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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딸 결혼식'이 보통의 결혼식과 달랐던 이유

청첩장에는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겨레

“대표님, 한겨레 서영지 기자입니다. 오늘은 취재하러 온 게 아니라 축하하러 왔다고 합니다.”

30일 오전 11시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의 큰 딸인 서아무개씨의 결혼식이 열리는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 도착했습니다.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가니 저를 알아본 당 관계자가 추 대표에게 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솔직히 ‘움찔’했습니다. 축하하는 마음도 있지만, 취재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권여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이니, 평소 취재하기 어려운 당·정·청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현안을 취재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지난해 대선과 올해 지방선거 승리의 중심에 있는 ‘서슬퍼런’ 여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 풍경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축하해야 할 자리에 취재를 왔다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자녀 결혼식을 기사로 보긴 했지만, 취재는 처음이었습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당 최고위원회에서 엄중하게 발언하는 모습만 보다가 이날 ‘대표’가 아닌 ‘어머니 추미애’로 환하게 웃으며 직접 하객들을 맞는 모습을 보니 색달라 보이긴 했습니다.

■ 카카오톡에서 퍼졌던 청첩장 ‘해프닝’

추 대표 장녀의 결혼식이 알려진 건 10여일 전쯤 기자들 사이에 카카오톡을 통해 모바일 청첩장이 돌면서부터입니다. 여기에는 ‘추미애 인사드립니다. 저의 큰딸이 결혼식을 올립니다. 앞날을 축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추 대표가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린 것이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추 대표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가 기자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청첩장을 본 기자들 사이에서는 ‘왜 축의금은 사양하지 않느냐’는 뼈있는 농담이 오고 갔습니다.

결혼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결혼식 한 시간 전인 11시께 이미 100여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전체 하객은 어림잡아 400명은 넘어보였습니다. 당 대표실에서는 “경북여고 동기들과 한양대 동문들, 그리고 측근 의원들과 고문 등 아주 소수에게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결혼식을 모르고 있던 의원들도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들 역시 “우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우리에겐 ‘고용주’ 입장인데, 아무래도 부담 가질까봐 알리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나 일부 의원은 오히려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결혼소식을 전해줘서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화환은 ‘대통령’이 유일… 당·정·청 총출동

이날 결혼식에서 하객이 아닌 ‘기자’로서 유심히 본 것은 일반인들의 결혼식과 여당 대표 결혼식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였습니다. 통상 결혼식장 옆에 줄지어 서있는 화환은 이번 결혼식에선 눈에띄지 않았습니다. 추 대표 쪽이 ‘화환을 사양하겠다’고 미리 알린데다, 그럼에도 결혼식장으로 도착하는 화환들은 모두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만 하객들을 맞는 추 대표 뒤로 유일한 화환이 놓여있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었습니다. 추 대표에게도 대통령의 화환은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취재하기 어려운 정부·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채로웠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한병도 정무수석,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고, 정부에선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민주당 대표 출마설이 돌고 있는 김부겸 장관의 경우 결혼식 30분 전쯤 도착해 하객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김 장관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인사를 하자 김 장관은 “얼른 돌아가야 자주 볼 수 있을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김 장관을 보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많아 질문을 많이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축의금 접수를 받는 테이블이 북적인 건 다른 결혼식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축의금 내려는 이들이 몰리다보니 많다보니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빈틈’이 생기면 축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여러 개의 축의금 봉투를 내는 것 역시 일반 결혼식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 추 대표가 ‘공천’했던 6·13 지방선거 당선자들도 참석… 야당은 없네

민주당에선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문희상 의원 등 4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당 지도부 인사들은 거의 참석해 이 결혼식에서 당·정·청 회의가 열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춘석 사무총장, 김민기 제1사무부총장, 김영호 제2사무부총장, 임종성 제3사무부총장, 백혜련·김현 대변인, 김정우 비서실장 등 주요 당직자들과 홍영표 원내대표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홍익표 정책위 수석부의장 등 원내지도부가 참석했습니다. 특히 추 대표가 공천장을 수여했던 6·13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선자 11명이 모두 결혼식에 참석한 게 눈에 띄었습니다. ‘공천=당선’으로 통했던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공천한 추 대표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려 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미애 대표가 선거기간 목포를 찾아 “목포의 훌륭한 후보”라고 치켜세웠던 김종식 목포시장 당선인도 이날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야당과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한듯 이날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민주평화당의 권노갑 고문은 오랜 인연 덕인지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농담처럼 ‘추 대표가 ’야당과의 연정에 대해 선을 긋지만 않았더라도 1~2명은 더 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오고갔습니다.

이날 궂은 날씨에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오전 11시45분께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졌고, 야외에서 진행되던 결혼식은 5분 만에 중단됐습니다. 이후 실내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옮겨 주례사와 축가 등이 마저 진행됐습니다. 주례는 신랑 쪽에서 모셔와 당 관계자들도 주례는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친구와 친척 결혼식이 아닌, 유력 정치인 자녀의 결혼식 참석은 처음인 저는 새롭고 낯선 광경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큰딸이 삼청각에 도착해 연회장 쪽 계단으로 올라가자 의원들이 양쪽으로 길을 터주며 박수를 치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정치부 2개월 차인 제가 의원들의 저런 모습도 처음이라고 하자 한 당직자는 “이게 권력”이라며 지나가듯 내뱉었습니다.

공인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아닌 사인으로서의 ‘어머니 추미애’의 모습은 다정하고 정겨웠습니다. 그는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딸과 전화통화를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딸이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떼는 순간에 가까운 이들의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민주당 출입기자인 저는 추 대표에게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건넸고, 한편으론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궁금했던 현안을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실세 중 실세인 집권여당의 대표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녀 혼사를 치렀다면 어땠을까, 뒤늦은 ‘미담’이 알려지면서 추 대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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