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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8일 13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18일 13시 28분 KST

착각하지 마, 무너진 건 보수가 아니야

뉴스1
huffpost

시워워언하다. 보수란 이름으로 더럽고 치사한 장난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군상들이 확 쓸려나갔다. 한 차례 대청소가 이루어졌다. 적어도 당분간 보수동네 망신거리 망둥이들이 설치는 꼴은 보지 않아도 좋게 생겼다. 가짜뉴스 퍼뜨려 상대방 흠집 내고 “아니면 말고”로 뻔뻔하게 도망가기, 악성 모함 흑색선전 해놓고 진실 들키고 나면 엉뚱하게 변명하기, 지저분한 짓거리들 펼쳐놓고 보수흉내 내기 등으로 우리 정치의 일상을 장식하던 떨거지들은 일단 앞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제 꼴사나운 몰골들은 사라진다고 믿어도 될까? 믿고 싶다. 하지만 굳건히 믿지는 말아야 한다. 물러나는 꼬락서니들이 더럽다. 패배의 요인을 찾는 데서도 남의 다리를 긁고(“최선을 다했다”?), 주권자의 의식과 인식과 선택과 결단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못하는 뻔뻔함 내지 몽매함 속에서 투표결과를 깎아내려 원망하고(“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 ‘내려놓겠다’면서 그래도 미련이 남아 ‘성찰하면서 앞으로 할 일을 고민하겠다’고 한다.

딱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자 펜을 들었다. 보수의 패배가 아니다. 패배한 건 보수가 아니다. 치사하고 야비한 저질 모리배 떼거리가 무너졌을 뿐이다.

제대로 된 보수가 일어나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거진 소멸되었다. 소멸을 면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보수로 다시 정비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찌꺼기를 씻어내야 한다. 바른미래당도 어설픈 의상극(costume play)을 걷어치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빨래나 화장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볏을 성형한다고 닭의 몸이 달라질까? 볏을 잘라 내버린다고 닭이 꿩이 될까?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박주선 그 누구든 대표로 있던 패거리들이 음전한 듯 몸을 성형하고 분단장을 곱게 다시 한다 해서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다.

진 쪽이 보수가 아니듯 이긴 건 진보가 아니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우기지 말라. 무너진 수구 퇴영 집단들에게 “진용을 가다듬어 제대로 된 보수를 다시 만들어라. 그리하여 나-우리=진보와 제대로 맞서서 깨끗하고 당당하게 경쟁하자”는 식으로 목소리를 키우지 말라. 상대가 자격이 안 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언행일 뿐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아니다. 진짜 할 일은 따로 있다. 나한테 묻은 수구의 때를 벗겨야 한다. 내 속에 스며든 착각의 묵은 구렁이를 쫓아내야 한다. 나의 이익 불리기, 나의 편의 추구하기, 내 사람 살찌우기, 우리 편 영역 넓히기의 기회라고 좋아 날뛰지 말라. 진보의 의상극(costume play)을 펼치기 전에 먼저 보수의 온전한 몸 갖추기에 나서야 한다. 보수를 쫓아냈다고 환호하기보다 보수의 빈 자리를 나의 것으로 온전히 점유하기에 힘쓸 일이다.

중도란 워낙 없는 자리이며,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정파에 해당한다. 보수와 진보가 있고, 좌파들과 우파들이 있을 뿐이다. 다양하게 널려있는 여러 정파들을 일정한 개념을 잣대로 순서짓거나 위치지울 때 편의상 불러주거나 임시로 분류하는 이름으로 중도좌파, 중도우파가 성립하는 것이다.

자, 정리하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무더기를 제대로 이름붙이면 정상적 보수세력이 된다.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진보가 아니라 보수란 말이다. 진보 의상극을 펼치고 싶은 근질거림을 억제하고 건전보수에 걸맞게 행동하면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면 된다. 더 이상 많은 성과를 낼 의무도 없고 숙제도 없다. 보통보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다 보면 더욱 젊고 힘 있고 바람직한 진보들이 새롭게 나설 것이다. 이제, 옛부터 활동해왔거나 새롭게 등장한 여러 진보와 경쟁하고 협조하면 된다. (새롭게 등장하는 보수가 있다면 그들과도 협조와 경쟁을 펼쳐야겠지.)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발전이고, 보통말로 해서 내일의 우리 세상이 진보하는 길이자 방식이다.

글 · 유초하
1948년에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부터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지냈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고문으로 있다. 현재 파주에서 <한국사상사산책>을 저술 중이다. 그 배경신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를 개척하는 힘은 현재의 자신감에 있고, 그 자신감은 역사와 문화에 바탕한 긍지와 자부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