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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법관 후보의 키워드는 '여성'과 '노동'이다

'서울대, 오십대, 남자' 가 줄어들고 있다

  • 백승호
  • 입력 2018.07.03 15:13
  • 수정 2018.07.03 18:28

김명수 대법원장은 2일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선수 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57·17기), 노정희 법원도서관장(54·19기), 이동원 제주지방법원장(55·17기)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했다.

이들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김선수 변호사는 검사, 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변호사로 활동했다. 김선수 변호사가 임명될 경우 법관 경험 없는 이가 대법관이 되는 매우 드문 사례가 된다.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은 비서울대 출신에 여성이다. 이동원 제주지방법원장도 비서울대 출신이다. 그간 대법관이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으로 채워진 것에 비하면 구성이 더 다양해졌다.

이번 임명안이 통과된다면 현재 대법관 14명 중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수가 8명이다. 11월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의 후임까지 고려한다면 9명까지 늘게 된다. 사법부의 ‘지형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임명된 대법관 4명도 모두 비서울대 출신이거나 여성 법관이었다.

이번에 제청된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파격‘은 더욱더 드러난다. 단순히 ‘출신 성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익명의 판사 입을 통해 “이번 인사로 사법 권력의 축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삐딱선’ 김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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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는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최고 성적인 만큼 검사, 판사 등 원하는 곳에 배치받을 수 있었지만 김선수가 택한 건 변호사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선수는 전태일을 생각하며 사법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그의 합격기에는 “도대체 이것(사법시험)이 무엇이길래 수재라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담보 잡히고 (중략) 합격했으면 판사나 검사로 임관받아야 한다는 사회통념이 형성된 것일까. 이런 통념은 아무런 의문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돼야 할까? 사회질서 자체가 불공평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일까? 사법시험 공부가 해석에만 치중해 법 제정 동기와 배경, 사회적 기능을 도외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같은 물음이 담겨있다.

‘전태일‘을 생각하며 사법시험을 치른 그답게 시험에 합격한 뒤 그는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 후 30년 간 그는 ‘노동 전문 변호사’로서 입지를 다진다.

1989년 그는 ‘민중미술 미술운동 전국 연합 건설 준비위원회’ 소속 화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변호를 맡는다. 이 과정에서 안기부 수사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헌법상 권리인 변호인과 피의자 간의 접견교통권이 적법하게 보장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결국 접견교통권이 위법하게 제한된 상태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냈으며 이 판결은 형사소송 절차를 진보시킨 판결이라는 평과 함께 1996년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뽑은 10대 판결에 선정되었다.

굵직한 판결을 또 있다. 1992년에는 ‘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의 집회 신고가 경찰에 의해 집회금지통고처분을 받자 김 변호사는 참가자를 대신해 집회금지통고 취소 및 취소효력정지 청구 소송을 대리해 승소한다. 이때 판결은 집회·시위의 자유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사내하청 노동자 지위, 노동자 해고 요건, 통상임금 법리 등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상당 부분 그의 변론을 통해 기틀이 잡혔다고 법조계와 노동계는 평가한다. 법조계의 진보적 흐름을 이끄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비교적 최근인 2013년에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진당 변호인단 단장을 맡았다. 이 부분이 자유한국당이 김선수 후보를 가장 반대하는 이력이기도 하다.

‘그 관습은 틀렸다’ 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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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법원도서관장인 노정희 대법관 후보는 이화여대 법대 출신 판사에 여성이다. 단순히 여성인 성별만 주목할 건 아니다. 그는 법원 내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고 또 개혁적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페미니즘과 성차별 해소라는 시대적 부름에 부합할 후보로 여성 대법관 확대 차원에서 유력하게 꼽혀왔다. 노정희 후보가 임명된다면 전체 대법관 14명(대법원장 포함) 중 여성은 4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숫자가 된다.

노정희 후보의 판사 시절 대표적인 판결은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민사소송을 제기한 A씨는 자신의 성을 아버지의 성에서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었는데 이를 이유로 종중은 관습에 따라 A씨의 종중 자격을 박탈했다. 이씨는 종원의 자격을 달라고 주장했고 종중 측은 “종중은 부계혈족을 전제로 하는 종족단체”라며 “모계혈족인 이씨에게 종원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노정희 후보는 당시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관습은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아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로 A씨의 종원 자격을 인정했다.

이밖에도 장애인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회복지법인에 대해 법인 임원들의 성범죄 예방 의무 및 가해자 분리 의무, 고발 및 보호조치 의무 등을 명령했고, 이를 위반한 경우 인권 침해행위이자 해임 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원리원칙 주의자’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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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제주지방법원장은 앞서 두 후보에 비해 특이한 이력은 없다. 1991년 판사로 임용된 후 재판 업무를 줄곧 담당했다. 재판 실무에 능통하고 법리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특별히 거부하고 있지 않은 후보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이동원의 임명제청에 대해 ‘엘리트 법관들을 제외할 수 없다는 조직 안정 차원에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 판사는 한겨레에 “대법원장이 이동원 원장 제청을 통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이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판결은 지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당시 제기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의 지위확인 소송에서 ‘소속 국회의원이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결정한 판결이다.

이동원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시절에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부모와 같이 난민신청을 한 미성년 자녀에 대해 별도의 면접심사 없이 난민을 불인정한 결정에 대해 난민법과 UN협약을 위반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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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임명제청안의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여 후보자들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동의안을 표결한다. 국회에서 가결되면 문 대통령은 이들을 새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특별히 김선수 변호사를 지목해 ‘절대 불가’하다고 이야기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일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 사법부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인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데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들의 재판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명 제청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인사를 다시 임명 제청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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