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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징크스 깨고 독일 꺾은 멕시코는 지금 이 순간 세계 정상이다

멕시코에겐 문이 활짝 열렸다.

  • 김도훈
  • 입력 2018.06.20 14:28
  • 수정 2018.06.20 14:29
ⓒKai Pfaffenbach / Reuters

사람들이 독일과 멕시코의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워싱턴의 두 바는 하필 나란히 위치하고 있었다. 17일 일요일 오전 10시경, 코네티컷 애비뉴는 멕시코의 녹색 옷, 독일의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붐볐다. 지난 번 월드컵 우승 국가인 독일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독일 펍은 이미 만석이었다. 문 앞의 직원들은 축구 팬들에게 입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한 블럭 이상 넘게 줄을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바 3층에서 디 만샤프트 옷을 입은 독일 남성 두 명 옆에 서 있게 되었다. 독일인, 독일인, 그리고 미국인인 나는 멕시코 팬들로 가득한 술집에서 딱 붙어 섰다. 미국이 없다보니 멕시코가 미국 월드컵 팀처럼 되어버렸다.

ⓒCarl Recine / Reuters

“멕시코 팬들과 여기서 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 바에 가득한 멕시코 팬들이 러시아 스타디움의 멕시코 팬들을 따라 멕시코 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한 독일인이 말했다.

멕시코 팬들은 러시아와 워싱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멕시코 경기가 있기 전까지 월드컵이 열렸다는 걸 잊어도 괜찮았을 정도였다. 멕시코의 첫 경기 결과에 별 기대도 없었다.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 최대 구단들의 선수로 구성된 독일이 월등히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멕시코는 독일전보다는 한국전, 스웨덴전을 통해 만약 신이 허락하신다면 16강에 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전망이 우세했다.

멕시코 팬들을 포함해, 멕시코의 승리를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월드컵은 원래 그렇다. 모든 출전국 팬들은 우리 나라는 질 수밖에 없다며 넋두리를 한다. 이를 둘러싼 오래된 생각, 부적, 대중 심리 등이 존재한다. 멕시코는 “승산이 있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실패하는” 팀이었다. 16강 진출 후 6연패? 네덜란드의 아르연 로번이 2014년에 페널티 킥을 얻은 것? 이 모두가 멕시코 팬들의 핑계였다.

멕시코 팬들은 운이 나빴다고 느낄 만도 했다. 최근 6회의 월드컵에서 멕시코는 늘 독일과 브라질을 만났다. 이 두 국가는 그 기간 동안 총 세 번 우승을 거두었다. 멕시코는 4강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88년 동안 단 8개국만이 승리를 거둔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졌다는 게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에게 페널티 킥에 대해 물어보라. 네덜란드인에게 월드컵 결승 이야기를 시켜보라. 패배는 4년마다 31개국이 겪는 보편적인 일이다.

그러나 운명론은 정확하지는 않다 해도 강력하다. 월드컵을 앞두고 멕시코 팬들은 운명론을 마음에 품었다. ‘다섯 번째 게임의 저주’라 불리는 멕시코의 월드컵 운명론은 광고와 뉴스를 뒤덮었다.

2016년에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칠레가 멕시코를 7 대 0으로 대파하자 ‘멘탈 코치’를 팀에 추가했다. 멕시코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선수들의 믿음을 깨려 했던 것이다.

당시 결과는 썩 좋지 않았고, 축구에서의 멘탈을 강조한 오소리오의 믿음은 멕시코 국가대표팀이 물러터졌다는 비난만 샀다. 멕시코는 평가전에서 고전을 겪은 뒤 월드컵을 맞았다.

오소리오는 끊임없는 라인업 시프트로 비난받았다. 월드컵 전에 연 파티에 30명 이상의 매춘부가 왔다고 해서 멕시코에서 뭇매를 맞았다. 재능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기용이 너무 늦었다는 평도 있었다. 6회 연속으로 월드컵 4강 진출에 실패했던 멕시코가 이번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독일과 같은 팀을 이긴다는 가능성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그러나 멘탈이 강해졌든, 기대가 낮아 자유로워졌든 간에 멕시코는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했다. 멕시코는 미드필드를 습격하고 날카로운 패스와 가차없는 정신으로 독일의 게으른 수비를 뚫었다. 멕시코는 기회를 만들었고 또한 실패했다. 독일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모든 공격을 저지했다. 거구의 노이어는 멕시코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상기시키는 존재였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있으면 확실히 다르다.” 바의 한 독일인이 한 말이다.

마침내 멕시코의 순간이 찾아왔다. 35분,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역습을 펼쳤고, 스트라이커 하비에르 ‘치차리토’ 에르난데스가 독일의 수비를 뚫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잘나가는 젊은 골잡이 이르빙 ‘처키’ 로사노가 뛰어드는 노이어 옆으로 골대 왼쪽에 슛을 성공시켰다. 1:0.

다음 한 시간 동안은 미친 듯한 절박함과 숨 가쁜 낙관 사이에서 보냈다. 바의 모든 사람들은 “Si se puede”(Yes you can)을 외쳤다. 사이드라인의 오소리오 감독처럼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패배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고의 득점 찬스를 만든 것은 독일이 아닌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예전에도 월드컵에서 큰 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예를 들어 2014년에는 개최국 브라질과 0:0 무승부를 기록하여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1970년에 벨기에를 꺾고 최초로 4강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면, 17일의 승리는 멕시코 축구 역사상 최대의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아름다웠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미드필드를 갖춘 팀이지만 과르다도, 엑토르 에레라, 카를로스 벨라가 독일을 압도했다. 노이어는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결정적 세이브를 해왔지만, 이번에 경기를 제압한 것은 멕시코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였다. 지난 4년 동안 모든 팀을 압박하고 좌절시켰던 독일을 압박하고 좌절시키는데 필요했던 전술을 기용한 것은 오소리오 감독이었다. 우승 타이틀을 지니고 첫 경기를 맞는 부담에 무릎꿇은 것은 독일이었다. 멕시코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다. 멕시코가 조금만 더 날카로운 공격을 했더라면 한두 점 더 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멕시코에겐 문이 활짝 열렸다. 서로를 상대로 졸전을 펼쳤던 한국과 스웨덴을 상대할 예정이다. 멕시코가 이 조에서 1위를 차지하면 16강에서 브라질과의 대결을 피할 수도 있다. 멕시코의 불운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승승장구를 해낼 수도 있다.

기다려 보면 답이 나올 테지만, 독일전이 끝나고 나서 몇 시간 동안은 앞으로의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멕시코가 처음으로 진정 엄청난 실력을 보여준 월드컵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멕시코 시티, 워싱턴까지 축하의 물결이 일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멕시코가 세계 정상에 있다. 패배할 거란 운명론도 벗어났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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