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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5일 15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05일 17시 48분 KST

그가 46살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목수가 된 이유

[이민자 인터뷰⑪] 캐나다 밴쿠버 한주환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한국에서 58년 개띠는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온 특별한 세대로 기록된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대표로 10대에는 고교평준화, 20대에는 유신정권의 몰락과 쿠데타를 경험했다.

경제활동을 했던 30대에는 88서울올림픽과 경제성장, 40대에는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세대. 58년 개띠인 한주환씨는 여기에 캐나다 이민이라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하나 더 추가했다.

 

김병철

 

한주환(58)

-거주지 : 캐나다 밴쿠버
-인테리어 목수
-캐나다 거주 13년(시민권자)

*모든 내용은 2017년 4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Timeline

1985년 대학 졸업, 무역협회 입사
2000년 조기 퇴직
2002년 캐나다 이민 신청
2004년 캐나다 영주권 취득(독립기술이민)
2004년 밴쿠버 도착
2005년 건축일 시작

* 필자의 다른 이민자 인터뷰는 이곳에서 볼수 있습니다.

 

 

김병철

 

책상 의자에서, 마을버스 운전석으로

1985년 한주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무역협회에 취직했다. 서울 강남의 코엑스를 보유한 한국무역협회는 수출기업의 해외시장 개척, 해외홍보 등을 하는 경제단체다. 무역협회를 다니며 이직 한번 안 했던 그는 입사 15년 후인 2000년, 42살에 조기 퇴직을 했다. 아직,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였다.

 

-무역협회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입사해서 해외시장과로 들어갔어요. 수출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돕는 부서예요. 1988년 여행자유화 이전에는 여권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무역협회 추천장으로 여권이 나온 기업을 데리고 외국에 가는 업무를 했죠. 현지 바이어를 모아서 호텔에서 상담회를 열고 국내 기업과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그때 한 주물업체가 내수에서 30위 밖에 있었는데 싱가포르 다녀와서 8위가 됐어요. 팔자 고친 거죠.

 

-꽤 비전있는 부서였을 것 같은데, 왜 퇴사를 하게 되셨어요?

조기퇴직을 안 하면 징계 면직을 시키겠다고 해서 사표 쓰고 나왔어요. 1987년에 무역협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내가 초대 사무국장이었어요. ‘강성’으로 찍혀있었는데 사건이 하나 있어서 건수가 잡혔어요. 무역협회 회장이 관료에서 재벌로 바뀌었는데, 직원 30명을 내보냈어요. 이권이 많았는데 직원들 입 막으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거죠.

 

-40대 초반에 퇴직하면 막막했을 텐데요. 재취업을 고려하지는 않으셨나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출발한 사람은 한번 회사 나오면 패자부활전이 없어요. 경력직을 뽑아주지 않아요. 그래서 식당하다 망하거나 경비하는 거예요. 이민이 좋아서 온 게 아닙니다. 내 주변을 보면 예전에 종합상사에서 무역했던 사람은 재취업해서 지금도 먹고사는데 나머지는 재취업 못해요. 안 뽑아주니까.

택시 기사도 안 뽑아줘요. 얼굴 딱 보고 대학물 조금 먹어 보이면 골치 아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무역협회 나온 후) 마을버스 기사를 했는데 부사장이 빨리 나가라고 엄청 괴롭혔어요. 대학 나온 것 같다고.

 

김병철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마을버스 기사는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캐나다에서 버스 기사하려고 마을버스를 운전했어요. 처음엔 시내버스 회사에 갔더니 사무직 말투가 배어있어서 안 뽑아주는 거야. 그래서 마을버스로 갔어요. 강동 2-1번, 분당 3번, 수지 33번을 운전했죠.

 

-마을버스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다고 들었어요. 적응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30분 운전하고, 5분 쉴 수 있었어요. 점심엔 15분 딱 쉬어서, 종점 구멍가게나 회사 봉고에서 후다닥 먹어야 했어요. 밥 먹고 배차 간격 맞추려면 빨간 신호를 3개는 지나쳐야 했어요. 일요일은 격주로 쉬어요. 그러면 새벽 4시 반에 운전 시작해서, 월요일 새벽 1시까지 21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 거예요.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버스 초보라 사고도 잦았어요. 월급이 약 100만원인데 개인 차보험으로 200만~300만원 나온 거를 막아야 했죠. 눈이 와서 진입로가 얼었는데도 회사에선 무전으로 들어가라고 아우성치고, 차는 브레이크에 발만 얹어도 뒷바퀴부터 흘러 밭으로 빠져들어 가고. 못가겠다고 하면 노선 상무는 그만두라고 소리지르기 일쑤였죠. 사고나면 봉급에서 깔 것이고, 안 가면 잘릴 거고... 칼날 위에 선 무당이었어요.

