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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분식논란, 고의 아닌 과실로 결론 가능성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심의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 강병진
  • 입력 2018.06.20 09:48
  • 수정 2018.06.20 09:51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1차 증권선물위원회에 참석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판단, 제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1차 증권선물위원회에 참석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판단, 제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뉴스1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설립 당시부터 지배력이 없는 관계회사로 회계처리했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심의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증선위는 20일 정례회의에서 쟁점별 사실관계 파악과 증거 확인을 사실상 일단락지을 계획이다.

금융감독원과 삼성바이오가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국면에서 증선위는 논의 대상을 2012~2014년까지 확대했다. 삼성바이오는 미국의 바이오젠과 2012년에 공동설립한 에피스를 이 기간에 단독으로 지배하는 종속회사로 보고 장부를 하나로 합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왔다. 따라서 이 시기의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에피스를 처음부터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보고 지분율만큼 손익을 끌어오는 지분법을 적용하는 게 맞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일견으로는 ‘고의적 분식’이라는 금감원의 잠정 결론에 증선위가 제동을 건 것으로 비친다. 금감원은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한 게 잘못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의 논거는 종속회사든 관계회사든 상관없이 2015년에 회계처리를 바꿀만한 상황변화가 없었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증선위가 금감원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물리친 게 아니라, 회계처리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소장 변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증선위가 되레 삼성바이오의 허를 찔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에피스 주식을 추가로 살 수 있는 바이오젠의 권리(콜옵션)가 행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로 인해 지배력이 중도에 상실된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고 되치기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의 단독 지배력이 처음부터 없다고 보는 근거는 공동설립 외에 콜옵션 행사가격이 낮게 설계됐다는 점에도 있다. 행사가격이 에피스 주식 취득 원금과 비슷한 바이오젠 입장에서는 조기 권리 행사로 공동지배력를 얻게 되는 실익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110호의 ‘지배권 판정’ 조항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실질적인 의결권 여부 결정은 (시장가격과) 행사가격 비교에만 근거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가 시너지 구현 등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고 해석했다.

 

ⓒ한겨레

만일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2012년부터 관계회사로 처리했다면, 2015년 삼성바이오 장부에는 ‘재앙’이 발생한다. 현행 회계기준은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또는 그 반대로 회계처리를 변경할 때만 시가(공정가치)로 평가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2015년에 관계회사를 유지하면 공정가치 평가는 이뤄질 수 없게 된다. 에피스 주식은 시장에 당장 팔 목적으로 들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가로 평가할 이유도 없다. 반면 부채는 해마다 시가로 평가하도록 돼있다. 삼성이 평가한대로 1조8천억원의 콜옵션 부채가 손실로 잡히고 주식평가차익은 사라지면 삼성바이오는 완전자본잠식이 된다.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처음부터 관계회사로 처리해야한다는 점을 알고도 뒤늦게 바꿨다면 ‘고의적 분식’이라고 본다. 증선위가 이러한 논리에 동의할 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 사태는 일반 분식회계와는 달리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을 해석하는 차이에서 일어났다고 방어벽을 친다.

그래서 증선위가 겨냥한 대상은 ‘콜옵션 공시누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피스를 애초 관계회사로 전제하면 공동지배회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을 2012~2014년에 공시하지 않은 것은 법 위반이다. 이 부분도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고의성 입증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바이오가 콜옵션을 숨기려 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간 제일모직 가치의 핵심으로 떠오른 에피스 주식의 절반이 ‘사실은 남의 것’ 이라는 점을 일부러 누락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콜옵션의 존재는 2015년 4월에 공시된 감사보고서(2014년 말)에서 ‘우발부채’란 제목아래 단 한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행사가격 등 중요한 정보가 없어 이게 장차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게 돼 있다.

이런 점에서 삼성바이오 사태의 양대 핵심 사안으로 꼽혀온 에피스 가치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기각 가능성이 흘러나온 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에피스 가치가 부풀려졌고, 이 수치를 삼성바이오가 그대로 따오면서 회계변경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게 중론이다. 같은 맥락에서 금감원은 삼성바이오가 장부에 잡아놓은 에피스 주식가치를 취소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계 전문가들은 가치평가 문제가 심의 대상에서 배제될 경우 삼성바이오에 대한 증선위의 조처 수위는 회계 절차상의 중과실 또는 과실로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고의성 여부는 입증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 회계사는 “삼성 봐주기라는 여론의 질타와 삼성의 행정소송 리스크 사이에서 증선위 조종석에 앉은 금융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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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삼성바이오로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