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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8일 09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8일 09시 43분 KST

저는 오늘 병역을 거부합니다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 제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쁠 것입니다.

huffpost

지난 2월 6일은 저의 입대예정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대하지 않았습니다. 병무청 직원도, 주변의 친구들도 진심이 담긴 걱정의 말로 ‘아직 늦지 않았으니 입대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고마운 말들이었지만 마음만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한 후 학교 안팎에서 보고 배운 것들, 제가 했던 말들과 실천들은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버려야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상을 익히고 실행하는 군대에서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저의 신념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였고, 경찰조사, 검찰조사를 거쳐 7월 17일 제헌절에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전 10시에 서울 서부지법 306호에서 공판이 열립니다. 선고공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아마도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입감될 것 같네요.

‘왜 군대를 가지 않으려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개략적인 이야기, 부분적인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인 탓도 있지만, 더불어 그 많은 이유를 찬찬히 글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니까요. 선고를 앞두어 늦은 감이 짙은 저의 병역거부 소견서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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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을 거부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IMF의 여파로 ‘평범’하게 가난했고, 그럼에도 남들처럼 태권도 도장을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저를 학원에 등록시켰고 넓은 의미의 대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평범한 부산 소년들처럼 박정희를 존경했고, 당시 유행이던 티셔츠 속 체 게바라를 동경했습니다(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지만 총을 든 남성이었다는 점이 저를 매혹시킨 것 같네요). 집에서 구독했던 조선일보가 써내는 세계관을 수용했고, 강하고 부유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오롯하게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 생각했습니다.

대학생활 첫 학기도 평범했습니다. 수업을 빼먹고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엠티를 갔습니다. 그러다 그해 가을, G20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G20이 어떤 행사인지, 이에 반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함께하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헌신적인 태도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라간 <전태일열사 40주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본 장면들은 제 머리 속을 헤집어놓았습니다. 앉아서 발언을 듣다말고 차도로 행진하는 노동자들, 이를 막기 위해 차벽을 치고 물을 뿌려대는 경찰들, 경찰이 가로막은 길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처음 간 집회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습니다.

이듬해 여름에 포이동 재건마을에 큰 불이 났습니다. 이 마을은 군부독재 시기, 강남구와 정부가 도시빈민을 강제수용한 곳으로,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이제는 비싼 땅이 되어버린 이곳의 주민들을 내쫓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포이동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화재에 취약한 가건물들이었고,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되었습니다. 지금이 기회다 싶었던 강남구는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주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양재천 다리를 건너오는 강남구청 공무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용역깡패들. 제가 그해 여름 포이동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그들에게는 포이동마을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이긴 했던 걸까요?

알고있던 모든 것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처음 접한 듯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폭동이 아니라 항쟁이었고,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도 아닌 민주정권 10년 동안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되었고, 인간답게 살고자했던 노동자와 농민들은 열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한국의 군대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베트남으로, 이라크로 파병되었고,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군형법에는 여전히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남아있고, 군대 내부의 성소수자를 색출해 처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는 목숨도 빼앗았습니다.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들은 경찰이 쏜 최루액을 맞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평화를 외치는 제주 강정의 주민들은 폭도로 내몰리고, 살상력이 곧 효능인 무기박람회에서 대통령은 군수산업을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라 치켜세웠습니다. 내가 쓰는 전기가 밀양 주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과 저임금 착취구조에 기반한 경제성장은 잘 짜여진 톱니바퀴와도 같았습니다. 과거보다 강하고 부유해진 국가는 더 강하고 부유해지기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쥐어짜고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대체로 개인의 노력보다는 이를 압도하는 사회구조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국가는 장애가 없는 남성인 제게 군대에 입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가족, 친구, 선배와 후배, 제 주변의 거의 모든 남성들이 그 요구에 따랐기에 저 또한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이동에서 구청 직원이 대동한 용역들과 대치했던 그날 이후의 저, 쌍용차 노동자들과 투쟁을 외치고 밀양 주민들과 함께 밭일을 했던 저로서는 입영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났던 이들에게 자본의 이해보다 노동자의 삶이 존중되는 사회, 개발논리에 의해 우리의 삶이 짓밟히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념과 실천이 입영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입대한다는 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톺아았습니다. 자국민을 총칼로 살육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군대의 병사가 되는 것, 무기사용을 연습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데 앞장서야하는 것, 병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마저 위협받으며 근무하는 동안 고위 간부들은 나랏돈으로 지은 골프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에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신분이 되는 것,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모순에 동의하는 것, 부조리한 기성사회의 근간이 되는 군대에 들어감으로써 폭력적이고 차별적으로 살아온 저 스스로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 논리 정연하게 한 궤로 정리되진 않지만 입대와 병역거부가 보여주는 의미의 간극은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명료하고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제가 사는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 일이 총을 들고 살상을 익히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환자를 돌보고, 화재를 진압하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가 곧 병역은 아니므로, 헌법이 요구하는 국방의 의무는 비군사적인 업무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사례들과 이 사회는 저와 같은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여기나봅니다. 저는 병역을 거부하는 동시에,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복무제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6월 25일, 헌법재판소는 7년을 끌어온 병역법 위헌제청을 28일에 판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법원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들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8월말에는 사상 첫 공개변론도 열 것이라 합니다. 동토와도 같던 사법부가 이와 같이 움직인 것은 묵묵히 신념을 지켜온 앞선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의 부단한 투쟁이 맺은 결실입니다. 이 분들이 있었기에 제가 저의 신념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단하지만 떳떳한 평화의 길에 합류하게 된 것에 내면으로부터 차오르는 그 무언가의 충만함을 느낍니다.

이번에 새롭게 내려질 판결들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더 이상 감옥으로 향하지 않아도 되길 바랍니다. 이미 선고날짜까지 받은 제 사건은 별 이변 없이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지만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 제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쁠 것입니다. 7월 17일 선고일 이후에 제가 향하는 곳이 감옥이 되든, 사회복지기관이 되든, 군대를 거부하고 평화를 바라는 저의 신념을 지키며 살고자 합니다.

곧 장마철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저를 포함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