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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9일 15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9일 17시 28분 KST

'대체복무' 시대에 우리가 맞이한 과제들

무수한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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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병역법 88조 1항

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법조항이 된 병역법 88조 1항이다. 2014년 4월 15일 나는 이 88조 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수갑과 포승줄을 찼다. 법정구속 후 내가 한 일은 항소이유서를 쓰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왜 무죄인지를 재판에서 항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를 부담스러워하던 국선변호인은 변호를 그만두기도 했다. 항소에서 패배했지만,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으로 김현성변호사를 소개받고 감옥 안에서 대법원 재판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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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이유서와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냈다. 2015년 2월 23일의 일이다. 이날 감옥에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아팠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 6월 28일 드디어 이 사건의 판결이 났다. 28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이 병합된 선고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서

법조문은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으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 판결을 가지고 말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지만(병역법 88조), 대체 복무 제도를 만들지 않은 건(병역법 5조)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잘못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게 합헌이라고 읽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역법 5조다.

 

 

병역법 5조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으로 규정해놓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이 보충역이다. 흔히 공익,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공익수의사, 전문연구원, 산업기능요원 등 군대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보면 이미 대체복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간 것인가?

우선 공익근무요원을 예로 들어보자면 공익은 가고 싶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익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현행 공익근무를 수행할 수 없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보면 운동선수들이 금메달 따고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소식을 볼 수 있다. 공익근무도 4주간의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 따라서 총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 4주 훈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누군가는 고작 4주를 못 견뎌서 감옥에 가느냐고 비아냥 할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4주’ 대신 감옥에 간 사람들의 평화적 신념은 그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것 아닐까?

반대로 4주가 ‘그까짓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깟 4주 없애는 것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대체복무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 군대 대신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큰 문제일까? 이렇게 쓰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간 대체복무를 주장해왔던 사람들은 병역법 5조에 군사업무가 아닌 역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시대의 요청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게 만드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정신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쉽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방치된 법조항 때문에,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있으니 빨리 일좀 해서 국민들 전과자 그만 만들라고 한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950년 이후 오늘까지 6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만 여명의 전과자가 생겨났다. 일제강점기까지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오랜시간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희생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에 공을 던졌다. 그렇다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겠다는 병역법 제88조를 합헌이라고 결정 내린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대체복무제도도 거부하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혼란은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병역의 의무만으로 좁게 생각해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군대대신 다른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고 이조차도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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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남긴 과제들

이번 헌법불합치 판결은 진일보한 판결이다. 하지만 새로운 쟁점들이 남아있다. 일단, 헌법재판소의 선고와 법 제정 사이에 끼인 세대 들이다. 이들이 지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게 되면 인생계획이 꼬인다. 헌재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도를 입법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최악의 경우 2020년에야 대체복무 제도가 도입된다. 약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언제 징집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취업을 하기도 시험을 준비하기도 창업을 하기도 애매하다.

이들이 징집을 거부하면 병역법 위반에 대한 재판이 진행 될 텐데, 이상한 판사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 해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처벌을 할 가능성은 없다. 1년 6개월이 지나면 죄가 아닌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재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되거나, 무죄판결을 내린 뒤 대체복무가 도입되면 국방부에서 다시 재징집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중인 사람들은 이런 기대도 하기 힘들다.

두 번째로 지금 여론상 대체복무제도는 징벌적인 방식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하면 단골로 나오는 게 지뢰제거다. 그런데 지뢰제거 같이 위험한 업무를 꼭 사람을 써서 해야 하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든, 군인이든, 민간업체 직원이든 위험한 업무는 기계로 대체하고 사람의 위험을 줄이는 게 맞는 방향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복무를 3년 정도로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더 오래 일시키는 방향보다는 그 사람들을 핑계 삼아 모두의 복무기간을 단축시키는 게 더 낫다. 2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대체복무를 2년 시키고 군복무를 1년으로 단축시키는 게 낫지, 현재의 군복무기간을 놓아두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3년 시키는 방향, 모두가 피해를 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들이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회복무제도로 공공적이고 평화적인 성격의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쟁점이 남아있다. 가령 대체복무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의 징집자체를 거부한다. 정치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그냥 국가가 시키는 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을 처벌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이는 징병제 자체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강제로 군복을 입히는 숨 막히는 병영체제의 작은 숨구멍이 대체복무제다. 이는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또 징병제는 국방에 효율적일까? 근본적으로는 군사적 갈등과 군비경쟁을 끝내고 어떻게 하면 평화적인 체제를 수립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과자로서의 차별을 감수하고 살아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의 문제가 남아있다.

무수한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총을 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은 잘못됐다. 심지어 그것은 이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흔드는 일이다. 그럼 어디로 보내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한 책임은 바로 정치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비난의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헌법의 정신임을 다른 누구도 아닌 헌법재판소가 확인시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