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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성과 없었다'는 평가에 대한 4가지 반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준 건 '립서비스'일 뿐이다.

  • 허완
  • 입력 2018.06.15 17:57
  • 수정 2018.06.15 18:00
ⓒJonathan Ernst / Reuters

‘세기의 회담’으로 불렸던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미국 진보 언론한국 보수언론들은 연일 회담 성과를 깎아내리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에 다 내주고 얻은 것은 없는 회담’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비판자들은 북한이 언제까지 비핵화를 할 것인지,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이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이번 회담 덕분에 북한이 정상국가이자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리버럴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잔혹한 독재자’를 용인해준 셈이라고 비판하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은 불확실하거나 불분명한데 덜컥 선물부터 안겨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나씩 따져보자.  

ⓒJonathan Ernst / Reuters

 

1.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준 건 ‘립서비스’ 뿐이다

트럼프가 어느 정도 양보를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양보의 실질적 내용이다. 

우선 따지고 보면 북한은 이번 회담에 앞서 꽤 많은 걸 내놨다.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을 석방했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으며 핵·미사일 실험도 중단했다. 물론 그 중 몇몇 조치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재개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거나 비용이 든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당장 크게 잃을 만한 양보를 한 게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제재 해제 시점을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이후로 못박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작 북한이 가장 원하는 건 아직 내주지 않은 것이다. 

한국일보 송용창 특파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내준 건 ”명분과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말하자면, 돈 한 푼 안 드는 ‘립서비스’라는 것.

(...) 엄밀히 따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준 ‘선물’은 경제적 실리가 아니라 정치 안보적 명분과 레토릭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을 “재능있고 똑똑하다”거나 “훌륭한 협상가”라고 칭찬하며 대등한 지도자처럼 예우해주면서 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줬고 북한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에 부응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에도 선뜻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에 대해선 비핵화 이행 조치가 진전될 때까지 현 제재가 유지될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북한을 한껏 치켜세우면서도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해온 경제 제재의 키는 움켜 쥐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6월13일)

ⓒJonathan Ernst / Reuters

 

2. 트럼프의 ‘양보’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추켜세우는 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말은 언제든 번복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리틀 로켓맨’의 레토릭으로 돌아갈 수 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해줬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해버릴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reversible) 양보라는 것.

한미연합군사훈련도 같은 맥락이다. 제임스 제프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꽤 큰 양보”라면서도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이런 양보는 쉽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매우 쉽게 뒤집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역시 진지하게 말했지만 합의의 일부분은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유일한 것은 군사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건 쉬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엔진 부품 시설들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군사훈련을 쉽게 재개할 수 있죠.” (VOA 6월13일

ⓒHandout . / Reuters

 

3. 북한의 약속은 이제 되돌리기 어렵다

북한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렇게까지 전례없이 ‘판’을 크게 벌려놓은 상황에서 약속을 번복할 경우 뒤따를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근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경향신문 칼럼에 ”북한은 약속을 안 지키면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거의 없다”며 이렇게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믿음이 깨지면 약속을 모두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다. 군사훈련은 원래대로 재개하면 되고, 수교협상은 중단시키면 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재는 풀지 않기로 이미 확약하였다. 북한은 약속을 되돌리면 국제사회의 압박과 고립만이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 6월14일)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 비하면 훨씬 여유로운 입장이다. 북한의 후속 조치를 지켜보다가 그에 맞춰서 체제보장이나 경제제재 해제 같은 실질적 ‘선물’을 주면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합의가 깨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되긴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권이 위태로워지거나 국제사회로부터 제재·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니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 합의를 여러번 깨지 않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한 약속은 이전의 약속과 차원이 다르다. 사상 최초로 미국의 지도자와 직접 만나서 꺼낸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감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Jonathan Ernst / Reuters

 

4. 상호신뢰 없이 ‘CVID’는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많은 비판자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 직전까지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 때부터 중요해지는 건 바로 신뢰다.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같은 큰 약속을 주고 받을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합의문 첫 번째 조항에 ”새로운 미국-북한 관계 수립”이 담긴 건 긍정적 신호다. 서로 신뢰를 구축해 나가면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해나간다는 지향이 담겨있기 때문. (적대국 관계인 트럼프 대통령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거수경례’를 주고 받은 것도 상징적 장면 중 하나였다.)

이근 교수는 ”우호적 관계의 비가역성이 있어야 비핵화의 비가역성이 달성된다는 합의가 북미 간에 생긴 것 같다”고 진단했다. ‘CVID’ 달성을 담보하는 건 합의문 문구가 아니라 두 국가의 불가역적인(irreversible) 관계 정상화라는 것.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 덕분에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부를 설득하기가 쉬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비핵화 조치들을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 그러면 북한이 이번에는 이러한 정세 변화를 가지고 대내적으로 설명을 하겠죠. 이제 우리는 북미 간에 상당한 정도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일련의 비핵화를 한다고 얘기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아마 제가 볼 때는 폼페이오 장관하고 북한하고 또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할지는 모르지만 아마 2~3주 정도 내에 그런 비핵화 관련된 일련의 조치도 일정하게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북한이 원하는 경제, 해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안 되잖아요.” (JTBC뉴스 6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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