 

-마을버스는 대부분 시내버스 기사가 되기 위해 경력 쌓는 과정이라 처우도 좋지 않다던데요.

기사를 사람 취급 안 하죠. 승객이 안 하는 건 당연하고... 어떤 노인은 제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 참았지요. 이렇게 한 1년 8개월 살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조기퇴직 당하고, 버스운전하면서 고생만 하다 이민와서 사실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요. 방학 때 애들 데리고 한군데도 갈 수 없었던 시절, 친구들한테 자진해서 전화 안 하고, 안 받던 시절.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정말로.

 

김병철
벤쿠버 시내

 

버틸 수 없어서 떠난 캐나다 이민

 

100만원 남짓한 마을버스 기사 수입으로는 생활비와 두 아이의 학교 육성회비를 내는 것도 버거웠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새로 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그는 본격적으로 이민을 준비했다. 한주환씨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도착한 건 2004년 10월. 그의 나이는 46세였고, 딸은 고2, 아들은 중3이었다.

 

-왜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셨어요?

2002년 이민 박람회를 갔어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민 조건을 따져보니 저는 유일하게 캐나다만 독립기술 이민이 되더라고요. 15년 동안 무역협회에서 해외시장 개척단 파견을 맡고 국제부에 근무했잖아요. 그 경력으로 마케팅 컨설턴트로 독립이민을 신청했어요. 2004년 3월에 면접보고 영주권이 바로 나와서 그해 10월에 밴쿠버에 왔어요. 마케팅 컨설턴트로 영주권을 받아도 실제로 여기서 뭘 할지, 어느 회사에 들어갈지는 안 따져요. 영주권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조건만 확인하는 거죠.

 

-많은 도시 중에 밴쿠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처음엔 위니펙(Winnipeg)에 버스 공고가 자주 나길래 거기로 가려고 했어요. 근데 춥고 인구도 적다고 해서 밴쿠버로 왔어요. 또 버스 기사 소득을 따져보니 한달에 2500캐나다달러(이하 모두 ‘달러’로 표기)가 안 돼요.

밴쿠버 도착했을 때는 직장도 숙소도 없었죠. 서리(Surrey)의 한인 홈스테이에서 20일간 살고, 월셋집을 구했어요. 그 때쯤 한국에서 이삿짐이 왔어요. 그 한인 이삿짐 센터에 내가 일 좀 하자고 해서 10개월 간 일했어요.

그때는 한인 이민이 워낙 많아서 밤 11시까지 일했어요. 호황이라 많이 벌었어요. 월 3,000~4,000달러 정도. 월 2,000달러면 네 가족이 먹고살았어요.

 

 

김병철
4월 밴쿠버 시내


-영어는 걱정 없으셨나요?

영어 잘 못했어요. 무역협회에서 외국 나가도 5분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었어요. 내가 돈을 주는 사람이잖아요. 돈 쓰는 영어와 돈 버는 영어는 달라요. 이민와서 영어 공부 많이 했어요. 특히 TV를 많이 봤어요.

백인들이 한국 사람 영어 못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쉬운 영어로 물어봐요. 근데 자기들 이익과 부딪치면 가차 없죠. 언어 장애(Language Disability)라고 불러요. 영어 못하면 장애 중의 하나인 거예요. 나같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괜찮아요. 근데 사무직이면 골치 아파지는 거죠.

 

-지금은 줄었지만 그때는 조기유학도 많았지요?

한국, 중국에서 이민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2006년까지 호황이었는데, 외환위기 때 없어진 종합금융회사 출신 이민자가 많았어요. 근데 영어를 못하니까 한국 남자들이 취직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많이 돌아갔어요. 남편은 한국 가서 돈 벌고 아내와 아이들은 캐나다에 남는 기러기 엄마가 많았어요. 지금도 많고요.

 

-캐나다에 이민 온 한인 부모들은 자녀를 꼭 대학에 보내려고 하죠?

여기는 대학 졸업이 어려워요. 대학 들어가면 아무도 축하 안 하고 ‘굿럭(Good Luck)’이라고 해요. 1학년 때 신입생의 30%가 나가고 3학년 땐 50%가 나가요. 공부에 재능 있는 애들만 대학 가는 거예요. 3일 밤새고 하룻밤 더 샐 애들이 가는 거죠.

