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7월 03일 14시 57분 KST

주디 갈랜드가 사후 49년인 지금도 게이 팬들을 사로잡는 이유

그가 없었다면 게이 아이콘 마돈나도 레이디 가가도 없었다.

ILLUSTRATION: ALYSSA SPATOLA/HUFFPOST PHOTO: GETTY

주디 갈랜드가 사후 반 세기만에 영화로 돌아온다.

기대를 모으고 있는 주디 갈랜드의 전기 영화 ‘주디’에서 르네 젤위거가 갈랜드의 말년을 연기할 예정이다. 3월에 홍보 사진이 처음 나와, 갈랜드를 맡은 젤위거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주디’는 2016년에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주연을 맡았던 르네 젤위거의 컴백작으로 거론되며, 젤위거가 무대와 영화에서 전설과 같은 존재였던 갈랜드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한 장이 이렇게 화제가 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보아 갈랜드의 족적이 지금도 여전함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주디 갈랜드는 1939년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아역으로 출연했고, 1961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러나 게이 커뮤니티에서 갈랜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녀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베트 미들러, 레이디 가가 등 퀴어 팬들이 사랑하는 여성 스타들의 기준을 만든 선구적 아이콘이었다.

여러 해 동안 여러 언론인과 역사가들이 갈랜드에 대한 게이 팬들의 사랑을 분석하려 애썼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게일 역을 맡은 그녀는 친근한 이웃집 소녀의 이미지를 풍겼지만, 결혼 실패, 재정적 어려움, 1969년에 슬프게도 그녀를 목숨을 앗아간 마약 중독 등 실제 삶에서는 많은 문제를 겪었다.

게이 남성들의 연애와 인권이 인식되지 않던 시절에 이러한 대비가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견해가 많다.

“그녀는 어려움을 극복한 대표적 인물이다. 인간의 깊은 감정에 진정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는 것이 주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게이들은 가장 깊은 곳까지 가도록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자랐다.” 뉴욕의 배우, 작가, 연기자인 저스틴 세이어가 허프포스트에 2012년에 했던 말이다.

갈랜드의 팬인 스콧 브로건은 1999년부터 인기 팬 사이트 ‘더 주디 룸’을 운영하고 있다. 브로건 역시 비슷한 감상을 말했으나, 갈랜드가 다른 스타들과 구분하는 점은 엄청난 재능이라고 강조했다.

“내게 있어 주디는 게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 나는 그녀의 삶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녀는 잘 나갈 때는 정말 잘 나갔고, 힘들었을 때는 정말 바닥까지 내려갔다. 어떤 면에서는 비극적인 삶이었던 것도 맞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다.”

흥미롭게도 갈랜드는 게이 팬들 사이의 인기에 대해 직접 질문을 받았을 때 내숭을 떨었다. “나는 관심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노래한다!” 1965년 샌프란시스코 기자회견 중의 발언이었다 한다.

2년 뒤 그녀는 TV 저널리스트 어브 컵시넷에게 “내 관객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 … 십대들이 있고, 내 또래 사람들도 있다. 내가 내 관객들을 잘못 대할리가 없다.”고 말했다. (위 영상)

갈랜드의 삶에서 게이 팬들의 의견이 갈리는 부분도 있다. 현대 LGBTQ 인권 운동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1969년 스톤월 항쟁에 그녀가 관련되었다는 설이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스톤월에서 항쟁이 일어난 것은 1969년 6월 28일 새벽으로, 갈랜드의 장례식이 열린지 24시간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녀의 죽음에 깊이 영향을 받은 게이 팬들이 스톤월에서 경찰의 습격에 맞섰다는 주장이 있다.

찰스 카이저가 1997년에 낸 책 ‘게이 메트로폴리스’ 등에서 제시한 이 이론은 최근 역사가들과 스톤월 전문가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다. 스톤월 당시 웨스트 빌리지 동네 아이였다고 하는 저자 겸 저널리스트 마크 시걸은 이 이론이 ‘불편한 역사적 해석’이라며 ‘우리가 맞서 싸웠던 압제를 하찮아 보이게 만들고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노골적 모욕’이라고 2015년 PBS 컬럼에 썼다.

스톤월 참가자인 토마스 래니건-슈미트의 의견도 비슷하다. 당시 항쟁에 참가했던 젊은이들 상당수는 갈랜드보다는 록과 R&B에 흥미가 있었을 거라 지적하며, “[장례식과] 스톤월을 연관짓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연관이 없다고 말해봤자이니 마음대로 믿게 두라. 내 말을 믿어라. 장례식 때문에 항쟁이 시작된 게 아니다.”라고 2016년에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갈랜드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은 2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브로건은 스톤월의 역사에는 여러 층위가 있음을 강조하며 그 영향이 있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갈랜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물론 길거리 아이들 상당수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디의 죽음이 영향이 있었다는 걸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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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가 갈랜드와 스톤월 항쟁의 문화적 연결을 어떤 식으로든 언급할지는 영화 개봉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혹평을 받았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5년작 ‘스톤월’에서는 이를 슬쩍 내비쳤다.) 이 영화는 갈랜드가 현대 대중에게도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에 나오게 되었다. 사망한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스타에 대해서라면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2012년 뉴욕 타임스 기사 ‘주디즘의 독실한 신도들이 힘들어지고 있다’를 보자. 로버트 르루는 게이 커뮤니티의 갈랜드 사랑을 ‘주디즘’이라 부르며, 이는 ‘어렴풋한 문화적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르루는 갈랜드가 지금도 자신의 ‘수호 성인’이지만, 한 친구와의 대화 증 대중의 상상 속에서 휘트니 휴스턴과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개인적 어려움이 아티스트로 남긴 족적을 넘어설 것 같았던 스타들이 갈랜드를 뛰어넘었다는 주장을 들었다고 밝혔다.

다른 의견도 있다. 2014년에 저널리스트 마이클 무스토는 역대 최고의 여성 게이 아이콘 순위를 꼽으며 갈랜드를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보다 위로 선정했다. 토니 쿠시너는 ‘앤젤스 인 아메리카’가 2018년에 토니 상을 받았을 때 시상식에서 “오늘이 6월 10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대체 어떤 동성애자겠는가? 생일 축하해요, 주디 갈랜드!”라고 말했다.

브로건은 갈랜드를 기리는 수많은 연기자, 연극, 회고담과 ‘주디’ 개봉 전의 화제를 가리키며 갈랜드가 생전에 받았던 게이 팬들의 사랑과 지금의 매력은 크게 다르지만 지금도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의 투쟁은 너무나 달라졌다. 게이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등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갈랜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슬픔, 폭풍 속을 날아가는 작은 참새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우리의 아이콘이야.’라는 식은 아니다. 그녀의 재능과 탁월함을 기리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보며, 그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