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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한국 편

  • 임범
  • 입력 2018.07.03 14:55
  • 수정 2018.07.03 14:58
ⓒhuffpost

얼마 전 방영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한국 편’을 봤다. ‘고로’라는 인테리어 중개업자가 식당을 찾아가 맛있게 먹고 나오는 ‘먹방’ 드라마다. ‘한국 편’은 2회 분량으로 첫 편에선 전주의 청국장 집이, 둘째 편에선 서울 용산의 돼지갈비 집이 나왔다. 여느 편처럼 한국의 사무실, 시장, 주택가 뒷골목을 간단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중계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예사롭게 옆 동네에 들른 것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내겐 못마땅한 게 보였다. 서울과 전주의 뒷골목이 추레해 보였고(좀 더 예쁜 골목을 찍으면 안 되나), 통유리벽의 아래 반을 색비닐로 가린 식당의 외관과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글씨의 간판도 촌스러웠다(좀 더 예쁘게 찍을 수 없었을까). 청국장 비빔밥과 돼지갈비라는 메뉴도 우리에겐 지나칠 만큼 익숙하지만 일본인에겐 다르다 치자. 그런데 고로는 너무 짜게 먹었다. 짠 반찬들을 넣고 청국장, 고추장 넣고 비빈 것 자체로 색이 벌건데 그걸 상추에 싸 먹는다면서 된장을 듬뿍 넣었다. 배춧잎 한 장짜리 김치를 한입에 먹었다.

마침 이 드라마 촬영 현장에 있었던 지인에게, 한국 편의 식당을 어떻게 정했는지 아는 게 있냐고 물었다. 후보지 세 곳 정도를 가지고 와서, 작가와 스태프가 미리 가서 여러 끼니를 먹어 보고, 여러차례 회의를 거쳐 정하더라고 했다. 여느 편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 거였다. 이 드라마의 작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식당 정하는 원칙이 ‘도심 번화가가 아닐 것, 예전 느낌이 있을 것, 조금 한적한 곳에 있을 것, 맛있어야 할 것’이라는데 딱히 거기에 어긋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한국 편만 못마땅해 보였을까.

기사엔, 이 드라마가 촬영을 위해 새롭게 꾸미기보다 ‘있는 그대로’ 찍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촬영할 때 서울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와서, 평소 하던 대로 해달라고 부탁했단다.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번화가 아닌 뒷골목 한적한 곳에 예전의 느낌이 남아 있는 식당을 있는 그대로 찍으면, 그게 청국장 집이든 돼지갈비 집이든 이렇게 나오는 거였다. 이전 편에선 일본의 골목과 식당이 이국적이어서 추레하고 촌스러운 느낌이 덜했던 거다.

돌이켜보면 이 드라마에 나온 일본 식당 중에 볼품없고 음식도 진짜 맛있을까 의심 가는 곳도 있었다. 애초부터 내게 이 드라마의 매력은 맛집 정보에 있지 않았다. 항상 혼자 먹으며 주변을 관찰하는 고로와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느긋한 기분이 좋아서였다.

그럼에도 막상 한국 식당이 나오니까, 익숙한 것들이 보이니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기존의 먹방 프로그램에, 꾸미고 치장하고 ‘맛있다’는 과잉의 리액션을 연발하는 연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중독돼버린 탓이 클 거다. 그만큼 습관은 무서운 거다. <고독한 미식가>도 시즌을 거듭하면서 고로가 다니는 동네와 식당, 그곳 사람들에 대해 심심한 듯하면서 감칠맛이 숨어 있는 특유의 에피소드가 줄고 ‘먹방’ 프로그램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이 드라마는 식당 간판을 가리지 않고 크게 보여준다. 한국 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도 관련 규정을 바꿔서라도 먹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식당 이름을 감추지 말고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 식당 이름을 감추니까 출연진이 맘 놓고 ‘맛있다’는 과잉 리액션을 보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과장·허위 광고가 돼버리는 면은 없는지. 이름을 감추고 치장하는 것과,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찍는 것, 어떤 게 나을까.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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