지인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호텔리어가 됐어요. 그 아들이 이렇게 말해요. “제가 이력서 보고 대학 졸업한 애들 뽑는 위치인데 대학을 왜 가요?” 여긴 그런 나라예요. 건축 현장에서 일해도 다 대학 나온 애들만큼 살아요.

워킹홀리데이로 온 애들과 일해보면 한국에선 대학에 쓴 돈이 제일 아깝다고 해요.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지금은 시내에 자전거 정비사로 남은 애는 지금 돈 많이 벌어요.

 

 

한주환 제공
2005년 9월에 처음으로 외벽을 붙이는 일을 했던 주택. 일당 100달러, 점심으로 라면을 받는 조건으로 일했다.



캐나다에서 목수가 되다

 

캐나다에 온 지 13년이 지난 한주환씨의 지금 직업은 인테리어 목수(Finishing Carpenter)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사무직으로 15년을 넘게 일한 그는 어떻게 캐나다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새 출발을 하게 됐을까?

 

-건축일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이삿짐 10개월 하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다 (주택의 외벽을 붙이는) ‘사이더 헬퍼(Sider Helper)’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백인 빌더(Builder·건축을 총괄하는 사람) 눈에 들어 헬퍼 아닌 사이더가 됐고, 그다음엔 벽면, 지붕 세우는 프레임도 하고요. 캐나다집은 목조주택인데 집 짓는데 30가지의 전문 직종이 있어요. 타일하는 사람, 줄눈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 도사가 되죠.

 

-인테리어 목수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저는 (지금은) 마감 목수예요. 집안 벽과 바닥이 닿는 부분에 걸레받이(Baseboard)를 붙이고 문 옆에 몰딩(Casing)을 붙여요. 한국 집과는 개념이 좀 다른데요. 여기는 인테리어에 목숨 걸어요. 1mm도 틈이 나면 안 돼요.

 

 

한주환 제공
한주환씨가 설치한 베이스보드(걸레받이)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오전 6시50분에 출근해서 7시 땡하면 일 시작해요. 11시30분에 점심 먹고, 오후 3시~3시반에 퇴근해요. 좋은 회사는 3시간마다 쉬는 시간(Tea time)을 30분씩 주기도 해요. 일하는 동안 잠깐 쉬는 건 없어요. 담배도 못 피워요. 한국은 그런 면에선 어영부영하죠.

근데 저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하청계약(Subcontract)이라 내 마음대로 일해요. 내가 일한 만큼, 붙인 길이만큼 벌어요. 그저께엔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점심 10분 먹고 오후 5시에 끝났어요. 내일 봉급날이니까 일을 많이 했어요. 집에 가서 샤워하니까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저는 하청계약이라 세금, 산재보험도 별도로 내야 해요. 나는 나이도 먹었으니 하청계약하지만 젊은 사람은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연금, 보험도 받고 일하면 돼요.

 

-직접 집도 지으셨죠?

건축일 시작한 지 6년 쯤 됐을 때 한국에서 처남들이 캐나다로 이민오려고 투자했고, 나는 주택 건축 기술을 배우려고 지었어요. 그 집을 지으면서 캐나다 건축법을 많이 배웠어요. 빌더를 고용하고, 자격증이 필요한 전기, 배관은 기술자 불러오고, 나머지 90%는 내가 했어요. 시청과 (빌더가 속한) ‘워런티 회사’(새집을 사면 10년간 하자를 보수해주는 회사)의 검사에서 두번 떨어져서 고생도 했어요. 백인들과 투덕거리면서 배웠는데 수업료를 많이 냈죠.

 

 

한주환 제공
캐나다에서 직접 지었던 침실 8개짜리 3층집. 차고 포함해서 140평이다


-시청 검사가 그렇게 깐깐한가요?

탄자니아 사람의 집에서 주방을 넓히는 리모델링을 한 적이 있어요. 리모델링 도면을 가지고 시청을 갔더니 그동안 불법으로 건축된 거 싹 다 뜯으라는 거예요. 여기는 법을 정확하게 지켜요. 한국은 끝에 가면 흐지부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법대로 해요. 다 지으면 덮어놔서 안 보이잖아요. 여기는 그래도 열어봐요.

