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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 교과서에서 빼는 것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이진우
  • 입력 2018.07.03 17:52
  • 수정 2018.07.03 17:53

지난해 말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시 <괴물>을 발표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시가 초·중·고 교과서에서 빠지게 된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3일 밝혔다. 최 시인은 <괴물>을 통해 고은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고, 그에 대한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지난 3월 교육부는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공이 큰 시민과 단체를 발굴하는 ‘서울특별시 성평등상’ 대상에 최영미 시인을 선정하고, 이날 서울시청에서 시상식을 개최했다. 시상식에 앞선 언론인터뷰에서 최 시인은 고은의 시가 교과서에서 빠지는 것에 대해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는 것을 반대한다”며 “고은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 든 빼지 않든 살아남을 것이다. 반대로 그의 시가 생명력이 없다면 교과서에 실리든 실리지 않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이어 “복잡한 심경이며 오로지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미투 운동’에 대해 “더 진전돼야 한다. (시 발표 이후) 약간 달라졌지만 아주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여성들이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학계 성평등 문화를 위해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점으로 문화예술 관련 기관의 기관장 자리에 여성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문학상 심사위원들, 한국문학번역원 등 문화예술계 단체의 수장들 전부 남성이다. 문화예술계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시인은 올해 하반기에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엮은 산문집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문학 외의 사회 활동보다는 작품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앞에 나서게 됐는데 이왕에 할 것이면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은 제가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 사는 삶이 나한테 맞지 않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제가 끝끝내 시를 놓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문단계 성폭력에 대해 추가로 더 폭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시인은 시만 쓰면 된다고 생각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가 발언한 적이 거의 없다. 이번에도 제가 목소리를 내려고 낸 것이 아니라 시 한 편 쓴 게 파장이 일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괴물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이젠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공공연한 성폭력을 묵인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며 “(추가 폭로는) 더 하고 싶지 않다. 추가 폭로에 대한 발언 때문에 과거 저를 성추행했던 문인들이 SNS상에서 저를 공격했다. 말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므로 경고만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최 시인은 지난해 12월 문학잡지 황해문화 겨울호를 통해 문단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시 <괴물>을 발표하고 문학계 원로의 성추행을 세상에 알렸다. 최 시인의 작품을 계기로 문단계 성폭력에 대한 증언이 여럿 나오며 한국 사회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 운동’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영미 시인 일문일답

-시 발표 이후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달라지지 않았다면 어떤 부분이 달라져야 하나

=약간 달라졌지만 아주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데뷔 초 문단 분위기는 거의 기생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적대상화가 아주 일상화 돼있었다.

-<괴물> 시를 쓰시고 En 시인이 어떤 분인지 명확히 말씀하신 적은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데, 이유가 있나?

=제가 굳이 그 이유를 말해야 할까.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를 할 때 증언을 했다. 공적인 기구에 나가 딱 한번 실명 확인을 해줬다.

-올해 초 미투운동을 계기로 교육부가 초중고 교과서를 조사해 출판사가 원하면 고은 시인의 시를 빼기로 했다. 대다수 출판사가 원해 고은 시의 시가 빠지게 됐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복잡한 심정이다. 고은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는 것을 반대한다. 그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든 빼지 않든 살아남을 것이다. 반대로 그의 시가 생명력이 없다면 교과서에 싣든 싣지 않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시간 만이 말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문학계에서 성평등 문화를 위해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하는 점은?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거의 남성들이다. 한국문학번역원 등 문화예술계 단체의 수장들이 전부 남성이다. 문단 내, 문화예술계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눠야 한다.

-시인의 역할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많아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하반기에 산문집을 하나 낼 계획이다. 제가 주로 페이스북에 쓴 글들을 모아서 낼 것이다. 페이스북을 2016년부터 시작했다. 오랜시간 저는 침묵했다. 시인은 시만 쓰면 된다고 생각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가 발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양심수 석방에 대해 움직인 것 외에는 발언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제가 목소리를 내려고 낸 것이 아니라 시 한편 쓴 게 파장이 일었다. 마흔살 이후 너무 힘들어서 시를 놓으려 했다. 시인으로 사는 삶이 나한테 맞지 않은 것 아닌가 싶었다. 소설을 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제가 끝끝내 시를 놓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부담감과 책임감이 크지 않나?

=평소에 부담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은 제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앞에 나서게 됐는데 이왕에 할 것이면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달 간 저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앞으로는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미투운동이 지금보다 더 진전돼야 한다.

-지난 2월 (서울방송) 인터뷰에서 “제가 아직 판도라의 상자를 다 연 것이 아니다. En선생의 문제가 아니다. En선생보다 더 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추가적인 폭로 계획이 있나?

=없다. 추가 폭로 계획없다. 괴물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제가 투사도 아니다.(웃음) 그 말의 취지는 약간의 경고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제가 다 열 수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이젠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폭력을 묵인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추가 폭로는) 더 하고 싶지 않다. 제가 그 발언 때문에 과거 저를 성추행했던 문인들이 SNS상에서 저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그 중 시인 ㄱ은 제 엉덩이를 만진 사람이었다. 제 시가 화제가 된 이후에 저를 공격한 남성 문인들 중 일부는 저한테 직접 성추행, 성희롱 한 사람이었다. 제가 ‘판도라의 상자’ 언급을 하자 그들이 찔렸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명은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경고만 하고 싶다.

-문학계에서의 공고한 차별에 대해 균열이 있는데, 더 깨질 수 있고 생각하나?

=오랫동안 존재했던 악습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는다. 여성을 희롱 대상으로 삼는 남성지배 문화가 수천년간 존재했다. 이 운동이 지속돼야 하나의 성공한 사례가 된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일상화된 폭력, 예를 들면 상사에 의해 벌어지는 부하직원들의 피해에 남성들도 공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작품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보여주시겠지만 또 다른 행동으로 보여주실 것이 있나?

=없다. 저는 원래 조용히 사는 것을 좋아한다. 제 일상이 몇 달 동안 깨졌었다. 제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이 있다. 고맙다. 이 옷도 친구들이 사준 것이다. 어느 날 너무 고생했다면서 친구가 여의도 지나가다 옷을 사줬다. 목걸이는 동생이 사줬다. 제 여동생 둘이 있는데 동생이 아주 큰 도움이 됐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한테 고맙다.

-단체 등과 연대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저한테 요청이 왔다. 결론적으로 일을 벌인 셈이니까 제가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 미투 사회 연대에 한번 나갔다. 그 외에 제가 나서는 게 불편하다. 작가니까 글로 보여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성평등상은 최 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미래에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아들딸들에게 제안할 것은 무엇인가?

=밤거리 안전하게 만들어 가자. 더이상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면접시험 앞두고 과도한 치장을 하는 문화가 없어졌으면 한다. 여중생들이 틴트를 바르고 있다. 제가 강의를 하러 중고교 교실을 한번 가봤는데, 다들 빨갛게 칠하고 있다. 그 앞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각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제가 유럽 여행할 때였는데 스페인처럼 밑으로 내려갈 수록 여성 화장이 진해졌다. 여성들에게 진한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일 수록 여성이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 중고생의 화장이 짙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외모지상주의가 심하다는 것이다. 외모보다 인격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찬성한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좋다. 저도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 화장을 지우는 일이다. 하지만 ‘화장은 악이다’ 구분 지을 순 없다. 지나치다면 그것도 문제다. 탈코르셋 운동하는 분들이 대부분 젊은 분들이다. 제가 오늘 나오면서 고민을 했다. 바지를 입어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치마가 편해서 그냥 치마를 입었다. 세세한 것까지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편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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