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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논란

유시민은 이재명의 '말하지 않은 것'에 화가났다

ⓒhuffpost

인터뷰를 둘러싼 이재명의 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어제, 문화방송 선거개표 방송에서 행한 유시민의 주장을 비판하는 글(’이재명의 태도 논란’에 대하여’)을 <허프포스트>에 보내고 나니 또다시 유시민이 <썰전>에서 이재명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 떴다. 한동안 망설였다. 이재명 지지자도 아닌 것이… 다른 할 일도 많은데...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라 생각되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썰전> 영상을 봤다.

 

 

 이재명이 이야기한 것에 대한 논란

 <썰전>에서 유시민은 우선 이재명의 인터뷰 태도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서 자신이 판단하는 이재명의 더 큰 문제는 당선 소감,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태도를 넘어 인성에 대해 공격한다. 이재명이 밝힌 ’당선요인’에 대해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들은 유시민의 그런 주장을 옮겨 싣기 바빴다.

길지만…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려면 인터뷰 당시의 발언을 워딩 그대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먼저 상황부터 살펴보자. 당시 화면에 비친 공간은 많은 지지자들과 방송카메라들로 대단히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워 보였다. 그 와중에 JTBC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화면에 잡힌 이재명은 지쳐 보였다. 방송국의 앵커들은 현장의 소란스러움에 방해 받는 듯 했다.

 

이재명 : “저는 우리 국민이 스스로 삶을 바꾸기 위해 만든 그런 도구이며, 우리 도민들과 국민께서 촛불을 들고 꿈꾸셨던 세상,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꿈, 그게 이번 경기도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열망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부여된 역할,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확고하게 책임지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이지은 앵커 : “아까 말씀 중에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뜻에서 하신 얘기인가?”

이재명 : “그런적 없다.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이라고 가정해 말한 적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봐요?”

 

 

앞서 이재명이 언급한 ’책임’은 도지사로서의 역할, 책임, 책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지은 앵커는 이재명이 언급한 ’책임’이라는 표현만 잘라다 ’여배우스캔들’과 연결시켰다. 거두절미다. 그러나 소란스런 상황이었다. ’여배우스캔들’이 워낙 요란했었던 배경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지은 앵커의 악의가 있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내용을 잘못 파악한 이지은 앵커가 사과 할 일이지, 이재명이 비난 받아야 할 장면은 아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 봐요?”라는 발언이 거슬렸다. 분명 비아냥으로 들렸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그 정도로 비난 받을 만한 대응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이재명은 선거기간 내내 스캔들로 시달렸다. 도를 넘은 네가티브 공세였다. 그런데 모든 언론이 당선자 인터뷰의 포커스조차 ’여배우스캔들’에 맞추고 달려든다. 방송들은 당선자의 정책에 대해선 한치의 관심도 없는 듯한 태도였다. 도지사로서의 막중한 ’책임’에 대해 얘기했더니 기껏 돌아오는 질문이 여배우스캔들과 관련한 ’책임’ 문제다. 화낼 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문화방송 인터뷰에서 또다시 스캔들 문제가 거론되자 비아냥이 분노로 폭발했다.

인터뷰이에 의해 인터뷰가 강제로 종료된 상황에 문화방송 측이 황당해 했다. 그러나 정말 황당해 할 또 한 사람이 있다. 화가 나고 황당했지만 항의의 표시조차 못 한 사람이 있었다. 방송 화면을 보면 인터뷰에 응한 이재명 뒤에 그의 부인이 보인다. 보는 내내 민망했다. 스캔들의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방송은 이 정도의 배려도 할 수 없는 걸까? 나 역시 스캔들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알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 나서서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군가는 여배우의 명예와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자리만큼은 피했어야 하지 않을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방송은 선거일 이전에도 스캔들에 대해 물었고 이재명은 부정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트라우마가 표출된 것 같다. 어쨌든 적절한 태도는 아니다” <썰전>의 또다른 패널, 박형준의 평가다. 동감한다. 이정도 평가면 충분했다. 그저 상황과 오해가 낳은 헤프닝이었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 정도의 평가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기초단체장인 성남시장에서 광역단체장인 경기도지사로 체급이 상승했는데 체급이 올리면 펀치도 세게 들어오게 돼 있다... 언론의 공격도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과거보다 악랄한 펀치가 오더라도 그것을 요령껏 막아내야 했다”

[한겨레21] 엄지원기자가 <’황소’의 벼룩 같은 애티튜드>라는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치한다. 황소의 체급에 맞는 처신...

방송 일을 너무 오래 했나? 유시민은 개표방송에서 방송국이 보인 문제점에 대해선 언급조차 않는다. 심지어 방송의 태도는 당연하다고 강변한다. 원래 도지사쯤 되면 “언론의 공격이 더 강해지기 마련”이고, ’악랄한 펀치’를 날리게 되어 있단다. 방송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건 ’요령껏’(유시민의 표현이다) 막아내지 못한 이재명의 잘못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지겹도록 들었던 말, 요령껏! 옭고 그름도 없이, 가치판단도 없이 요령껏! 요령껏!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집요하고 악랄하게 공격해대던 조중동 보수언론에 대해서도 <썰전>의 유시민은 동일한 판단을 하는 건가? 도지사도 아니고 대통령으로 체급을 올렸으니 언론의 악의적인 펀치가 날아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나? 조중동과 맞서 싸우지 말고 요령껏 막아냈어야 했었다는 얘긴가? 아니면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얘기할 건가?