좋은 예가 있어요. 예전에 한국 사람이 타운 하우스를 지었어요. 지하실을 만들 때 방수되게 비닐을 깔고 철근을 넣어야 해요. 근데 한국 사람은 그냥 한 거예요. 시청에서 구멍을 뚫고 확인해봤어요. 집은 다 올라갔는데 어떡해? 준공 허가를 안 줘요. 결국 헐었고 그 사람은 망했어요. 여기는 원칙대로 끝까지 가고 확인해요.

 

-이쪽에서 일하는데 나이를 따지나요?

해고는 자유로워서 일 못하면 바로 잘려요. 근데 일만 잘하면 정년이 없어요. 나이를 안 물어보니까. 이력서에 나이, 출신국가, 학력, 성별 그런 거 없어요.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현장에서는 먹혀요. 빠지는 날 없이 한결같이 출근하니까요. 백인 젊은 애들은 월요일에 안 나오고 목요일 오후에 집에 가버려요. 할 게 많거든, 마약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잘려도 상관 안 하고.

 

-한인 이민자가 40, 50대에 건축 일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을까요?

한국은 일층부터 들고 날라야 하지만 여기는 자재가 다 올라와요. 지붕, 트러스, 타일도 다 기중기로 올라와요. 한국처럼 지고 나르는 게 없어요. 운반이 확실해요. 길이 넓어서 웬만한 주택가도 40피트(Feet) 트레일러가 들어올 수 있으니 괜찮아요.

 

-건축업은 남자들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현장 가면 여자도 많아요. 조경하면서 삽질하고, 전기하는 여자도 많아요. 자격증 따고 3년 지나면 시간당 50달러 받아요. 여기 학교 나오면 자격증을 딸 수 있어요. BCIT(British Columbia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에서 전기, 배관, 설비, 목수 같은 걸 배우면 돼요. 근데 영어 점수가 높아야 해요.

 

-캐나다엔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없어요. 2015년에 한국 고향에서 형제 공동명의로 1년 좀 넘게 캐나다식 목조주택 한채를 지었어요. 작업복 청바지 입고 식당에 들어가면 주문 받으러 잘 안 와요. 싫은 티를 내는 거지. 캐나다는 그런 게 절대 없어요. 페인트공은 모자에 하얗게 페인트 묻히고 은행 가요. 한국 가니깐 그게 확연히 보이는 거예요. 노가다는 노가다예요.

 

 

한주환 제공
2005년 두번째로 일했던 건축 현장

 

- 기술은 한국에서 배우고 와야 하죠? 

현장 가서 배워야 해요. 직업학교 같은 데서 내 친구도 목공을 배웠는데 수강료 떼먹기예요. 써먹을 수가 없어요. 타일은 잘 까는 기술자에게 돈을 주든지 어떻게 하든지 1년은 죽자고 배워야 해요. 용접도 현장에서 배워야 하고요.

 

 

김병철
고층 주거 건물이 많이 들어선 밴쿠버 시내

 

 

-초보자는 하기 힘들겠어요.

한국에서 숙련 기술을 가지고 와야 제2의 인생이 성공하죠. 한국에서 교수한 거? 그런 거 싹 다 포기해야지. 영어 안돼, 기술 안돼, 누가 뽑아요? 여기서 새 출발하려면 여기서 통할만한 기술을 한국에서 배워서 와야죠. 아니면 여기 대학에서 다시 배우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이민하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해요. 영주권 받을 수 있는 준비, 여기서 먹고살 수 있는 준비.

 

-한국에서 캐나다 목조주택 건축을 배우고 오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국에서 캐나다식 목조주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슬라브(Slab) 목수예요. 그리고 캐나다 건축법은 한국에서 배울 수 없어요. 방으로 쓰려면 높이가 2.1m는 되고 벽장이 꼭 있어야 해요. 계단의 넓이, 높이도 다 세세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김병철
밴쿠버 시내 그랜빌 다리 위에서 바라본 노을


만족스러운 생활, 불안하지 않은 노후

 

요즘 ‘백세인생‘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노후를 사회보다 개인이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선 반백살이 되긴 전인 30, 40대도 ‘노후’를 걱정한다. 반면 65세까지 6년이 남은 한주환씨에겐 그런 불안감이 없다.

 

-캐나다에 살면서 만족스러운 점은 어떤 건가요?

