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7월 02일 13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02일 13시 19분 KST

북한이 그녀의 13세 딸을 납치했다. 그녀는 수십 년째 딸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매일 죽고 싶었다. 내 슬픔을 잊기 위해서였다.”

NICK ROBINS-EARLY

일본 니가타 - 요코타 메구미는 사라졌을 때 13세에 불과했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중학생이던 메구미는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다 사라졌다. 집에서 학교는 걸어서 불과 8분 거리였다. 1977년 11월 15일, 일몰 직후였다. 당시의 날씨 기록을 보면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은 맑았다.

메구미의 어머니는 당시 9살이던 메구미의 쌍둥이 남동생들과 함께 조용한 주택가를 미친듯이 뒤졌다. 헬리콥터와 수색견들이 동원된 대규모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결과는 없었다. 개들은 메구미의 집 몇십 미터 앞까지 메구미의 흔적을 따라갔지만 거기서 끊겼다.

당시 메구미는 북한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되어 이미 북한행 배에 타고 있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북한은 일본 시민 최소 17명을 납치했다. 일본 전역에서 납치가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유럽에 갔다가 납치된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20대였고 커플인 경우도 있었으나 그 외에 공통점이랄 것은 없었다.

비밀스러운 북한 정권은 그들의 운명에 대한 정보를 별로 유출하지 않았다. 납치된 이유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북한 정권의 범죄는 일본의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를 이용해 반 북한 정서를 부추기고 정치 커리어에 활용했다. 메구미는 현재 일본인 납치 이슈의 대표적 이미지이며, 정부가 만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국수주의의 강력한 주제가 되었다.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는 이제 82세다.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회담이 계기가 되어 죽기 전에 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시간과의 싸움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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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도쿄 북부의 아파트에 산다. 13세의 메구미가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앨범을 보관하고 있다. 40년이 지났지만 사진은 그대로다.

“이게 우리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미국 대통령 세 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1월에는 도쿄에서 멜라니아와 도널드 트럼프를 만났따. 트럼프에게 메구미와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트럼프는 사진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용서할 수 없다.”고 그녀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메구미가 사라진 뒤 슬픔 때문에 거의 망상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메구미의 목격담이 없나 신문을 뒤졌다. 가끔은 길에서 보이는 여자아이가 메구미라고 생각해 달려가기도 했다. 저녁이면 딸의 유해가 있을까 하여 남편 시게루와 함께 바위 투성이 해변을 걸었다.

“매일 죽고 싶었다. 내 슬픔을 잊기 위해서였다.”

메구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20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1997년에 한 탈북자가 북한이 비밀 납치를 시행했으며, 니가타에서 20년 전에 메구미와 비슷한 소녀를 데려왔다고 남한 정보국에 밝혔다. 일본 미디어가 이 정보를 입수했고, 한국 정보기관이 일본 측에 이 이야기를 전했다.

북한은 일본 등의 국가에서 납치를 해온 적이 있다고 결국 2002년에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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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 사키에는 북한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았을 때 너무나 기뻤다. 불합리함과 비극보다는 메구미가 전체주의 국가에 갇혀있다 해도 아직 살아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훨씬 강렬했다.

북한은 납치와 목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첩보기관을 관리할 때 일어난 일이다. 일부 피랍자들은 북한 간첩의 언어 교사로 사용되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협상 도구로 쓸 수 있기 전, 일본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납치했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2002년에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 약속에 대한 대가로 납북자 송환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북한은 메구미를 포함해 8명이 사망했다는 암울한 소식을 전해 고이즈미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사망에 대한 설명은 애매모호했고 설득력이 낮았다. 한 명은 수영하다 사고로, 한 명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일부 실종자 경우 북한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북한은 메구미가 우울증으로 입원했다가 1994년에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의 방북 이후 북한은 납북자 5명의 일본 방문을 허가했다. 그들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후에 여러 해 동안 세뇌와 감시를 받으며 작고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서 생활했다고 밝혔다. 메구미를 만났다는 이들도 있었다. 메구미는 한국에서 납치된 남성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고 한다.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북한의 말을 가족들과 일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중은 분노했고, 일본 미디어는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다루었다. 이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국수주의, 군국주의, 피해의식을 자아내는 이슈가 되었다.

