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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울산고래축제는 지옥이었다

  • 김한민
  • 입력 2018.07.06 14:45
  • 수정 2018.07.06 16:42
ⓒ뉴스1
ⓒhuffpost

지난달 28일, 서울대학교 수의인문사회학교실에서 발표한 <국내 동물이용축제의 현황>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각종 동물축제의 84%는 동물들에게 죽음에 버금가는 격심한 고통을 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동물축제는 동물지옥인 것. 그런데 흥미롭게도 조사 대상이된 86개의 동물축제 목록에 빠져있는 유명한 동물축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울산고래축제이다. 

왜 고래축제가 동물축제 목록에서 제외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동물, 즉 고래가 없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있긴 있다. 크게 세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 첫째, 접시 위의 살점으로 전락한 고래로. 둘째, 좁은 수족관에 갇혀 신음하는 고래로. 셋째, 가로등과 공공조형물의 모티브가 된 고래로. 이번 7월 5일, 개막에 맞춰서 방문한 울산고래축제 현장은 이 세 종류의 고래들로 가득했다. 딱 한가지, 고래답게 살고 있는 고래만 빼고는 다 있는 셈. 이것이 고래생태도시, 고래 특구를 표방한 울산이 고래를 기리고 기념하는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축제 방식이었다. 양념에 찍어 먹으면서, 우리 속에 가두어 두면서 ‘고래가 춤추는 축제’(2017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정도면 뻔뻔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분열증세를 의심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  

올해의 슬로건은 한 술 더뜬다. ‘고래의 꿈, 청년의 꿈, 울산의 꿈‘. 귀를 의심했다. 꿈? 대체 무슨 낯짝으로 고래의 꿈을 운운하는가? 국제포경위원회(IWC)에 매년 혼획으로 죽는 고래수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는 10개 나라의 평균은 약 19마리이다(2014년 기준). 한국은 몇 마리인줄 아는가? 매년 1800마리가 죽는다. 압도적인 1위다. 2등은 브라질이 75마리, 3등 호주가 40마리이다. 일본이 매년 남극해에서 밍크고래 333마리를 잡는다고 전세계의 지탄을 받는데, 매년 약 250마리의 밍크고래가 죽어나가는 한국은 용케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있다. 국제회의에서 고래보호구역 지정 안건이 나올 때마다 번번히 일본 눈치만 보다 기권이나 반대표를 던지는 한국. 여기다 불법포경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어쩌다가 해경이 불법포경 범죄자를 검거해도 솜방망이 처벌 후 풀려나고, 고래고기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도시. 전국의 고래고기가 집중적으로 소비되는 도시. 이것도 모자라, 여전히 돌고래를 가두고 구경거리 삼는 도시, 이것이 울산의 민낯이다. 그런데 고래의 꿈이라고? 마치 성평등 지수가 형편 없는 도시에서 남성 중심의 <페미니스트 축제>를 개최하면서 ‘여성의 꿈’을 간판에 내건 꼴이다.    

축제 프로그램에서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래의 꿈을 단 1초라도 헤아렸다고 할만한 컨텐츠는 전무하다. 수중쇼, 뮤직페스티벌, 벨리댄스, 맥주파티… 청년과 울산의 꿈이 반영됐는지 몰라도, 고래가 이런 프로그램 따위를 꿈꾸지 않는다는 건, 또 고래의 꿈이 자유로운 바다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렇다. 정말로 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에게 축제장의 생태체험관에 갇혀있는 돌고래를 구경시켜주면 열에 아홉은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담당해본 울산 학부모가 증언한다. 고래들의 꿈이 저 감옥에 갇혀 평생 구경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래의 꿈을 함부로 이야기한다면, 파렴치하다는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울산고래축제 총감독이 언론과 한 인터뷰와 기고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외운 대사처럼 흘러 나온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돌고래 학살기지인 일본의 타지이에서 돌고래를 수입해와서 폐사시킨 ‘생태’ 체험관은,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자. 생태체험관 맞은편이 더 가관이다. 고래고기 식당들이 즐비하다. 축제기간은 대목이라 식당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먹는지 궁금해, 안을 들여다봤더니 남녀노소 다양하다. 가격은 10만원 이하는 찾기도 힘들다. 내가 가본 수많은 나라의 축제 중에 고래축제를 벌이는 동시에 고래를 먹는 나라는 처음이다.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도 사파리 구경을 한 다음 기린이나 사자를 먹으러 가는 경우는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이 고래고기가 정식 ‘식품’ 조차 아니라는 사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나  해양수산부 등 그 어떤 정부기관도 고래고기를 관리하지 않는다. 고래류는 식품이 아니므로 중금속 오염 등 유해물질에 대한 기준이나 검사 체계 없이 무책임하게 수백톤 씩 유통되고 있는 야생동물인 것이다. 기준치를 훨씬 웃도는 고래고기의 중금속 오염 실태는 물론, 섬뜩한 불법 유통망 문제도 있지만 거기까진 가지도 말자. 그래,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불법 포경 문제는 과감히 건너뛰자. 그런데 건너뛰었는데도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축제가 자랑하는 ‘고래바다여행선‘의 경우,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볼 확률은 20%도 채 안된다. 국제 수준에 한참 미달해 부끄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일단 공업단지 때문에 바다가 오염되었고, 또 배가 시끄러운 동력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배들은 고래들을 쫓아낼 뿐 고래관광에 부적합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변명한다, 해외의 ‘웨일 웟칭(Whale Watching: 고래 관광)’ 사례와 비교하지 말라고. 고래가 살던 옛 발자취를 따라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유람선 개념이기 때문에 ‘웨일 윗칭’은 아니라고. 거짓말이다. 일단 배 선미에 대문짝만하게 ‘Whale Watching’라고 써있다. 고래를 볼 수 있다고 선전하고 호객을 한다. 돌고래떼를 발견하면 얼마든지 정해진 항로를 이탈할 수도 있다. 주변의  배들로부터 돌고래 떼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고래 축제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먼 멕시코나 호주, 가까운 대만이나 오키나와 같은 곳이 일찍이 인간중심적인 폐쇄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고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래의 특성을 이해하는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이 정말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길을 찾은 것과 대조적이다. 고래축제 관계자들은 놀랄 만큼 획일적으로 변명했다.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그런 하루 아침들이 24년째 쌓여가고 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놈의 고래 축제가 고래에 대한 배려와 고래 보호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처참하게 낮을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고래연구센터가 행사장 코 앞에 있었다. 그래도 연구소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고래 연구 전문기관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곳에서 연구자들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감은 또 한번 무너져 내렸다.

