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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1일 17시 58분 KST

스튜어디스는 왜 백혈병에 걸렸나

대한항공 승무원은 특히 피폭량이 많다.

한겨레21
대한항공에서 6년간 북극항로를 비행하다 우주방사선에 피폭돼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전직 승무원 K씨가 대한항공 승무원 가운데 처음으로 백혈병 산업재해 신청을 낸다. 면역질환 합병증으로 손톱이 빠지고 온몸에 검은 반점이 생겼다.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1년째다. 그가 낸 길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과 인정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피해가 너무 많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했던 유미씨의 재해와 사망의 원인 중 하나였던 방사선은 또 다른 곳에서 제2의 황유미를 만들었다. 이번엔 화려한 유니폼에 가려진 승무원이다.

대한항공에서 일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전직 승무원 K씨가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200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K씨는 승무원으로 6년간 북극항로를 다니며 우주방사선에 피폭된 것과 야간·교대 근무 등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 승무원의 혈액암 산재 신청은 처음이다. 근골격계 부상 외에 아예 산재 신청 자체가 흔치 않다. 한겨레21이 만난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수없이 다치고 병들면서도 산재보험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고 말했다. 산재 대신 개인 연차휴가를 쓰며 쉬는 승무원이 태반이라는 말도 나왔다. 산재를 산재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처음 산재를 외친 사람을 만났다.

오로라. 에메랄드 빛줄기가 강물처럼 일렁이는 극지방 최고의 볼거리다. 오로라를 찍으러 북극 여행을 떠나는 사진작가도 많다. 하지만 오로라가 아름다울수록 방사능도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주 입자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하며 마찰을 일으키는 현상. 그게 오로라의 정의다. 대한항공 승무원이던 K씨도 몰랐다. 특히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10~12km 북극 상공에선 상당량의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생 최고의 날 찾아온 백혈병

한겨레21
하늘을 날던 K씨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 있다. 퇴사 뒤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져 우울증 마저 찾아왔다.

2015년 7월초. 그날은 K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비행하는 날이었다. 식욕도 없고 입술에는 물집이 잡혔다. 승무원 선배는 “신혼 티 내냐”며 웃었다. 따라 웃었다. 인생의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그 전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한항공 훈련원 강사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신입 승무원들을 가르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자꾸 열이 나고 온몸이 떨렸다. 먹지도 못했는데 구토가 났다. LA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하늘을 날던 K씨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 있다. 2018년 5월26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K씨는 온몸의 근육이 사라져 걸을 수조차 없었다. 키 173cm에 몸무게 39kg. 가죽 너머 뼈가 드러나 보였다. 입술은 완전히 말라 쪼그라들었고 머리카락은 없었다. 피부 변색으로 몸 곳곳이 검은색을 띠었고, 등 부위는 피부가 벗겨져 붉었다.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골수이식을 받았는데, 그 합병증으로 면역질환인 만성이식편대숙주질환(숙주병)이 온 탓이다. K씨는 실명 공개와 사진 촬영을 원치 않았다.

“진짜 속상한 건, 결혼해서 살아보질 못한 거예요.” 결혼 8개월 만에 발병했다. 그 8개월도 대부분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다. 결혼 생활도 대부분이 투병이었다. 올해 4월부터 휴직을 하고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온 남편은 “와이프가 정말 예뻤다”며 과거 사진을 보여줬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K씨는 비행이 좋았다. 유니폼도 예뻤고, 사람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일만 했을 뿐인데 파리에 와 있고, 뉴욕에 와 있고, 성격에 완전 맞는 거예요.” 지금도 비행하는 꿈을 꾼다. “나 사직했는데 왜 비행을 다시 시켜주지? 이거 뭐지? 신났다가 깨면 꿈인 거예요.” 그는 아직 승무원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다.

