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8년 07월 05일 18시 02분 KST

김상조는 "진보의 조급증 탓에 문재인 정부가 실패할수도 있다”고 말한다

"1년 뒤에도 성과를 못내면 비판해도 좋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6월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빌딩 내 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남대문로 공정위원장 집무실에서 가진 <한겨레>와 단독 인터뷰와 5일 추가답변을 통해 진보진영 시민단체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인터뷰는 취임 2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에게 향후 공정거래정책 방향에 대해 들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과 검찰의 압수수색 등과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자세한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양해를 구한 뒤, ‘21세기 한국 진보진영의 과제’에 집중해서 얘기하자며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진보진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또 김 위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이 현 정부에서 핵심역할을 하고 있어, 그의 진보진영 비판은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준비 부족을 이유로 ‘규제혁신 회의’를 취소한 뒤 참여연대가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대해 “과거 정부로 회귀해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앞으로 정부와 진보진영 간에 개혁 추진전략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주목된다.

 

-21세기 한국 진보진영의 과제는 무엇인가?

“과거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도 개혁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 대해 정부도 반성해야 하지만, 시민사회도 반성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문제의식 속에 내재된 근본주의적 성향에 대한 점검·반성이 없이는 어떤 정부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은 1987년 민주화 때 형성된 게 많은데, 30년이 흐른 21세기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과거 보수정부를 비판할 때와 같은 시각으로 현 정부를 평가하고 비판하면 어느 정부도 성공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30년 전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진보진영은) 국가권력과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전에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를 갖고 있지 않다. 또 각 시민단체마다 자기 분야가 제일 중요하고, 한 발자국도 후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위배되는 정부의 행보는 모두 개혁 후퇴라고 비판한다. 정부의 정책 수단은 제한적이어서,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정책의 우선순위, 속도와 강도를 판단하는 것이고, 결국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다.”

 

-시민사회가 재검토해야 할 구체적인 사안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란 세 바퀴가 같은 속도로 돌아가야 경제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이룰 수 없고 혁신성장이 필요하다. 현 정부의 지지자들은 소득주도성장은 반기지만, 혁신성장은 반대가 많다. 그 반대 그 논리가 지금도 유효한지 살펴봐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을 위해 혁신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안정적인 고용 밖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하려면 재정자금 투입만으로는 안되고 혁신성장이 성공해야 한다. 스타트업, 벤처 등 4차산업혁명 분야는 물론 기존산업에서도 새로운 경영혁신과 제품생산이 이뤄져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다이내믹 코리아’의 전초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보수-진보라는 진영문제가 아니다.”

 

-경제계는 혁신성장을 하려면 규제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규제개혁에 반대한다면 혁신성장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규제개혁 과제를 꼽는다면?

“빅데이터산업 관련 개인정보 보호 완화, 핀테크(인터넷은행) 관련 은산(은행자본과 산업자본)분리 완화, 서비스산업발전법 처리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법의 은산분리와 관련한 산업자본에 대한 판단기준은 2002년에 도입된 것인데,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의 개인정보 보호 기준은 선진국과 다르다. 또 은행권의 개인정보 유출사건 때 만들어져 과잉규제가 이뤄지면서 빅데이터산업 추진에 장애가 되는만큼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재검토 자체를 있을 수 없는 개혁후퇴라고 본다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도 성공할 수 없다.”

 

-참여연대는 인터넷은행 규제완화는 은산분리 포기이고, ‘현행법상 자격요건 유지’라는 대선공약에도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이 직접 ‘내 공약이라고 해서 모두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여건에 따라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은산분리 원칙을 폐기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산업자본 규정을 현재의 산업자본 현황, 은행산업의 기술상황,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무범위 등을 고려해서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은산분리 또는 금산분리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 중 하나다. 은산분리 원칙 포기라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사회의 재벌만 30년 전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정부, 시민사회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보수진영에서 따뜻한 보수가 무엇인지 재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는데, 진보진영도 합리적 진보가 무엇인지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합리적 진보의 기준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현실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은 자신의 제안이 현실조건 속에서 실현 가능한지, 환경 변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법을 고쳐서 개혁을 하자는 법률 만능주의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지면 바로 뒤집어질 수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정위가 지난 1년간 현행법 하의 엄정한 법 집행, 그것으로 담을 수 없는 분야는 재벌의 자율적 개혁 유도, 그것으로도 미흡한 부분은 법·제도 개정이라는 세가지 개혁 추진방법을 결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쉽지 않다. 정부의 추진전략은?

“세심하게 준비 중이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설득 및 미세조정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규제체제를 현행 사전적 규제와 행정·형사 제재 일변도에서 사전적-사후적 규제의 조합, 행정·민사·형사 제재의 결합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 위원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직을 맡은 뒤 생각이 변한 것이냐고 궁금해할 것 같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 되고난 뒤의 생각이 아니다. 15년간 시민운동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때에도 보수-진보 진영간 대화보다 진보진영 내부의 건전한 토론문화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개혁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실패는 모두에게 불행이다.”

 

-2003년 참여정부 초기 카드대란 사건 대책 등을 둘러싸고 참여연대 등과 사이가 벌어졌고, 이것이 결국 참여정부 실패의 요인으로도 꼽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우리 쪽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관료)을 빌려와서 경제정책을 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철학과 기조가 체화된 사람으로 경제정책을 펴는 게 차이점이다.”

 

-최근 최저임금 대책 등을 보고 정부의 사전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솔직히 현 정부는 1년 전 ‘개문발차’(차가 문을 열고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번듯한 팀도 없이 공약을 급조했고, 인수위원회도 없었다. 정부 출범 한달 뒤에는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이 예상됐지만, 일자리 안정자금 외에는 제대로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1년 전과 비교하면 안정적이다. 이제부터 성과를 낼 것이다. 1년 뒤에도 성과를 못내면 비판해도 좋다.”

 

-1년 간은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달라는 뜻인가?

“문재인 정부의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는 것이다. 경제개혁 정책이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지금의 경제구조는 수십년간 쌓인 것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폈다고 해서 불과 몇달만에 성과가 나오기 힘들다.”

 

-삼성·현대차·엘지 등 개별 재벌과 관련된 이슈들이 많다.

“삼성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시장과 사회가 납득할 개선방안을 내놔야 한다. 그 시기가 늦어질수록 삼성과 경제가 부담할 코스트(비용)는 커질 것이다. 현대차는 (최근 취소한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추진할 것으로 생각한다. 방법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엘지는 (4세 경영승계를) 스스로 알아서 하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법 위반이 있으면 공정위가 제재할 것이고, 경영성과는 시장이 평가할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는데?

“7월 중에 확정할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에 개선방안을 반영할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23조 2)을 경제력 집중 파트(3장)로 옮겨서 ‘경제력 집중 효과’를 입증할 필요없이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최대 입법과제로 상법 개정이 꼽힌다.

“전자투표제(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의결권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방식)와 다중대표소송(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제도)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수 주주권 보호를 위한 집중투표제(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했던 국회에서도 상법 개정에 실패했다. 모든 개혁과제를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개혁 후퇴라고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