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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이 수사권 조정 의견서에서 서로를 적나라하게 디스했다

상대방이 저지른 인권침해, 권한남용 사례를 깨알같이 지적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이 끝난 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서를 함께 보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이 끝난 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서를 함께 보고 있다. ⓒ한겨레/신소영 기자

‘1987년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2010년 양천서 날개꺾기 고문 사건 등 경찰 불법수사로 국민의 자유와 인권침해….’(대검찰청 수사권 조정 의견서)

‘2016년 현직 부장검사 뇌물수수 사건 가로채기 및 셀프수사… 일제강점기에서 출발한 전근대적 수사구조에 여전히 머물러….’(경찰청 수사권 조정 의견서)

두 권력기관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적나라한 ‘디스’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정도다.

정부는 21일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하며, 앞서 청와대가 검찰과 경찰로부터 각각 받은 ‘수사권 조정 의견서’를 함께 공개했다. 두 기관의 의견서를 보면, 검찰은 기존 수사권 유지 필요성을, 경찰은 1차적 수사권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 상대방이 저지른 인권침해 및 권한남용 사례 등을 깨알같이 거론하며 청와대 설득에 나섰다.

검·경 의견서는 서로를 향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검찰은 “우리나라 경찰은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앙집권적 단일조직의 국가경찰제제’를 바탕으로 치안, 정보, 보안, 경비, 교통 등을 독점하고 수사와 정보를 모두 담당하는 거대 권력기관”이라며 “수사권조정만 선행되고 자치경찰제는 형식적으로 추진된다면 이는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하는 ‘경찰국가’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경찰도 지지 않았다. 경찰청 의견서는 “그간 경찰 수사를 왜곡하고 권한독점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통제받지 않고 있는 전근대적인 검사 지배적 수사구조의 틀을 이번에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직접 의견서에 자신의 의견을 넣었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 등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형사절차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권한의 초집중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전근대적 수사구조는 그간 부정부패, 권한남용 등 많은 폐단을 낳으며 주요 국가적 변혁기마다 개혁의 핵심의제로 부각되어 왔다”며 “특히 지난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혁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고 했다. 특히 이 청장은 “검찰개혁의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대검찰청 수사권 조정 의견서
대검찰청 수사권 조정 의견서

의견서에 가득한 서로의 부끄러운 과거는 마치 청와대에 ‘고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검찰은 “과거 1950년대 자유당 시절,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를 통해 사법통제가 약화된 경찰수사권, 경찰국가체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게 되는지 이미 경험했다. 이런 교훈을 망각한 채 불행한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며, 4·19 혁명 때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군 관련 신문기사, ‘물고문 도중 질식사’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크게 박힌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의견서에 넣었다.

경찰 역시 검찰의 수사지휘가 경찰 수사권 남용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찰권 남용 도구로 쓰였다고 했다. 경찰은 2016년 현직 부장검사 뇌물수수 사건 때 경찰이 신청한 계좌추적영장을 검찰이 받아주지 않고 사건을 넘겨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사건 가로채기 및 셀프수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사례로 △2013년 성접대 등 불법로비 혐의 전 법무부 차관 체포영장 불청구 △2006년 전직 부장검사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기각 △2003년 법조브로커 수사 계좌 압수수색영장 불청구 등 15년 전 사례까지 털어 모았다.

검·경은 서로의 수사 능력을 깎아내리는 등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검찰은 “경찰이 사건을 자체종결할 수 있게 되면, 경찰수사권이 남용되거나, 실체적 진실이 암장될 위험이 많다”며,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수사’로 시정한 사례 등을 열거하기도 했다. 또 2011년 이후 ‘경찰 수사기간이 장기화(3개월 초과)된 사건이 173% 증가하는 등 국민 인권보호가 후퇴하고 있다’, ‘경찰의 인지사건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된 인원이 64% 증가했다’며 이를 보여주는 통계와 그래프에 공을 들였다.

경찰은 검찰의 특수수사 능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금수저 특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사가 처음부터 수사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검사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그만큼 양질의 첩보가 검찰에 모이고, 검사는 독점적 영장청구권 등 막강한 도구로 제보자의 입맛에 맞는 수사결과를 안겨준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검사가 특수수사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검·경이 서로에 대한 날선 비난을 청와대에 보내는 동안, 해양경찰청은 5쪽짜리 짧은 의견서를 통해 ‘실리’를 챙겼다. 육경(경찰)과 수사권한 등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해양경찰청은 ‘공동의 적’인 검찰을 앞에 두고 일단 육경과 ‘연합’하는 의견서를 청와대에 냈다. 그러면서도 “해경은 형사소송법에 의거 경찰청과 같이 일반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는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담았다.

청와대가 정책 결정을 위한 내부 의견수렴 내용까지 굳이 공개한 배경을 두고 ‘이이제이’(以夷功夷)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절충적 성격의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두 기관 내부의 불만을 ‘진압’하기 위해 서로에 대한 민낯의 평가를 그대로 공개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판단과 여론의 힘으로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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