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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빠가 달려와서 내 머리를 낚아챘다

[소설 '물기 없는 자리' ⑤]

  • 채이든
  • 입력 2018.06.19 18:08
  • 수정 2018.06.19 21:46
ⓒInsung Jeon via Getty Images
ⓒhuffpost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 채이든은 최근 매스컴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에 가슴이 아팠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안타까워 글을 썼다고 한다.

아홉살

 

101

설날, 나는 말끔히 차려입고 큰집에 갔다. 어른들이 안부를 물을 때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차례를 지낼 때도 얌전히 서 있었다. 그런데 떡국을 맛보고 예의범절을 잃어버렸다.

ⓒTopic Images Inc. via Getty Images

‘고깃국물이다!’

입안에서 감칠맛이 춤을 추었다. 쌀밥은 씹을 새도 없이 녹아내렸다. 나는 숟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밥상에 코를 박고 쌀밥과 떡국을 마구 퍼먹었다. 연립으로 돌아오자마자 새엄마가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돼지 같은 년! 누가 밥하고 떡국을 동시에 먹으래? 밥부터 먹고 떡국을 먹든가! 떡국부터 먹고 부족하면 밥을 더 먹어야지! 게다가 거지새끼처럼 퍼먹었잖아! 어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내가 너를 굶긴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내가 새엄마의 체면을 구겼다고 했다. 그 때문에 흠씬 두드려 맞았다.

나는 새해 소망으로 다리 저는 아이가 되기를 빌었다.

하멜른이란 도시에 갑자기 쥐가 들끓었다. 골머리를 앓게 된 시민들이 시청을 찾아가서 해결을 요청했다. 학자들과 시장이 회의를 열고,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쥐를 몰아내겠다고 장담했다. 시장은 사나이를 반기고 금화 오천 닢을 사례한다고 약속했다. 사나이는 마술피리를 불어서 쥐를 냇가로 꾀어냈다. 쥐는 냇물에 빠져서 사라졌고 시민들은 축제를 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시장을 찾아가서 약속한 금액을 요구했다. 그런데 시장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금화 오십 닢만 받아가라는 말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분노했다. 마술피리로 아이들을 꾀어서 산으로 데려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 남은 아이는 한 명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걸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다리 저는 아이. 하나뿐인 아이를 모든 사람이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였다.

103

2학년 종업식날, 나는 당구 큐와 작별했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정히 감싸주었다. 키 순서대로 자리를 정해서 나는 맨 앞줄에 앉게 되었다. 짝꿍과 죽이 잘 맞았고 선생님이 나를 예뻐했다. 등굣길 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수업 시간도 언제나 즐거웠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 때 새엄마가 말했다.

“우리 다음 주에 이사할 거야! 충청도로 이사할 건데…….”

목소리를 높이고 욕을 섞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지역에 관한 설명과 어떤 집이라는 설명을. 내 귀에 남은 말은 이것이었다. 이사 가는데 너 따위는 데려가고 싶지 않다는 말.

“그러니까 나가버려! 이사 하는 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알겠어?”

“네.”

처음으로 느꼈다. 새엄마와 내 마음이 같다는 것을. 새엄마가 나를 데려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눈곱만큼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이사는 기회였다. 새엄마와 아빠와 헤어질 기회! 그날 저녁에 나 혼자 살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공병과 양은과 신나를 주워서 끼니를 해결한다.

연립 지하실과 교회 지하실에 숨어서 잔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움막에 머물자. 양은과 신나를 주울 때 산에서 움막을 발견했다. 상여를 보관하는 움막이라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무섭지 않았다. 충청도로 이사하면 전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 더 갈 수 없었다. 1년 만에 선생님께 정을 붙인 터라 아쉬웠다. 공부를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토요일 낮에 정임이를 만나서 밀린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일요일에 전속력으로 공부하면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사 전날, 새엄마가 학교에 찾아와서 전학 절차를 밟았다. 정문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하굣길을 함께했다. 걸어오면서 새엄마가 물었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슬프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놀림 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을 움켜잡고 새엄마가 말했다. 내일 나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고. 이미 했던 말인데도 재차 강조했다. 내일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받아내고도 믿음이 안 가는지 새엄마가 말했다.

“내일 집에 들어오면 아빠한테 2학년 때 통지표를 보여줄 거야. 네가 결석한 것을 일러줄 거야!”

2학년 때도 결석이 잦았다. 각목으로 고문당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몸서리쳤다. 연립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나는 조용히 짐을 꾸렸다.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에 학용품과 옷가지를 구겨 담았다. 새벽에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가방을 둘러메고 등교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와서 먼 곳으로 도망쳤다.

