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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탈핵당’도 ‘페미당’도 아닌 '녹색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6·13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했고, 야당은 참패했습니다. 선거엔 승리와 패배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 봅니다. 녹색당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시작을 말합니다.

녹색당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목을 끌었다. 선거운동 중인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
녹색당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목을 끌었다. 선거운동 중인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

“제도권 정당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실험’이라니.” “선거 때만 소수정당에 관심있는 척 그만해, 구려.”

‘녹색당의 정치 실험’을 주제로 기사를 쓴다고 하니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녹색당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비교적 잘 안다는 이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된 지 이미 만 6년이 지났다. 당명으로만 보자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2015년 12월), 자유한국당(2017년 2월), 정의당(2013년 7월)보다 더 오래됐다. 이번 6·13 지방선거까지 총선을 두 번, 지방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녹색당을 알 만한 이들에게 녹색당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녹색당? 난 처음 들어봐.”

6·13 지방선거 하루 전날인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앞에서 연설 중인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앞을 걸어가던 한 대학생이 친구에게 말했다. 그는 신 후보를 알고 나서야 녹색당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했다. 탈핵, 기본소득, 동물권, 페미니즘 등 뜨거운 이슈들에 앞장서서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지만,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정당이다보니 선거철이 아니면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남성보다 여성 당원이 더 많다는 사실(여성 당원 비율 55%)도 신기하다. 녹색당을 모를 만한 사람들에게 녹색당은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기득권’ 보호 정당법·선거법과의 싸움

녹색당은 1970년대 초반 호주에서 싹을 틔웠고 1970년대 후반 독일에서 꽃을 피웠다. 독일 녹색당은 전세계 녹색당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의회 진출은 물론이고 연립정부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로 핵폐기와 환경보호, 사회보장 및 최저임금의 확대, 소수자 차별 철폐, 풀뿌리민주주의, 반전·평화 등을 지향한다.

한국 녹색당은 2012년 3월4일 창당대회를 열고 세상에 나왔다. 녹색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창당을 가로막는 벽들이 많았다. 특히 정당법이 발목을 잡았다. 현행 정당법은 5개 이상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지지부진하던 녹색당 창당 움직임은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해 10월30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고 200명이던 당원 수(6월15일 현재 1만292명)는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개발주의와 성장주의를 반성하고 비폭력과 평화, 다양성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강령을 꾸렸다.

대의원을 추첨으로 뽑는 등 당원 개개인이 당의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보장했고, 당 권력이 중앙당에 집중된 기존 정당과 달리 지역당들의 평등하고 분권적인 운영을 제도화했다.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에서 여성 비율을 50% 이상이 되도록 했다. 2012년 2월5일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충남에서 시·도당이 만들어졌고, 약 한 달 뒤 창당이 이뤄졌다.

창당 이후 과정도 험난했다. “기득권 정당들이 시민들을 향해 쌓은 정치장벽”(녹색당 강령 ‘직접·참여·풀뿌리민주주의’ 중)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이 장벽을 허물기 위해 헌법을 무기로 정당법과 선거법 조항들에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녹색당은 창당 한 달만인 4월11일 치뤄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각각 ‘탈핵’, ‘농업’, ‘생명’ 의제를 대표하는 비례대표 3명과 핵발전소가 밀집한 부산 기장(을)과 경북 영덕·영양·봉화·울진 지역구의 후보 2명을 냈다.

당시 녹색당에선 총선 참여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총선 결과에 따라 창당 한 달만에 당이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당법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해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거나 득표율 2%에 미달한 정당은 등록을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44조 1항 3호) 또한 재창당을 할 경우에도 같은 당명을 쓸 수 없도록 했다.(41조 4항) 걱정은 현실이 됐다.

지역구 후보들은 당선되지 못했고 정당 투표에서는 0.48%(10만3842표)의 표를 얻었다. 녹색당은 진보신당, 청년당과 함께 총선 다음날 등록이 취소됐다. 등록이 취소된 정당들과 함께 녹색당은 그해 5월 행정법원에 정당등록취소처분 취소소송을 내고, 정당법의 명칭사용금지 조항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행정법원은 그해 11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월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두 조항 모두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했다.

