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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지쳐서 시골로 간 30대 싱글 여성이 보내는 편지

[엄마, 나 시골 살래요 ①]

  • 이아나
  • 입력 2018.07.05 15:56
  • 수정 2018.07.06 13:54
ⓒhuffpost

해외 석사를 마친 30대 싱글 여성이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저자는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던 중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농촌생활학교를 발견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록하여 6주간 합숙하며 귀농·귀촌의 현실과 농촌의 민낯을 확인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망설이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농촌생활학교의 교육 기록을 정리했다.

#프롤로그 - 엄마에게 편지를 쓰기까지…

나는 2016년 9월을 순창에서 시작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순창군이 주관하는 농촌생활학교 10기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내가 6주간의 합숙으로 이뤄지는 이 교육을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며 새로운 터전을 찾고 있었고,

· 도시 생활보단 시골살이를 희망하는 나의 욕구를 발견했으며,

· 요즘 점차 늘어나는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대안처럼 다루는 사회 분위기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 과연 내가 얼마나 시골에 잘 적응해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내가 6주간의 합숙 교육을 받으러 순창에 가겠다고 엄마에게 알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질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석사 공부를 하려고 잠시 서울을 떠난 줄 알았던 딸이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엄마 : 무슨 교육을 순창 촌구석에서 6주간이나 받는다는 거고?

나 : (귀농이라는 단어는 차마 먼저 꺼내지 못하고) 생태교육 같은 거라서 좀 시골에서 해.

엄마 : 아니 그릉까, 니가 왜 시골서 생태교육을 받겠다는 거냐꼬!?

나 :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졌어. 내가 공부했던 것도 다 연관이 돼~.

엄마 : 뭐가 연관이 된다는 겨! 니 취업은 다시 안 할끼가?

나 : (백수로서 살아보는 삶, 한 가지 직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사는 방식에 꽂혀 있지만) 하긴 해야지…. 근데 취업하기 전에 이런 교육 좀 받고, 그러고 다른 일을 찾아볼게.

엄마 : 니 보고 대기업 들어가라는 것도 아니고, 돈 되는 일 하고 사는 건 포기했다지만, 그래도 일은 계속해야 할 거 아이가!

나 : (묵묵부답)

답답함과 미안함이 가득했지만, 백수인 나에겐 거금인 40만 원이라는 교육비(39세 미만이라 20% 할인받았다)를 송금한 뒤였다. 뭔 돈까지 들여서 시골살이를 교육받느냐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현재의 농촌 사회와 농촌 생활을 안내해 줄 사람이 내 인맥엔 없었으므로…. 이 욕망이 내게 적절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교육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농촌생활학교를.

그리고 배낭 하나 메고 집을 떠나 순창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엄마에게 매일 편지를 쓰자. 엄마부터 이해할 수 있게 6주간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편지를 띄우자.’

지금의 내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엄마는 가장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상대와 내 경험과 생각을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겐 좀 더 쉽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농촌생활학교에서 엄마에게 편지 쓰기는….

풍산면 소재지를 지키는 풍산이용원  
풍산면 소재지를 지키는 풍산이용원  

1일차 - 잘 도착했어요

 

엄마! 전 순창에 잘 도착했어요. 순창은 전라북도지만 전라북도의 가장 남쪽, 전라남도와의 경계에 위치해서 전주보다는 광주에 더 가까운 편이라 광주를 통해 순창으로 왔어요. 대구에서 광주는 2시간 반, 광주에서 순창은 30분이 걸렸어요. 물론! 제가 교육받을 장소인 풍산면까지는 순창읍 버스 정류장에서 또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들어와야 했죠.

사실 풍산면 소재지에 도착하고 좀 놀랐어요. 학교가 운영되는 귀농·귀촌지원센터는 소위 면 소재지 중심가의 상징물인 면사무소와 보건소 맞은편에 있어요. 그런데 이 주변에는 초등학교와 우체국, 저녁 6시 전에 문을 닫는 작은 하나로마트와 백반집 하나, 그리고 1970년대 세트장에서 옮겨 온 듯한 이용원 하나가 전부인 거예요.‘면 소재지인데도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거야? 여기서 6주를 어떻게 견디지?’하는 걱정이 덜컥 들었어요.

모임 시작 시각인 오후 2시가 되자, 입소식이라고 해야 할지 입학식이라 해야 할지 모호한 시작 행사가 있었어요. 순창 군청 귀농·귀촌계에서 나온 직원이 순창의 정책을 설명하고, 센터의 소장이 센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죠. 아, 교육생은 총 9명이 모였어요.