밤에 슬그머니 연립으로 되돌아왔다. 지하실에 들어가서 잠을 자려고 했다. 계단 난간을 잡고 현관문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야 끝났다. 두려운 날들이. 나를 때리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아빠와 새엄마가 충청도로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흔적이 남지 않은 집안을. 내 방이 텅 빈 모양을.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빠가 달려와서 내 머리를 낚아챘다. 나를 거실에 내던지고 발로 짓이겼다. 도저히 내가 감당할 힘이 아니었다.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도와달라고 소리 질렀다. 짐짝을 묶던 밧줄이 채찍으로 변해서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 닿는 곳마다 멍 자국을 찍어냈다. 당장 죽을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제발 도와달라고 소리 질렀다. 우리 아빠를 말려달라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거실에 새엄마가 앉아있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외삼촌과 예비 이모부가 앉아있었다. 세 사람은 주스를 나눠마시며 내가 맞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외삼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었으니 서두르자는 말이 아빠를 간신히 멈추게 했다. 아빠가 외쳤다.

“이삿날 안 들어오고 속썩이는 새끼는! 개새끼처럼 묶어서 끌고 가야 한다!”

아빠가 새엄마에게 밧줄을 건넸다. 새엄마는 밧줄로 고리를 만들고 매듭을 지었다. 나는 밧줄 고리를 목에 걸고 내 방 책상 의자에 묶였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입을 다물고 싶었는데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빨끼리 부딪쳐서 괴상한 소리를 냈다. 밧줄 사이로 보이는 살갗은 모두 부어올랐다. 신음하는 내가 가여웠는지 새엄마가 귀띔했다.

“그냥 일찍 들어오지 그랬어. 일찍 들어오면 결석은 눈감아주려고 했는데.”

뒤통수가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밤새도록 덜덜 떨고 소리 없이 통곡했다. 이사는 다음 날로 미뤄졌다. 이른 아침에 트럭 구석에 처박혀서 연립을 떠났다.

ⓒSebastien Bessette via Getty Images

 112

여름방학 때, 나는 매일 마당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수돗가에 모여서 마늘 까기 부업을 했고 새엄마가 아주머니들 틈에서 마늘 껍질을 벗겼다. 엄마를 돕겠다며 이웃 아이들이 고사리손을 보탰고 나도 새엄마를 거들었다. 마늘 자루를 옮겨 나르고 찬물이 채워진 고무통에 마늘을 담가서 껍질을 불렸다. 어른들은 식칼을 손에 쥐고 일했다. 밑동부터 잘라내면 마늘 껍질이 수월하게 벗겨진다고 했다. 새엄마는 내 손이 느리다면서 나에게도 식칼을 갖다 주었다. 나는 칼질이 서툴고 껍질 벗기는 속도가 오히려 느려졌다. 모인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느리다면서 새엄마가 나에게 눈을 흘겼다. 이웃 아주머니가
새엄마에게 물었다.

“새댁, 그 집은 형편도 괜찮은데 왜 마늘을 까요? 냄새나고 고생스럽게.”

“예. 아직 비디오가 없어서 사려고요.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무리한 탓일까? 새엄마가 피로를 호소하고 앓아누웠다. 마늘 냄새가 지독한 탓일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비디오를 단념한 걸까? 병원에 다녀온 새엄마가 마늘 까기 부업을 중단했다. 기운을 차린 걸까? 발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외출 채비를 서둘렀다.

한동안 자르지 않아서 덥수룩해진 내 머리에 새엄마가 핀을 꽂았다. 그리고 나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언제 사놨는지 모를 하얀색 원피스가 담겨있었다. 나는 새 원피스로 갈아입고 발목 양말과 검정 샌들을 꺼내 신었다. 새엄마를 따라서 집을 나섰고 어느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서 새엄마가 카메라를 들고 주문했다.

“앉아봐. 일어서봐. 나무에 기대봐. 웃어봐. 더 밝게 웃으라고!”

익숙한 주문에 나는 덤덤히 포즈를 취했다. 새엄마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공원 한쪽에 사슴 우리가 마련되어있었다. 사슴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차근차근 바라보았다. 날이 더운지 그늘진 구석자리에 사슴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쉬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새엄마의 주문이 들어왔다.

“야! 거기에 있는 풀을 뜯어다 울타리 사이로 집어넣어 봐!”

나는 눈에 보이는 풀을 한 움큼 뜯어내고 울타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고개를 돌려서 카메라 렌즈에 시선을 맞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부드러운 힘이 내 손을 조금씩 끌어당겼다. 돌아봤더니 사슴이 몸을 일으키고 다가와서 풀을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새엄마를 바라보았다.

친척 집으로 보낼 사진을 추려내고 남은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사슴이 풀을 받아먹을 때 찍은 사진도 선택받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나는 그 사진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억지로 꾸며낸 표정 대신 깜짝 놀란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 소설 ‘물기 없는 자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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