(*아래는 담당 연구자들을 만나서 나눈 대화의 일부를, 생생한 기억 그대로 기록했다. 만일 여하간의 왜곡이 있다면 고래연구센터는 직접 정정해주길 바란다.)   

-한국 연안의 밍크고래는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가?

=2013년 자료에 의하면 약 1600마리 정도로 추정한다.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2018년 현재 기준으로는?  

=대답하기 힘들다.

-왜 그런가?

=해양포유류 특히 고래의 개체수 조사는 대단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고래연구센터의 설립 목적 자체가 고래류에 관한 데이터 수집과 발표 아닌가?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 물어보는가?

=앞서 말했듯,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1년에 한달 목시조사를 하는 정도다.

-그럼 대략적인 수치라도?

=말했듯이, 정확한 수치가 아니므로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개체수 조사를 하고는 있는지?   

=하고 있다.

-언제쯤 결과가 나오나?

=알 수 없다.

-10년 후면 나오나?  

=그것도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매년 최소 200마리씩 죽어가는데, 5년전에 1600마리면, 이미 천마리 이하로 내려간 것 아닌가? 

=알 수 없다.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

-언제 충분한 데이터가 모이냐?

=알 수 없다.

-멸종위기냐, 아니냐?

=이미 얘기했듯이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런 식의 대화가 1시간 반 동안 오갔다.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울산은 고래로 축제를 하면서, 고래의 꿈을 운운하면서, 고래로 돈을 벌면서, 고래를 먹어치워 가면서, 고래의 모양, 고래의 상징성, 고래의 이미지를 깨알 같이 팔아 먹으면서… 정작 고래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구나. 고래에 대해 너무도 무심하구나. 고래의 복지, 고래의 상태, 고래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상생의 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철학 조차 보이지 않는구나. 그 상태에서 공허한 슬로건들, 무지와 무심함이 20년 넘게 쌓이니 이런 축제판이 만들어지는구나.    

문득 묻고 싶었다. 이런 축제를 벌이고도 속이 편할까? 돈이 벌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조명이 화려하고, 음악이 시끌벅적하고, 배에 맥주가 들어가면, 마음 한켠의 찜찜함이 해소될까? 문득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 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고래를 아끼고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울산고래축제는 지옥이었다. 우리의 눈에는 많은 이들이 그 지옥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어, 지옥이 지옥인지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서울, 부산, 제주, 울산에서 온 약 서른 명의 활동가들이 고래생태체험관 앞에서 시위를 하며 외쳤다. 고래고기와 돌고래쇼 없는 고래축제를! 고래착취축제에서 고래생태축제로! 나는 외쳤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고래축제’란 말은 쓰지 말라! 차라리 있는 그대로, 고래가 작살 나는 축제, <고래작살축제>로 바꿔라!

절망을 애써 참으려는 나에게 시위 참여자 한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울산에서 온 한 시인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울산에서 외롭게 버텼지만, 이제는 같이 싸워보자. 한국에서 고래 사랑은, 분노에서 시작한다”. 그 울산 시인, 아니 울산 시민의 말을 듣자 칼비노가 했던 말의 나머지 반이 떠올랐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두번째 방법, 그것은 위험하고 계속 주의를 기울이며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 그것들을 찾아내 구별해내고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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