남자가 5명, 여자가 4명(하지만 바로 다음 날 남자 1명이 교육을 포기해 버려서 10기 교육생은 8명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나눠준 교육용 파일에 교육생들의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평균 나이를 계산해 보니 42.5세. 엄마는 또 싫어하겠지만, 내가 막내였어요.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34세가 어느 그룹의 막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난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최근에는 어딜 가도 내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고, 약간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곳에선 막내 생활을 하게 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죠. ^^;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입학식이 끝날 때쯤 교육팀장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환영의 의미를 담은 선물을 줬어요. 환영 선물이 뭐였냐면요, 낫이랑 냉장고 바지였어요! 하하하. 농촌생활학교에선 이런 물건들에 친숙해져야 하는 거죠. 난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 입학 선물들이 꽤 마음에 들어요 엄마.

짐을 풀곤 이른 저녁을 먹었어요. 간소하고 정갈하게 준비된 채식 위주의 식사가 입에 아주 잘 맞았어요. 아마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빨리 생기진 않을 듯해요. 건강하게 잘 먹고 지낼 수 있을 듯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도 환경도 아직은 그저 낯설어서 저녁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동네를 산책하러 나갔어요. 평소에 엄마랑 매일 산책하는 바로 그 해 질 녘이었지만, 걷는 것은 어느 공간을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이토록 다른 것이 되는가 봐요. 새롭게만 느껴지는 풍경 속에 들어온 나 스스로가 낯설어서 눈에 익은 것을 찾으려고 해 봤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 산책 땐 어디서나 보이는 아파트나 높이 솟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온 지평선이 논과 밭이고, 2층 높이의 건물조차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우리 동네에선 아스팔트길을 걷건, 자전거 전용길이나 산책로를 걷건 자동차와 마주치잖아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면 소재지를 통과하는 유일한 2차선 차도를 걷고 있어도 차는 몇 대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용감하게 2차선 한가운데 노란 중앙선을 따라 걷기도 했죠. (아… 이 해방감!) 이곳에선 정말 해가 사라지고 밤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농촌생활학교 입학 선물의 품격
농촌생활학교 입학 선물의 품격

저녁 시간에는 교육생과 센터 운영자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했어요. 아… 이런 자기소개 시간 너무 불편하고 어색한데, 모두가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시간이죠. 과거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왜 이 교육에 오게 되었는지를 핵심적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뭐라고 이야기했냐구요?

“전 12년간 서울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고 있어요. 서울 생활을 하면서 서울이 참 좋기도 했지만 전 늘 쉽게 지쳤던 것 같아요. 일과를 마치고 제 방에 들어오면 늘 뭔가 맞지 않는 옷,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30대가 되면서 점차 자립적이면서 동시에 의존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가치관이 생겼어요. 돈이나 물질문명으로부터 자립해서 내 힘과 의지로 삶을 만들고 싶지만,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자연의 순리에는 순응하고 의존하면서 살고 싶은 거죠. 하지만 막상 서울을 벗어나 뭔가 자연에 가깝고 문명에서 먼 곳을 찾다 보면, 내가 과연 농촌 시골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그런데 이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니 농사가 중심이긴 하지만 시골살이를 잘하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 줄 것 같더라구요. 반농반X*라는 개념도 소개되어 있고…. 이 교육을 통해 저를 실험해 보고 싶어서 오게 됐어요.”하고 3분 스피치를 마쳤어요.

[*반농반X란, 농업을 통해 정말로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 하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농업을 통해 식량을 지속 가능하게 자급함으로써 대량생산·운송·소비·폐기를 멀리하는 ‘순환형 사회’를 추구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세상을 위해 활용한다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일컫는 개념으로 시오미 나오키의 책 <반농반X의 삶>이 대표적으로 이를 설명한다.]

엄마, 엄마가 서울을 벗어나서 시골에 관심을 보이는 엉뚱한 내게 실망하고, 그런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큰 것 같아서 엄마 앞에선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지금 내 마음은 이래요. 모든 관계를 다 끊고 무슨 도인이 될 것처럼 산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아는 농부들이 좀 있지만, 농사는 한 번도 지어 본 적 없는 내가 갑자기 직업을 농부로 바꾸겠다는 것도 전혀 아니구요. 그런데 분명한 건 내 몸과 마음이 도시 생활을 할 때보단, 자연에 가까이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물론 농촌에서는 이전까지 하던 일과 공부가 연결이 잘 안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난 이런 확신이 들어요. 시골에서도 내가 평소에 관심 가졌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그리고 더 의미 있고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물론 엄마가 그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대답을 못하겠지만요)

그러니까 엄마, 내가 이 교육을 통해서 우선 실험해 볼 수 있게 기다려줘요. 뭐든지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 깨져봐야지만 이해를 하곤 하는 내가, 오히려 시골살이에 대한 내 생각은 그저 이상이었을 뿐임을 깨닫고 돌아갈지도 몰라요.

내일부턴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돼요.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평화. :)

* 에세이 ‘엄마, 나 시골 살래요!(이야기나무)’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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