한국에 갔을 때 친구가 그걸 물어보더라고요. 내가 말했죠. 자연이 좋고, 병원비 안 내고, 연금 받으니까 노후 걱정을 안 한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있어요. 1년씩 계약직이라 계약이 끝나면 의료보험이 없어요. 그래서 미국 시민권자인데 의료보험 걱정 때문에 캐나다에 오려고 해요.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이 드는 게 의료비예요. 여기는 의료비가 안 들어요. 약값만 내요.

 

-캐나다 무상의료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의료보험에서 어느 정도 해주냐면, 아는 분 아들이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위급해서 심장 전문병원에 헬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했어요. 헬기도 공짜고 보호자 아버지가 그 시간 동안 못 받은 급여까지 줬어요. 미국은 앰뷸런스도 돈 내고 타야 해요.

암에 걸리면 검사비, 치료비가 무료예요. 정부가 일단 환자 운전면허를 취소시키고 병원 왕복 택시비까지 줘요. 머리 빠지면 스카프도 주고, 유방암 수술하면 2,000만원짜리 보형물도 무료예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사이즈도 고를 수 있고요. 다른 병은 주정부 의료보험에서 다 보장해주고요. 그래서 여긴 암보험, 상해보험 광고가 없어요.

내가 준 당뇨인데요. 패밀리 닥터가 당뇨 식이요법 설명해주는 사람에게 상담받아보래요. ‘영어 못한다’ 했더니 한국인 통역이 와서 설명해줬어요.

 

 

김병철
벚꽃이 활짝 핀 밴쿠버 시내



-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세요?

노령연금(OAS) 나오는 65세까지 할 거예요. 이제 6년 남았죠. 노령연금은 연금을 한 푼도 안 낸 사람도 받아요. 병원비 공짜니까 월세 내고, 식비 쓰면 죽을 때까지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어요.

은퇴하면 아무도 안 사는 시골 바닷가에 가서 살려고요. 여기 사람들이 생선을 별로 안 먹어서 물고기가 지천이에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들은 낚시 면허가 필요없어서 연어 잡아서 나무 비료로 줘요. 다시마, 미역, 굴도 넘쳐나고요.

*캐나다에선 선주민(인디언)을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선 노후에 국민연금이 안 나오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는데 (노령연금은 다른 종류의 연금이지만) 그런 걱정은 없나요?

하나도 없어요. 캐나다는 지하자원의 개인 소유가 허용이 안 돼요. 다 국유예요. 그래서 나라가 돈이 많아요.

 

-한국과 캐나다의 삶에서 다른 점은 뭘까요?

캐나다 이민 생활은 한국에 사는 거랑 많이 달라요. 회사 회식도 없고, 친구도, 동창회도 없어요. 밤문화가 없다는 얘기예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가족뿐이에요. 한국에서 1년 반 동안 집을 지었을 때 친구들을 만났더니, 가족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그동안 친구라는 걸 까맣게 잊고 살았어요.

이민자는 연고 없는 생면부지 백인과 영어로 떠들며 드라이하게 살아야 해요. 오랜만에 같은 나이,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쉬운 한국말도 편하게 대화하고 술 먹는 게 즐거웠어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건 한국이 좋더라고요.

 

-한주환님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조국이죠.

 

 

김병철
4월의 밴쿠버
김병철
밴쿠버 시내. 멀리 설산이 보인다
김병철
밴쿠버의 명소 개스타운(Gastown) 증기시계

 

 

김병철
캐나다에선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인 이민자가 많다. 사진은 편의점보다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스모크샵(Smoke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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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o 인구 : 약 3,598만명

o 면적 : 997만㎢ (세계 2위, 한반도의 약 45배)

o 유럽계 백인 약 80%, 여타 지역 유색인종 20%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연방 공용어)

o 영어 사용자 68%, 프랑스어 사용자 12.5%, 영어·프랑스어 사용자 17.5%

o 종교 : 가톨릭 43.6%, 개신교 29.2% 등

o 동포 : 22만4000명(2015년)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캐나다 이민부

o 주캐나다 한국대사관 이민정보

o 2017년 캐나다 이민정책 보고서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를 2018년 31만명, 2019년 33만명, 2020년 34만명(현 캐나다 인구의 1%)으로 확대할 계획

-수용 예정인 이민자는 크게 경제이민(58%), 가족이민(27%), 난민(14%)

-특히 유학생과 캐나다 노동시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고급 노동인력의 이민을 장려할 계획

-기존 이민 쿼터보다 연간 2,000명 이상 추가 수용하는 ‘대서양 이민 프로젝트(New Atlantic Immigration Pilot Program)’를 연장: 뉴펀들랜드,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뉴브런스위크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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