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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싫지만, 아이를 원했던 그녀는 아는 사람의 아이를 낳았다

그녀와 아이의 곁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 강병진
  • 입력 2018.06.21 16:35
  • 수정 2019.06.07 10:13
ⓒSATOKO MOCHIZUKI

결혼을 한다. 아이를 임신한다. 아이를 낳는다.

대부분의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은 결혼을 전제로 한다. 물론 결혼 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아이를 낳아 출산하는 여성도 있다.

일본의 만화가이자, 탤런트인 하마다 브리트니는 지난 4월, 미혼 상태에서 딸을 출산했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연하의 일반인 남성이라고 밝힌 동시에 “싱글맘의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하마다 브리트니처럼 자발적으로 싱글맘의 길을 선택한 여성인 일반인 중에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하지하타 아츠코다.

하지하타 아츠코가 아이를 낳은 건, 지난 2017년 9월이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미혼모’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비혼(非婚)모’다. 하지하타는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서 친구에게 의뢰해 임신과 출산을 거친 경우이기 때문이다.

흔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부모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이가 불행해진다”거나,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살 것 같다”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하지하타 아츠코와 그녀의 아이에게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녀가 비혼모를 선택한 이유, 그때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녀를 만난 곳은 오사카에 있는 그녀의 집이었다.

배우자와 아이를 키우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NONOKA SASAKI

- 하지하타씨는 원래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강했나요?

= 17살 때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 이미 임신과 출산은 포기했었죠.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27살 때 보육전문학교에 들어갔고 보육사로 일했죠.

- 보육사로서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자신이 낳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건가요?

= 보육사와 아이의 관계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 같네요.

보육사는 아이를 안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수는 있죠. 하지만 집에 데리고 가서 함께 그 이후의 생활을 할 수는 없어요. 보육원의 아이들을 좋아해도 업무적인 입장에서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도 있죠. 그 때문에 업무가 아니라 진짜 내 아이와의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 직접 아이를 낳기 전에, 입양도 고민했을 것 같아요.

= 물론 입양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일정한 소득 수준을 넘기지 못하면 입양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낳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죠. 다낭성 난소 증후군 진단을 받은 후 한 번도 임신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임신을 고민했습니다.

- 아이를 갖고 싶은 여성은 대부분 연인이나 남편의 아이를 갖고 함께 키워가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하지하타씨는 다르지요. 비혼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그때 사귀던 연인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어요. 그 사람과 육아를 함께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죠. 그 이전에도 연인과 동거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폭력적이거나, 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어요. 그래서 연애관계에서 발생하는 그러한 압력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그런 압력이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가해질 테니까요. 꼭 비혼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지 않은 엄마가 된 것 같습니다.

- 그래도 혼자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요.

= 나 혼자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키우겠다는 각오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사회 속에서 함께 키워가면 좋겠다’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태어난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27세였던 그때는 아이를 낳고 싶은 동시에 사회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조금씩 신뢰하게 되면서 파트너가 없어도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친구의 한 마디였어요.

- 친구는 어떤 말을 했나요?

= 그 친구는 가족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한 동성친구입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아이를 키우고 싶다”, “낳는다면 누구의 아이가 좋을까?” 이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또 다른 친구가 “낳고 싶으면 낳으면 되지 않냐”고 말했어요. 그때 그 친구는 만약 하지하타씨가 나중에 아이를 끝까지 키우지 못하게 되면 내가 키우겠다고 말해줬어요. 그리고는 만약 하지하타가 죽어도 일본은 부유한 나라니까 아이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때 사회에 대한 시각과 태도가 달라졌어요.

그때까지는 부모와 연인,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믿지 못하거나,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를 믿을 수 있다면 살아가는 토대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으니, 도와주세요!”

ⓒNONOKA SASAKI

- 그렇다면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떻게 찾은 건가요?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아요.

= 우선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말을 주변 사람에게 자주 했어요. 그랬더니 그들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란 식으로 함께 대화하면서 여러 정보를 공유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일도 비슷했습니다. 일단 맞고 부서지면 어떠냐는 식으로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나 지인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어요. ‘아이를 낳고 싶으니, 도와주세요!’라고요.

- 그 말에 당황하거나 놀란 사람들이 많았겠네요.

= 그때는 잘 몰랐어요. 제 자신이 너무 무모해서 알아차리지를 못한 것 같아요. 놀란 사람도 꽤 있었을 것 같아요.(웃음) 그분들 중에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건데, 일단 부모님과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어요. 10여명에게 제안을 했고, 결국에는 제가 첫 눈에 마음에 든 사람에게 반 강제적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죠.

-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조건 같은 것도 있었나요?

= 그런 건 없었어요. 어쨌든 저는 ”아이를 갖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제 의도를 잘 설명하려고 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이유, 파트너와 함께 육아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까지도요. 또 양육비나 양육에 협력해야 할 일도 없다고 말했죠.

