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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 인터뷰] 제주 예멘 난민들을 만나다 : 내 이름은 모하메드

그는 예멘 전쟁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549명에게는 549개의 이야기가 있다. 549개의 서로 다른 삶이, 생명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좀처럼 개별적으로 호명되지 않는다. 뭉뚱그려 ‘제주 예멘 난민’으로 지칭된다. ‘우리’를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로 간주돼 배제와 차별에 시달린다. 이들은 누구일까. 왜 집을 떠나와야 했던 걸까. 질문들은 좀처럼 벽을 넘지 못한다.

허프포스트는 사흘 동안 제주에서 예멘인 다섯 명과 마주 앉아 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 예멘 난민’으로 묶는 대신, 각자의 이름과 삶을 끄집어냈다. 이들의 경험은 비슷하지만 또 각각 달랐다. 오고 가며 인사를 주고 받은 다른 예멘인들의 삶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모든 삶은 개별적으로 말해져야 한다. 

모하메드(33)는 아내, 10개월 된 어린 아들과 함께 제주에 왔다. 예멘에는 부친, 두 자매, 형이 있다. 모친은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모하메드(33)는 아내, 10개월 된 어린 아들과 함께 제주에 왔다. 예멘에는 부친, 두 자매, 형이 있다. 모친은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HuffPost Korea/Yoonsub Lee

모하메드의 이야기

모하메드는 예멘 국책항공사 ‘예메니아예멘항공’ 직원으로 일했다. 아랍연합군의 공습이 있던 날, 그는 사나 공항에 있었다.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공항 바로 옆 공군기지로 사정없이 미사일이 쏟아졌다. 그는 ”겨우 도망쳐나왔다”고 한다. 3년을 훌쩍 넘겨 계속되고 있는 전쟁도, 그의 피난 생활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와 아내, 부친은 사나를 떠나 타이즈로 피했다. 공습도 따라왔다. 다시 사나로 돌아갔다. 집은 이미 파괴된 상태였다. 다시 고향 호데이다로 옮겼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저 기다렸는데 모든 게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래서 예멘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잃었다. 나 자신과 가족까지 잃고 싶지는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기 두달 전, 모하메드는 결혼식을 올렸다. 이집트에서 허니문을 즐겼다. 행복은 짧았다. ”신혼여행 다녀오고 한 달쯤 지나 전쟁이 시작됐다. 아내에게 금을 선물했었다. 우리 사정은 매우 좋았다. 직업도 있고, 땅도 있고, 집도 있고, 모든 게 괜찮았다. 예멘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선물했던 금을 모두 팔았다.”

모하메드는 ”전쟁과 폭격이 벌어지는” 사막지대를 통과해 혼자서 도보로, 자동차와 버스를 타고 오만으로 갔다. 그곳에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비싼 돈을 내가며 체류기간을 연장했다. 레스토랑 주방 일자리를 구했다. 불법이었다. 하루에 17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300달러를 벌었다. 현지인의 4분의1 수준이었다. 

1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잠시 전쟁이 멈춘 틈에 아내는 아덴을 출발해 뭄바이를 거쳐 쿠알라룸푸르에 왔다. 2016년 8월1일이었다. 1년 만에 아내와 재회한 날이다. 두 사람은 1년짜리 가족 비자를 받았다. 아이도 생겼다. 그러다가 예멘 커뮤니티를 통해 제주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모하메드 가족의 여권에는 '허가 없이 제주도를 떠날 수 없다'는 내용의 스탬프가 새로 찍혔다. </p></div>
<p>제주에서는 한국인 부부를 소개 받아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모친, 여섯 딸과 함께 제주에 온 예멘인 가족, 5남매를 둔 부부, 임신부가 있는 두 가족 등도 각각 다른 한국인 가족과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모하메드 가족의 여권에는 '허가 없이 제주도를 떠날 수 없다'는 내용의 스탬프가 새로 찍혔다. 

제주에서는 한국인 부부를 소개 받아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모친, 여섯 딸과 함께 제주에 온 예멘인 가족, 5남매를 둔 부부, 임신부가 있는 두 가족 등도 각각 다른 한국인 가족과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HuffPost Korea/Yoonsub Lee

사실 모하메드에게는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예멘에서 공부할 때 서울에서 온 박성균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의 부인도 우리랑 같이 공부했다. 한국 정부 지원을 받아 예멘에 와서 이슬람, 아랍 문화, 언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여러차례 나를 한국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예멘의 작은 마을에 가면 ‘한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학교’, ‘한국의 지원으로 문을 연 병원’, ‘한국이 지원해 준 버스’ 같은 걸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예멘을 도와줬다. 그런 한국이 우리를 받아준다는 거다.” 5월15일, 그와 아내, 그리고 10개월 된 아들이 탄 비행기가 4246km를 날아 제주공항에 내렸다.

그는 지금은 ”엄마, 아빠”로 부르는 한국인 노부부의 집에서 살고 있다. 이 부부는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장보러 가서 우리 아기 장난감, 옷, 음식도 엄청나게 많이 사줬다. 이 옷도 그 분이 사준 거다. 아내 옷도 사주셨고. 음식도. 모든 걸 다 사주셔서 우리가 남겨놓은 돈 200달러는 그대로 있다.”

그는 예멘 전쟁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모두가 자기쪽 사람들을 대통령에 앉히고 싶어한다”는 것.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시아파고, 아빠는 수피파(Sufi)다. 자식들은 다 수니파고. 같은 종교지만 종파가 다르다. 그래도 우리는 한 가족이다. 그동안 행복하게 잘 지냈다. 같이 잘 살았다.”  

모하메드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가 잠잠해지고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게 정리되면 나는 돌아갈 거다. 내 생활은 괜찮았다. 공부도 많이 했고, 일도 많이 했다. 집도 샀고. 잘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 내 잘못도 아니고, 다른 가족들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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