끝까지 퇴사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밀려났다. 연차와 병가를 90여일 쓰고 1년 휴직했는데, 날짜가 한참 남았는데도 하루에 몇 번씩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복직하려면 승무원 일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코멘트가 담긴 진단서를 가져와야 한다, 회사로 와서 누구 누구를 만나 인터뷰 받아야 한다, 괜찮겠냐, 어떻게 할 거냐’는 연락이었다. “사직이라는 단어만 안 꺼냈지 사직하라는 얘기였어요.” 회사를 간신히 나가서 3개월 휴직 연장을 받아냈지만 폐렴으로 건강이 더 나빠져 결국 2017년 2월 퇴사했다.

 

쓸모없어지면 내다버리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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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진짜 나빠요.” K씨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폐 손상이 심해 산소공급기를 코에 달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아도, 쓸모없어지면 내다버리는구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눈물샘이 말라서 안구건조증이 심했다. 인터뷰 내내 계속 인공눈물을 넣었다. K씨는 없는 게 많았다. 눈물과 침과 손톱이 없었다. 항암치료와 숙주병은 세포분열이 빠른 부위를 모두 파괴했다. 가장 가슴 아픈 부위는 난소였다. 의사는 사실상 아기를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산재 신청의 동력이었다.

K씨는 백혈병 발병이 승무원 업무와 관련 있다고 본다. 가족 내력도 없고 발병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아무 이상 없었다. 강모열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업무관련성 평가 소견서’에서 “항공기 승무원의 경우 상당한 정도의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백혈병을 포함한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면서 “피재자(K씨)의 업무와 재해의 발생과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산재 신청을 대리하는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는 “6월11일 등기우편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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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항공기 승무원은 원자력발전소 종사자보다 방사선 피폭량이 높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 국내 항공사 승무원을 대상으로 2015년 한 해 동안 노출된 방사선량을 분석한 결과, 객실승무원의 평균 방사선 노출량은 2.2밀리시버트(mSv)였다. 방사선을 다루는 비파괴검사자(1.7mSv)나 원자력발전소 종사자(0.6mSv)보다 높다. 참고로 일반인의 선량 한도는 연간 1mSv다.

2.2mSv는 평균값일 뿐이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은 “조사 결과 주목해볼 점은 연간 방사선 노출량이 3mSv에서 4mSv에 해당하는 구간에 상당히 많은 승무원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연간 피폭 방사선량이 적은 구간은 휴직자나 국내선을 주로 탑승하는 승무원을 포함한 결과”라고 밝혔다.

 

방사선에 ‘절어 사는’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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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특히 피폭량이 많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8년 2월 만든 ‘2017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의 평균 우주방사선 피폭량은 2.88mSv로 국내 항공사 승무원 중 가장 높다. 다른 항공사보다 노선 수가 많고 북극항로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뉴욕, 워싱턴, 시카고, 애틀랜타, 토론토 등 미국이나 캐나다 동부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북극항로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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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은 지구에서 우주방사선이 가장 강한 지역이다. 외부 은하나 태양에서 오는 입자가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들어오는 지역이 북극이라서다. 적도와 비교하면 북극의 방사능이 2~4배는 높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방사능도 급격히 많아진다.

북극항로를 한 번 지날 때마다 승무원들은 흉부 엑스선 검사를 한 번 하는 만큼의 방사선량(0.1mSv)을 쐰다. K씨의 경우 2009년 10월 입사해 2015년 7월 발병 전까지 미주·아시아·유럽 등 세계 여러 곳으로 5518시간 비행했는데, 가장 항공시간이 긴 미국은 총 1776시간 비행했다.

K씨는 일할 때 북극항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막연히 ‘안 좋겠지’ 정도만 생각했어요. 폴라루트(북극항로)로 가면 머리가 좀 아프고 어지럽긴 했어요. 승무원들끼리 ‘우린 방사능에 절었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심각하다고는 생각 안 했죠.”