- 사람들과 함께 육아를 하고 싶었던 건 어떤 이유였나요?

= 저는 원래 오랜 친구와 집을 공유하고 가족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함께 돈을 관리해볼까? 가까이 살면 될까? 그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그 친구와 함께 육아를 하는 것도 가족이 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와 방과후 학습지원장, 어린이 집 등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부모 외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아이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던 게 아니어서, 지금도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함께 육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 그런데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된 그 사람은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던 건가요?

= 그 사람도 처음에는 “영화 같은 이야기야”라고 말하곤 했어요. 나의 제안을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임신했다고 하자, 매우 당황했었습니다. 그래도 검진을 하면서 함께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고, 제 배가 점점 커지는 걸 지켜봐주기도 했어요. 그 사람과는 교제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만나고 있습니다.

- 우여곡절 끝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잖아요. 처음 아이의 얼굴을 봤을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 초산이기도 했지만, 출산 예정일로부터 상당히 늦게 나왔어요. ‘겨우 아이를 낳았다’라고 생각한 게 컸죠. 그리고 이런 사람이 몸 안에 있으면 정말 무겁겠구나라고 실감했어요.

- 아이를 낳을 때는 본인 혼자 있었던 건가요?

= 아니오. 그 사람도 함께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아이의 상태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출산은 부부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건 기적적이고 목숨을 거는 일이니 모두 환영하자고 했죠. 그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보다 먼저 비혼모와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NONOKA SASAKI

- 그래도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하는 일이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본인의 생각에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경제적인 걱정도 있었을 텐데요.

= 자주 받는 질문인데요. 사실 전혀 불안하지 않았어요.

가까운 사람 중에도 제 선택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았어요.(웃음) 어차피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거나 책임을 지는 건 나니까요.

제 선택을 반대한 사람의 대부분은 말만 할 뿐,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됐어요.

무책임하다거나, 아이가 불쌍하다는 식으로 인터넷에서 악플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결국 부모로서 책임을 갖고 아이를 키우는 건 나이기 때문에 어차피 나를 도와주지 않을 사람의 불평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죠.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육아를 훌륭하게 하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 본인보다 먼저 비혼모를 선택한 사람들이 가까이 있었나요?

= 전국에 많이 있어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고, 법적 결혼은 안했지만 사실혼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있고, 훌륭한 롤모델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먹을 게 없으면 급식센터에 가서 전단을 뿌려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요.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죠.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방식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돈 없이도 좋은 친구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분들에게 “어떤 일로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는가”라든지, “호적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인지”, 혹은 “아버지가 없어서 곤란한 점이 있었는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들은 이미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매우 구체적인 실천사례와 조언을 해주었죠. 그래서 저도 미리 대책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차이가 있네요.

= 우리와 같은 가족에 대해 세상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수는 없어요. 하지만 사회통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많이 있죠. 그런 통념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저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외부로부터 안좋은 말을 듣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겁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도와주지 않을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육아의 방식을 결정했을 뿐이다

ⓒSATOKO MOCHIZUKI

- 현재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가요?

=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있습니다. 출산한 지 한 달 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육아는 저 혼자 하는데, ”육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육아를 함께 해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어가고 나오는 게 쉬운 가족’이라는 뉘앙스에 가깝겠네요.

이런 가족의 형태를 무리하게 묶어도 나가는 사람은 나갑니다. 우리는 느긋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밥을 먹고 놀기도 하지요. 그리고 각자 할 수 있는 걸 맡아서 합니다. 누구는 밥을 먹이고 또 누구는 아이를 목욕시키고, 어떤 사람은 세탁물을 관리하고요. 할 수 있는 일을 맡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로 맡아서 합니다.

다들 자주 드나들어주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SATOKO MOCHIZUKI

-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육아라는 건, 상당히 선진적으로 보여요. 새로운 육아방식 같기도 하고요.

= 사회적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시대와는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는 과거의 마을같은 형태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건 장난도 아니고, 즐거울려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맡은 방식으로 육아를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 사회적인 운동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맞는 형태를 찾다보니까 이렇게 된 것뿐이라는 것 같네요.

= 그렇네요. 그래서 지금 제가 사는 모습이 좋다고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비혼출산’의 붐을 일으키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선택적 싱글맘’이 되려는 사람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보면 된다고 말해요.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라는 쪽이죠. 여러 사람이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으면 좋겠어요. 그런 상황에 대해 응원할 수 있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지 않나요?”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하타 아츠코와 그녀의 아이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사회를 신뢰하면서 사람이라는 이 사회의 자원을 통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물론 그녀의 삶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희망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취재 佐々木ののか 편집 笹川かおり

*허프포스트일본판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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