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6월 18일 17시 03분 KST

‘라이카의 후손들’은 월드컵이 싫다

월드컵 때문이다.

Mikhail Svetlov via Getty Images

러시아는 떠돌이개의 나라다. 최초의 우주비행견 ‘라이카’도 모스크바 거리에 방랑하던 떠돌이개였다.

러시아의 떠돌이개들은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개보다는 덜하지만, 비교적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꾸린다. 개들은 지하철을 타거나 상가를 자유로이 다니기도 한다. 영국 매체 ‘가디언’의 차스 뉴키 버든은 한 칼럼에서 “어떤 떠돌이개는 아침마다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온다. 한산한 객차를 골라타는 것은 물론 먹이를 구하기 쉬운 장소에서 내리는 것도 알고 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런 평화 상태는 외국 손님들에게 보여줄 축제를 앞두고 산산이 깨진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개최하는 일부 도시가 떠돌이개들을 유기견으로 잡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폭스뉴스’는 러시아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리는 11개 도시 중 최소 7개 도시에서 떠돌이개를 소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동물단체 활동가의 말을 인용해 14일 보도했다. 러시아의 떠돌이개 소탕은 이날 개막식이 진행된 이후에도 세계 동물단체 중심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떠돌이개 소탕은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 때부터 불거진 문제다. 소치 정부가 도시 안전과 미관을 위해 떠돌이개를 잡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독극물을 이용해 개를 사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동물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의 켈리 오미라 부대표는 폭스뉴스에 “(그때와)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지역단체 활동가들이 개 사체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여전히 떠돌이개들이 독극물이 발라진 침이나 덫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떠돌이개는 월드컵이 열리는 11개 도시에 약 200만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개들을 모두 잡아들여 중성화수술을 하거나 안락사를 시키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든다.

 

러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지방정부는 민간업체에 위탁하여 포획하는 방식으로 떠돌이개를 관리한다. 월드컵 개최 도시 중 하나인 예카테린부르크는 월드컵에 앞서 4650마리를 포획하는 데 38만파운드(5억5천만원)를 민간업체에 지급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지난달 29일 전했다. 유기견이 정상적으로 관리된다면, 업체는 유기견을 포획해 보호소로 보내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하지만 민간업체가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경우는 많다. 이때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독살 등의 방법이 이용된다는 것이 동물단체의 주장이다.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 때 포획작업을 맡았던 민간업체 ‘바시아 서비스’는 2018년 유기견과 유기묘 3501마리를 포획하는 네 건의 계약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투압세 인근의 한 마을의 관리는 도롯가에 죽은 개들이 발견됐다며 비슷한 내용의 계약서를 찢어버렸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아나톨리 파크호모프 소치 시장은 떠돌이개 사살 허가를 내준 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바시아 서비스도 비인도적인 포획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떠돌이개를 공중 보건상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단체는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지방정부 관료와 민간업체의 위탁과 검은돈 거래가 숨겨져 있다고 본다. 또한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행사에서 떠돌이개는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정부는 우려한다. 하지만 동물단체는 마구잡이 포획이 주는 국제적 악명이 더 문제라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떠돌이개들은 유기견이라기보다는 도시에 정착한 들개와 가깝다. 동물복지가 앞선 일부 지역에서는 떠돌이개와 같은 독립적인 개들에게 중성화수술을 시켜 방사하기도 한다. 켈리 오미라 부대표는 “앞으로 러시아에서 국제행사를 치를 때마다 떠돌이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는 뒤에 숨지 말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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