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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7일 17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7일 17시 34분 KST

사장님, 음악 좀 꺼주세요

GI15702993 via Getty Images
huffpost

얼마전에 동네에 있는 이자카야에 갔다. 그럭저럭 이자카야스러운 인테리어가 갖춰져 있었다. 왜 그 한국의 이자카야들이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는 인테리어 있잖나. 목재로 마감된 벽, 우키요에 한두 점, 빈 사케 병 따위가 공간을 채운 그곳의 인테리어가 어떤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날 먹은 안주와 맥주의 맛은 도통 떠올릴 수가 없다. 부랴부랴 먹어 치우고 최대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곧잘 꾸민 공간과 ”일본!”을 외치는 곳곳의 소품들,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 안주와 꽤 정성들여 고른 접시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빌어먹을 음악, 주인장인지 종업원인지 누가 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쓸데없이 큰 볼륨으로 술집 전체를 장악한 그 음악을 1분도 더 들을 수가 없었다. 이자카야에서 틀어댄 음악은 90년대 한국 가요, 이를테면 터보나 유피, 신화나 H.O.T의 음악이었다. ”일본!” ”도쿄!”를 열심히 외쳐대는 가게 안의 소품들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서~”를 열심히 외쳐대는 스피커 사이에서 대화에 집중하는 것과 술과 안주를 음미하는 것은 단언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아, 특히 거슬렸던 것은 컨츄리꼬꼬의 ‘오가니가니~’뭐 그런 노래였다.

유독 한국인들이 음악 선곡을 못한다는 생각을 근 몇 년 사이에 꽤나 많이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읽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다 진단을 내린 것이, 특히 때와 장소에 맞는 음악을 고르는 ‘성실함’이 아예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렇다. 이건 여실히도 성실함의 문제다. 계절의 어디쯤인지, 날씨가 어떤지, 무슨 요일인지, 어떤 시간인지를 감지하고 뭘 파는 곳인지, 천장은 얼마나 높은지, 바깥이 조용한지 시끄러운지, 얼마나 큰 공간에 몇 명의 사람이 있는지, 사람들이 대화에 집중하려 하는지 음악에 집중하려 하는지, 뭘 먹는지 따위를 파악해 음악을 틀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음악을 틀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은 취향도 음악적 지식도 아니고 단순히 성실하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대여섯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술을 마시러 갔던 때였다. 마침 내가 즐겨 찾는 레코드바가 지척에 있어 그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LP판과 커다란 스피커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시야를 사로잡는 그곳에선 신청곡을 적어 내면 주인장이 LP판을 찾아 음악에 대한 코멘트와 함께 틀어준다. 돌아가는 삼각지부터 마스터 오브 퍼펫을 거쳐 블루노트나 이따금 도이치그라모폰에 이르는 상당한 너비의 장르 카테고리 사이에서 정말 아무거나 신청하면 웬만해선 틀어주는, 심지어 주인장의 코멘트와 함께 틀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 상당한 너비의 카테고리를 굳이 벗어나, ‘웬만하면’을 완전히 벗어나 정말 굳이 싸이의 챔피언인지 뭔지였나를 신청한 사람이 있었다. 장국영의 당년정 뒤에 싸이의 챔피언을 이어 틀 수 없었던 주인장은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저쪽 테이블에 낯익은 얼굴이 있네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퀸의 보헤미안랩소디,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라나 델 레이의 본 투 다이 신청하셨네요. 죄송하지만 싸이의 챔피언은 저희 LP바에 주로 오시는 손님들의 분위기와 맞지 않네요. 다른 곡을 신청해주시면 제가 틀어드리겠습니다.”

누군가의 취향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몰취향이라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악이 우수하고 어떤 음악은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음악을 골라 그 공간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성실히 음미해야 하는 그때 그때의 그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중요함에 대해 성토하는 것이다. 도대체 음악을 틀 거면 왜 틀어야 하는지,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볼륨으로 틀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제발 좀 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일말의 고민도 없는 사람들이 매장 내에서 트는 음악의 저작권에 대해서는 불만섞인 소리를 뱉어낸다는 것이 코미디랄까?

도대체 삼겹살 집에서 왜 무작정 최신가요를 큰 데시벨로 틀어대는지, 도대체 공원에서 왜 산책객들의 신청곡을 받아 가로등마다 설치된 스피커로 틀어대는지, 도대체 왜 휴대폰 매장 밖에 스피커를 두고 음악을 틀어대는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국인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것을 참지 못하는 거라고 여기는 중이다.

지금까지 엔카가 은근히 흘러나와 공기중에 흩어져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어 대화도 음주도 안주의 음미도 방해하지 않는 이자카야는 딱 한 군데 가봤다. 알고보니 주인장이 일본인이었다. 그럼 그렇지. 웬만한 한국인들은 그런 볼륨을 조절하는 성실함이 없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도, 혼자 와서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손님만 세 명인데, 레드벨벳의 빨간맛이 ‘존나 큰 볼륨’으로 울려퍼지고 있고, 나를 포함한 손님들은 모두 이어폰을 끼고 있다. 바 안쪽에 앉아 스마트폰 액정을 보고 있는 주인장에게는 빌어먹을 이 광경이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인가.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