자신의 피폭량을 확인한 적은 없다.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생방법) 제10조는 항공운송사업자가 승무원들에게 피폭량 정보를 개인별로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기자가 법조문을 읽어주자 K씨는 깜짝 놀랐다. “어머, 그런 게 있어요? 세상에 나 이런 건 처음 들어.” 대한항공 쪽은 ‘사내 항공의료센터를 통해 개인별로 피폭량을 알려준다고 말하더라’고 얘기하자 더욱 놀랐다. “어디에서요? 대한항공에서요? 기자님, 이거 아무도 모를 거예요. 지나가는 승무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요.”

 

대한항공 “개인별로 피폭량 알려준다”

S3studio via Getty Images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의 평균 우주방사선 피폭량은 국내 항공사 승무원 가운데 가장 높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항공승무원 안전관리 지침’은 한층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①항공운송사업자는 우주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는 고도, 위도 및 경도에서의 방사선량률과 실제 비행시간, 피폭방사선량의 평가 내용 및 결과 등을 반드시 포함하여 승무원에게 제공하여 숙지시킨다”

“②항공운송사업자는 우주방사선에 의한 피폭방사선량을 승무원에게 공지하여야 하며, 승무원은 개인의 피폭방사선량을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겨레21이 추가로 다른 승무원 10여 명에게 확인해봤지만 자신의 피폭량을 알고 있는 승무원이나, 확인할 방법을 아는 승무원은 없었다.

우주방사선에 노출된 승무원의 암 발생률이 정확히 얼마나 높아지는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북유럽과 미국 등에서 항공승무원을 조사했을 때 일반인보다 유방암, 피부암, 전립선암, 급성골수성백혈병, 뇌암 등의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우주방사선의 특성이 지상에서 쐬는 방사선과 달라 같은 피폭량이라도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그룹 박사는 “지상에선 보통 짧은 시간 동안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는 반면, 항공 승무원들은 긴 시간 동안 낮은 방사선에 노출된다. 또 우주방사선은 지상에서 피폭되는 방사선에 비해 매우 복잡한 성분으로 구성됐다. 특히 중성자가 많이 포함됐는데, 다른 방사선에 비해 중성자는 입자 하나가 세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승무원의 피폭량은 기존과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승무원들의 피폭량 자체가 많지 않고 법정 기준치보다 낮게끔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생방법은 항공 승무원의 연간 피폭량이 50mSv(5년간 100mSv)를 넘지 않도록 의무화하고,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안전지침’은 유럽연합 기준에 맞춰 연간 6mSv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연간 6mSv를 자체 상한선으로 두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1년 누적 피폭량이 5mSv를 넘은 승무원은 6mSv를 넘지 않도록 항공 일정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노사 합의로 한 달에 세 번 이상 북극항로를 지나지 않게 하는 규정도 있다. 이 관계자는 “승무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피폭량을 공지하지 않고, 대신 항공의료센터에 요청하면 각자의 피폭량을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을 온·오프라인 교육 때마다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주방사선 외에 K씨의 병에 영향을 미쳤을 요인은 더 있다. 검색대를 드나들 때마다 엑스레이 검사를 해 추가로 방사선에 노출된 점, 국제암연구소 2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야간·교대 근무와 생체리듬을 해치는 불규칙한 업무 환경, 기내의 탁한 공기, 감정노동 등이다. 최근 대한항공 비행기 내부를 청소할 때 1급 발암물질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산재도 내 권리니까, 찾고 싶어요”

하지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밝혀야 하는 산재 인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 K씨는 퇴사 뒤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져 우울증이 찾아왔다. 상대가 대한항공이고 우주방사선에 의한 백혈병 산재는 국내 최초라는 점도 큰 부담이다.

“유리 천장을 걷는 것 같아요.” K씨를 바라보는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언제 깨질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K씨는 다른 승무원들이 동참해주길 바랐다. “대한항공엔 아픈 분이 많아요. 유방암, 백혈병, 림프종, 폐암, 갑상샘암, 후두암…, 쉬쉬하면서 묻고 다니는 거예요. 대한항공이 말하기 힘든 구조라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산재도 내 권리니까, 내 권리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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