2015년 5월엔 국회의원선거 후보자에게 1500만원의 기탁금을 강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56조 1항)이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에 한해 기탁금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선 신지예(서울), 고은영(제주) 후보는 지난 2월 시도지사 후보 기탁금 5000만원을 납부하도록 한 조항(공직선거법 56조 1항 4호)과 국회의원 및 자치단체장 선거방송 토론회 참석 자격을 △국회의원 5인 이상의 정당이 추천하거나 △전국 득표율 3% 이상 득표 정당이 추천하거나 △최근 4년 이내 해당 지역구 선거 후보자로 10% 이상 득표했거나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5% 이상인 후보자로 제한한 조항(공직선거법 82조의2 4항 3호)이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만 25살 미만 국민의 피선거권을 제한(공직선거법 16조)하거나 만 19살 미만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제한한 법 조항(정당법 22조)도 헌법소원을 제기했거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녹색당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목을 끌었다. 선거운동 중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왼쪽 둘째).
녹색당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목을 끌었다. 선거운동 중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왼쪽 둘째).


‘페미니즘 바람’ 일으킨 6·13 선거

이번 6·13 지방선거는 녹색당에게 창당 이후 네번째 선거였다. 광역단체장 후보 2명, 기초지방의원후보 12명 등 모두 32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첫 녹색당 당선자’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킨 선거였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한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가 1.67%(8만2874표)의 득표율로 4위를, ‘난개발 중단’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가 3.53%(1만2188표)의 득표율로 3위에 올랐다. 서울에서는 정의당 후보(득표율 1.64%)를 앞질렀고, 제주에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후보를 따돌렸다. 일부 언론에서는 ‘파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과 제주 두 광역단체장 후보가 여성이었고, 두 후보는 성평등 정책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신 후보의 ‘페미니스트 정치’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지향한다”는 녹색당의 강령에서 보자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당연한 목소리였다.

신 후보는 2016년 녹색당 비례대표로 총선에 나섰을 때도 “여성 정치인이 여성정책, 성평등 정책을 이끌어 나가고 여성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야 한다“며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젠더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신 후보가 선관위에 제출한 1순위 공약은 젠더건강센터 설치, 2순위 공약은 성평등 계약제 도입이다.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자는 그리 과격하지 않은 신 후보의 등장에, 일부가 보인 반응은 과격했다. 선거 포스터가 훼손되고 페이스북 게시물엔 혐오성 댓글이 달렸다. “페미니즘 팔아 정치한다”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진보적 인사’로 알려진 박훈 변호사는 신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 대해 “개시건방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녹색당 내부에서도 ’페미니스트 후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해 여름 전국 선거대책위원회 차원에서 성평등과 분권을 이번 지방선거 핵심 가치로 잡았는데, 이후 일부 당원들이 ‘녹색당이 왜 페미니스트 후보를 내냐’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녹색당이 다루는 의제는 탈핵, 동물권, 지방분권, 비폭력 등 다양하다. 각자가 지지하고 공감하는 의제들을 보고 입당하기 때문에 특정 의제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승수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 6일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이 아직까지 낯선 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 전 위원장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하고 시대착오적인 낙태죄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제들은 정치의 핵심의제가 되지 못했다”며 “녹색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평등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정치의 의제로 만든다’는 녹색당의 기조에 정말 잘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 다음날인 지난 14일 한 녹색당 당원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지향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녹색당이 성평등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는 건 이상한 일”이라며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이 낯설어 탈퇴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은 “과거 탈핵을 들고 나왔을 땐 ‘(우리가) 탈핵당이냐’고 했다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얘기하니까 또 ‘탈핵은 왜 버렸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탈핵도 기본소득도 이후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됐다. 다른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머지않아 성평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당이 꿈꾸는 정치

정당이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다. 녹색당 역시 ‘제도권 진입’과 ‘의석 확보’를 목표로 선거에 참여했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기존 정당’들은 당 대표가 사퇴했고 ‘비상 대책’을 준비하는 중이지만 녹색당은 좀 다르다.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은 “당선자를 내려했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유권자들이 원하고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얘기를 우리 후보들이 나서서 외쳤고 이제껏 받아보지 못했던 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내 삶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는 어느 유권자의 말처럼,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는 게 진정한 정치라는 것을 앞으로 보여주겠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 그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기성세대에게 정치란 ‘선거에서 이기고 권력을 얻어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1020세대는 ‘내 삶과 사회 전반을 변혁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들은 자신을 온전히 대변해줄 수 있으리란 믿음, 함께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시민들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투표권이 없는 만 19살 미만 청소년 4만5000여명이 참여한 모의투표에서 신지예 후보(36.6%)는 박원순 후보(33.3%)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1020 세대들이 녹색당의 정치에 호응했다. 녹색당과 후보들은 1020 세대에게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참고자료: <녹색정치의 꿈은 계속된다>(하승수·2012), <녹색당을 여행하는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녹색당 전국사무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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