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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임차인은 국가로부터 이렇게 보호받는다

한국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분명 한계가 있다

지난 8일, 궁중족발에서 장사를 하던 김모씨는 건물주 이씨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오랜 갈등이 폭력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월세를 네 배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던 임차인의 주장만 놓고 볼 때 이 사건은 월세 인상 폭에 관한 갈등처럼 보인다.

 

 

임대인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차인 측은 우리에게 “분명히 월세 인상을 요구했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는 임대인이 ‘어차피 그 돈 받을 생각 없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엇갈린 양측의 증언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즉 월세를 실제로 얼마나 요구했냐는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임대인이 요구했다던 월세 범위는 시세를 한참 벗어난 범위(법원이 선정한 감정평가인이 산출한 궁중족발의 적정 임대료는 2016년 당시 월 304만3000원이었다)였고 실제 임대인도 ‘네 배의 월세’를 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사건은 그 자리에서 장사를 계속하고 싶은 임차인‘과 ‘임차인을 내보내려는 임대인’ 간의 갈등, 즉 상가건물의 영업 존속에 관한 문제가 주원인으로 보인다.

임대인이 왜 임차인과 월세 협상을 하지 않고 내쫓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힌트는 있다. 임차인이 한겨레에 전한 말이다.

“같은 건물에 있어도 1층 점포 권리금이 제일 비싸요. 그런데 (건물주가) 우리한테 보증금 3000만원 갖고 나가서 열심히 장사하라는데 얼마나 황당해요. 그 분(건물주)이 우리가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권리금 포함해) 팔고 나가라’는 조건으로 적정 수준의 월세를 제시했다면 (가게를) 팔고 나갔겠는데, 우리한테 ‘보증금 1억원, 월세 1200만원 낼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잖아요. 현 시세에 맞지 않는 가격인데 그런 사람을 어디서 데려와요? 법원 감정평가에서도 ‘궁중족발’의 적정 임대료가 월 304만3000원이라고 나왔어요. 내가 여기(가게)에 쏟아부은 돈이 그동안 번 거 다 투자해서 1억이 넘게 들었는데 순순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수는 없었던 거죠.”

-‘궁중족발’ 사장은 왜 5년 동안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했나, 6월14일 한겨레

이에 대해 이씨는 “(명도소송) 1심이 끝나고 타협을 위해 (가게) 권리금 6000만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김씨가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임차인 측은 우리와의 통화에서, 권리금과 관련해서 건물주는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며 재반박 했다.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둘렀다”는 사실 때문에 이 사건은 비교적 크게 보도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반응은 예사 폭력 사건과 달랐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폭력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을 이해한다’며 건물주를 비난하는 댓글이 주를 이뤘던 이유는 임차인의 항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임대차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진통을 겪었다. 가장 크게는 용산참사가 있었고 그밖에도 임대인이 재건축을 하겠다며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임차인을 내보냈던 카페테이크아웃드로잉 사건과 우장창창 사건 등이 있었다. 제도보완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국회는 지난 2015년에 임차인의 권리금회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했고 2018년에는 임대인의 임대료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추는 시행령이 발표됐다.

하지만 임대료 상한선은 ‘계약 갱신 청구권’이 소멸하는 5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새로 생긴 ‘권리금 회수 방해 금지’ 규정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우회 방법과 편법이 임대인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법 개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힘들다는 의미다. (이에 관해서는 추후에 별도 기사로 담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외국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법률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을까? 다른 나라의 잘 마련된 제도를 살펴보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을 줄일 해법의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권리금(영업권)과 임대차 존속기간, 임대료 인상 폭을 중심으로 다른나라의 임대차보호법을 살펴보았다.

 

 

ⓒKeiko Iwabuchi via Getty Images

 

영국

영국은 임차인을 가장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권리금을 별도의 재산권으로 인정하며 처분이나 양도도 허용한다. 영국에서는 영업권이 하나의 개별 권리이기 때문에 임차인이 타의에 의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되거나, 강제로 폐업하게 된 경우에는 임대인 등에게 영업권에 대한 보상을 요청할 수 있다.

임대차의 존속기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간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임대인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임대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차인의 임대차갱신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임대료의 연체 등 임차인의 잘못이 아닌 한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퇴거 보상(disturbance payment)을 청구할 수 있다.

임대료 상한 폭에는 별도의 제한이 없다. 다만 보통 3~5년마다 한번씩 임대료를 다시 정하는데,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다. 그러나 합의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 중재인이 나서 임대료를 조정한다.

 

미국

미국의 임대차 제도는 정말 사적 자치의 나라 미국답게 별다른 제한사항 없이 모든 것을 계약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먼저 상가임대차의 계약 기간은 최소기간도 최대기간도 정해두고 있지 않다. 대신 적법한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서면으로 계약해야 한다.

미국에서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임대인과 임차인은 임대차의 존속기간부터 임대료, 재계약 시의 갱신 청구권까지 모두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임대인은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차임 이상을 요구할 수 없고 임차인은 계약기간 종료 이후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없다. 다만 통상적으로 임대차 기간은 5년 정도로 정하고 여기에 갱신선택권(Option)을 추가한다. 갱신청구권이 계약사항인 경우 임대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임차인의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미국도 권리금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계약사항이며 법률로 보호하지 않는다. 다만, 임대인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임차권을 다른 임대인에게 양도하거나 다시 임대(전대)할 수 있는데

미국의 법은 언뜻 보면 법적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약된 내용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침해 받지 않기 때문에 임차인이 계약 당시 권리금 등 투하자본 회수 여부를 판단한 뒤 계약을 맺을 수 있다.

프랑스

프랑스의 상가건물임대차 존속기간에 대한 규정은 영국 못지않게 강력하다. 임대차기간은 최소 9년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임대인은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지만 엄격한 조건을 요한다.

권리금의 경우 프랑스는 영국처럼 별도의 재산권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업소유권(propriété commerciale)이라는 권리가 존재하며 임대차계약의 갱신요구를 거절하는 경우 임대인은 영업소유권의 침해로 인한 가액, 일종의 퇴거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퇴거보상금은 상당히 고액이라 사실상 임차인은 원할 때까지 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지배적이다.

임대료의 경우에는 제한이 덜 한 편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최초 계약 시, 평균 시세 등에 구애 없이 자유롭게 임대료를 정할 수 있다. 다만 이후에 임대료를 증액하려고 하는 경우 인근지역의 통상적 차임이나 현 임대목적물의 여러 요인을 고려해서 합리적으로 정해야 한다.

 

ⓒStarcevic via Getty Images

 

 

물론,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모델이 정답일 수는 없다. 임대차 계약에 있어서 사적 자치를 보장하는 것도,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도 모두 중요한 가치다. 다만 궁중족발 사건에서 보듯, 지금 한국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여전히 임차인 보호 보다는 임대인의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가건물의 공급 부족과 수요 증가로 임대인이 부당하게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자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임대차 종료 후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임차인은 유익비 등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건물의 가치도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 안정적인 임대기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임차인의 폐업에 따른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며, 차임인상으로 임차인의 부담이 증가하면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 임차인 보호 방안으로 임대인의 폭리를 방지하면서, 상가건물신축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Select Committee on Business Premises Report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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