“세계2차대전 이후 최초로 일본이 피해자가 되었다.” 난잔 대학교 한국학 교수 슌지 히라이와 박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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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는 총리가 되기 전부터 납북자 문제의 협상을 이끌어 왔다. 북한에 대해 매파 입장을 취하고 납북자 문제를 강조한 것이 2006년 집권에 유효했다. 집권 즉시 그는 유력 내각을 꾸려 이 이슈에 맞섰다. 정부는 가족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으며, 아베는 올해도 그들을 여러 번 만났다.

아베에게 있어 이 문제는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으며 초당파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또한 자신의 이슈라 주장할 수 있는 드문 정치적 이슈다. 아베가 이 이슈를 사용해 자신의 인기를 높이려 한다, 국수주의적 지지를 자아내려 한다고 비판하려 시도한다면 납북자와 가족들을 모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베로선 참 써먹기 좋은 이슈였지만, 이제는 위험이 따르고 있다. 북한이 외국들과 외교 관계를 강화해하고 있으나 일본은 협상 테이블에서 빠져 있다. 제재 취소나 완전한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아베와 김정은의 만남이 예상되지만, 수년 간 수사를 늘어놓았던 아베가 납북자 문제에 대해 의미있는 진전을 내놓지 못할 경우 이미 스캔들로 얼룩져 있는 아베의 정권에는 정치적 반발이 일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을 믿지 못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2004년에 북한은 메구미의 화장한 유골을 보냈다고 주장했으나, 일본 정부는 DNA 검사 결과 메구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요코타 사키에는 자신의 딸의 유골이라 믿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북한의 외교적 발언을 불신한다. 협상 끝에 2014년에 몽골에 가서 손녀와 사위를 만났을 때도, 메구미의 남편이 북한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메구미가 죽었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납치의 완전한 정황을 밝히라 요구하며, 납치자 체포와 생존 납북자의 즉각 송환을 촉구한다. 하지만 북한이 일부 납북자가 실제로 사망했음을 밝힌다 해도 일부 납북자가 살아있으며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납북자 수백 명이 더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일본 정부에겐 타격이 될 수 있다.

납북자 가족들에겐 크나큰 아픔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은 납북자들이 사망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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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부로서는 이 반복되는 패턴을 깨야 할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납치된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기다리다 사망한 가족들도 있다. 요코타 시게루는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 중이며, 쌍둥이 동생 요코타 타쿠야와 요코타 테츠야는 부모들의 활동 일부를 넘겨받기 시작했다.

납북자 가족 협회의 회장 이즈카 시게오(79)는 최근 협상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우려한다. 1978년에 북한은 그의 여동생 타구치 야게오(당시 22세)를 납치했다. 이즈카 시게오는 1살이던 그녀의 아들을 키웠다.

이즈카는 미국 대통령과 외교관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앞에 앉아 “시간이 바닥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즈카는 2002년에 돌아왔던 5명의 납북자처럼 자신의 여동생이 비행기에서 내려서 아들을 끌어안는 날을 그려본다. 타구치가 성인이 된 뒤 거의 쭉 북한에서만 지냈지만 상관없다. 이즈카는 지금 동생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동생이 마치 납치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메구미 이야기를 하는 요코타 사키에도 굳건히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끔 자기 앞에 놓아둔 푸른 사진첩을 넘겨본다. 메구미의 아기 시절 사진을 보며 메구미가 처음으로 고개를 가누었을 때 자신과 남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떠올린다. 메구미가 작은 새 신발을 신은 사진을 보며 저 신을 샀을 때 가죽이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생각한다.

“이 사진들을 보면 심지어 당시의 냄새까지도 기억난다.”

메구미가 사라진 뒤 요코타 사키에는 메구미의 학교 친구들이 나이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 딸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메구미는 53세일 것이고, 요코타 사키에로선 떠올리기 쉽지 않다.

“말랐겠지만 건강할 것이다. 지금 어떤 모습인지는 떠올릴 수가 없다. 불행한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늘 희망을 가지려 한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