 

ⓒ뉴스1

 

 

이재명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논란

더욱 문제는, 유시민이 이재명의 당선소감과 그 안에 담긴 ’당선요인’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은 “태도 논란은 부수적인 문제로 본다…. 그런데 제가 실망한 건 ‘당선 요인’에 대해 이 당선인이 언급한 부분”이라 한다. 이어 “조금 실망했다. … 많이 실망했다. … 아주 크게 실먕했다”고 발언한다. 유시민의 표현은 점층적 ’실망’이지만 사실은 감정과 분노의 표출이다. 그런데 혼란스럽다. 왜 이렇게 분노할까? 유시민이 말한 분노의 대상은 이 글 앞머리에도 인용한 이재명의 첫 번째 발언일 터이다. ’도구’, ’공정한 나라, ’꿈‘, ’열망‘, ’열매’.. 읽고 또 읽어봐도 혼란스럽다. 이재명은 단 한마디도 본인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석될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제 자랑한 적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국민에 대해, 도민에 대해 겸손함을 드러냈다. 국민이, 도민이 자신을 도구로 선택했고 그래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런대도 유시민은 분노했다. 이해할 수 없다.

이어진 유시민의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서 경기도 광역의원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을 보면 이 당선인은 정당지지율(52.6%)보다 높은 득표율(56.4%)을 기록했고, 남후보는 정당 지지율(25.5%)보다 높은 득표율(35.51%)을 나타냈다... 즉 이 선거는 정당지지율로 결판난 선거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엄청 높았기 때문에 이 당선인이 경기지사가 된 것”이라며 “제가 이 당선인이었다면 당선이 확정됐을 때 ’선거기간에 불미스러운 논쟁이 있었으나 큰 표차로 이긴 것은 집권당인 민주당에 경기도민들이 힘을 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다’고 말했을 것”이란다.

 

 

이제 이해가 간다. 유시민은 이재명이 발언한 ’당선소감’에 분노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이재명이 발언하지 않은 것에 흥분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미 승패가 정해진 선거였다. 못난 너(이재명) 땜에 잠시 시끄러웠지만 민주당과 대통령 덕분에 무사히 이길 수 있었다. 그러니 넙죽 엎드려 모든 공을 민주당과 문대통령에게 돌렸어야 했다는 엄한 꾸지람이다. 그랬어야 너한테도 일말의 기회가 주어졌을 수 있다고 설교하는 것이다. 후배 세워놓고 호통치는 선배의 모습이고 말썽 피운 자식 야단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완벽한 꼰대질이다. 기어이 이재명의 무뤂을 꺽어 놓을 기세다. 하긴 이재명이 무뤂만 꿇으면 이 모든 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근데 그런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지지 여부를 떠나 비주류로 당당하게 살아온 그에게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흥분했다. 톤을 조금 다운시켜서, 설령 유시민이 분석한 선거 요인이 다 옳다고 해도 당선인의 소감이 꼭 그래야 할까? 마치 연말 시상식 트로피를 안아 든 수상자가 그러하듯, 다른 누군가에게 당선의 기쁨을 돌렸어야만 하나? 도민과 국민에 대한 겸손과 감사면 충분하지 않을까? 솔직히 난 이마저도 지루하던데...

 

ⓒ1

 

몇 해 전, 많은 화제를 낳았던 <프로듀서 101>을 봤다. 걸 그룹을 꿈꾸는 어린 소녀들이 대거 참여하는 서바이벌 프로였다. 내 관심을 끈 건 이들의 운명이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내내 모든 소녀들은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줬다. 허리를 90도로 꺽어 인사하고 항상 타인을 배려했다. 모두가 착하고 예뻤다. 내겐 신기한 광경이라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 화면 속의 소녀들에게서 ’나쁜아이’로 비춰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녀들 모두 엄청난 연습량을 보여줬다. 때론 짜증나고 화날 때도 있으련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서로의 의견이 충돌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착한 소녀답게’ 우는 것뿐이다. 그것이 타인의 비난을 피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유일한 방법이었다. 누군가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는 순간 그 소녀는 자신을 꿈을 접어야 했다. 짜증 섞인 찰나의 표정조차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낙인이 찍힌다, 전국적으로. 착하게 행동하지 않은 아이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녀들은 자신의 감정 따위는 깊이깊이 묻어두어야 한다. 열심히 인사하고 항상 얼굴엔 환한 미소를 유지한다. ’의지가 부족한 연습생’이 되지 않으려면 아무리 아파도 연습해야 한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복도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연습이라도 하면 효과 만점이다. ’착한 소녀’인지는 몰라도 ’착해 보이는 소녀’들만 살아남는다.

<썰전>에서 유시민은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이 당선인이었다면 ... 언론 카메라 수십 대가 겨누고 있는 순간에 그때 자세를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공을 넘겼다면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당선인의 당선 소감은 좀 아니지 않나”

내가 유시민이었다면 이렇게 얘기 하겠다. “이 당선인이... 모든 게 제 덕인 양 만세를 부르고 거친 환호의 세레모니를 했더라도 미소 띠며 봐 줄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힘겹게 싸웠기도 하지만 당선자가 당선 소감을 얘기하는 순간만큼은, 환희를 만끽할 수 있는, 아주 짧은 그 시간만큼은 당선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니까, 그런데 이 당선인의 당선 소감은 좀 아니지 않나. 너무 밋밋한게..”

’나와 같지 않은 것’도 인정하자고 부탁하진 않겠다. 아무래도 무리해 보이니까. 그저 ’나와 같지 않은 것’, ’남들과 다른 것’을 이유로 비난하지 말고 낙인 찍지 말자는 얘기다. 이 정도도 무리한 부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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