시설이 남아있다고 한다.

옴 진리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컨텐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란 제목의 관련 르포를 썼다. 만화’ 20세기 소년’의 친구’ 또한 옴 진리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2001년 제작한 영화 ‘디스턴스’에서 옴 진리교를 차용한 ‘진리의 방주’라는 사이비종교 단체를 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