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필리핀 대법원이 동성결혼 법제화 구두변론을 시작한다

"이건 역사적인 일이다."

  • 허완
  • 입력 2018.06.18 18:28
  • 수정 2018.06.18 18:37
ⓒAFP Contributor via Getty Images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동성결혼 허용 여부를 놓고 대법원이 심리에 돌입했다. 게이이자 변호사인 헤수스 팔치스(31)가 3년 전 낸 청원에 따른 것이다.

19일 필리핀 대법원은 1987년 공포된 가족법(The Family Code)에 대한 구두변론을 진행한다. 구두변론은 안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기 전에 청원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필리핀 대법원이 동성결혼 법제화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하기로 결정한 건 꽤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80%가 넘는 인구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다. 필리핀 주교회의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바티칸을 빼면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혼을 금지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혼을 원하는 부부에게 주어진 선택은 법적 별거(legal separation)를 신청하거나 혼인무효 소송을 내는 것 뿐이다. 법적 별거를 한다 해도 부부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는다. 

ⓒJesus Falcis

 

팔치스 변호사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법제화를 결정한 직후인 2015년, 필리핀 법원을 상대로 청원을 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나는 법을 바꾸기 위해 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게이의 한 사람으로서, 소수자로서, 나는 LGBT들을 차별하는 법에 도전하고 싶고 우리를 도와줄 법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필리핀 언론 ‘인콰이어러’에 의하면, 팔치스가 낸 청원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간의 결합’으로 규정한 가족법 제1조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팔치스는 동성커플에게도 양육권, 재산권, 상속권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리핀 대법원은 지난 3월 이 청원에 대한 구두변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결론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대법원이 정식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것 자체가 큰 변화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Pacific Press via Getty Images

 

필리핀대 헌법학 교수 안토니우 라비냐는 가디언에 ”법원이 절차상 이유로 청원을 기각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는 그들이 이 청원의 본질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역사적인 일”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게 됐다. 언제나 변화는 (논의) 테이블에 자리를 얻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구두변론은 테이블의 자리와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변호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인콰이어러는 이번 구두변론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1. 이 청원이 법원의 위헌법률심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여부

2. 결혼권 및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의 문제가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와 연관되어 있는지 여부

3. 민법상 결혼을 이성 커플 간 결혼으로 제한하는 것이 경찰권의 정당한 행사인지 여부

4. 민법상 결혼을 이성 커플 간 결혼으로 제한하는 것이 동등한 (권리)보호 조항을 위배하는지 여부

5. 동성 커플의 결혼 권리를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그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것인지 여부

6. 성에 근거한 결혼관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

7. 가족법 제1조와 제2조의 (결혼에 대한) 정의가 헌법에 위배된다면 (동성애를 혼인무효 및 법적 별거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 제46조4항과 55조6항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지 여부 

ⓒJAY DIRECTO via Getty Images

 

팔치스 변호사가 참석할 구두변론 당일 대법원 앞에서는 LGBT 단체들의 지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필리핀대 최대 LGBT 단체 관계자는 “500명에서 1000명,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해 말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 가디언은 ”동성결혼에 대한 두테르테의 지지는 부분적으로 가톨릭 교회와의 적대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전국적 또는 부분적으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호주,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스웨덴, 영국, 미국, 우루과이 등 모두 25개국이다.

아르메니아, 에스토니아, 이스라엘은 해외에서 법적으로 유효한 결혼을 한 동성커플을 인정하고 있으며, 대만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곧 동성결혼 법제화 절차가 마무리 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 #LGBT #Gay Voices #동성결혼 #로드리고 두테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