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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수혜자들'의 '사법농단' 수사 반대

35명 중 22명이 양승태 대법원장 때, 나머지 13명은 김명수 대법원장 들어 처음 법원장에 임명됐다

  • 백승호
  • 입력 2018.06.09 12:23
  • 수정 2018.06.09 12:25

양승태 사법부 시절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시도 등 ‘사법농단’ 실체가 드러난 문건을 직접 확인하고도 “합리적 근거가 없다”(7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고 단정한 35명의 법원장에 대한 법원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30여년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사법관료 정점을 차지한 법원장들의 보수성과 사법행정권 남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범의식’ 등이 두루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오는 11일 일선 판사들이 모이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임을 선언한다”는 안건이 오른다. 법조 삼륜의 한 축인 변호사들도 사법농단 시국선언을 예고했다.

 

사법관료화 최대 수혜자

이들 법원장 35명 가운데 15명은 오는 8월 퇴임하는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의 후임이 되겠다고 손을 들었다. 김기정·김용빈·김찬돈·김필곤·노정희·노태악·박효관·사공영진·윤준·이경춘·이광만·이균용·이상주·한승 원장,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2012년 2월~2014년 2월), 윤준 수원지법원장은 대법원장 비서실장(2012년 9월~2013년 2월), 한승 전주지법원장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2013년 3월~2014년 2월)과 사법정책실장(2014년 2월~2016년 2월), 윤성원 광주지법원장은 사법지원실장(2014년 2월~2016년 2월)을 지냈다.

이번에 후보 추천에 동의한 이들을 포함한 법원장 35명은 잠재적 대법관 후보들이다. 일부에선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쥔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법원장들이 ‘의연한 반대’를 한 것으로 본다. 반면 상당수 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 상식과 법감정을 무시한 결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35명 중 22명이 양승태 대법원장 때, 나머지 13명은 김명수 대법원장 들어 처음 법원장에 임명됐다. 8일 한 판사는 “법원장들은 대개 승진 요직으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를 거쳐, 대법관으로 가는 교두보인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현 사법행정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이들이 현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부분의 고위법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해 3월 이후 한 차례도 자성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재판 거래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단정한 이들이 국민의 뜻을 살피는 최고 법원 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민중기 법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장 판사(법원장)들도 소장 판사들과 큰 틀에서 같은 방향인데 방점이 다른 정도”라면서도 “국회가 진상규명을 하고 문제가 있는 법관은 탄핵하는 방안도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일선의 목소리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법원장 35명 중 15명이 대법관 후보인데…국민 법감정 외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 조사보고서와 법원행정처가 추가 공개한 문건을 보면, 법원장 등 고위법관들은 행정처를 대신해 일선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관리하는 핵심 거점법관 역할을 한 정황이 상당수 등장한다.

 

 

2016년 3월 행정처는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판사회의 무력화를 위해 회의 의장인 법원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도록 계획한다. 또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는 ‘판사회의를 통한 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에 대한 견제·비판’을 막기 위해 “단독판사 조기 장악” 및 민사수석부장판사 증원 계획도 세운다. 실제 지난해 2월 정기인사에서 민사 제2수석부장이 신설됐다.
행정처에서 생산된 판사들의 ‘뒷조사’ 정보 역시 법원장한테 전달됐다. 행정처는 2016년 사법행정위원회 구성 당시 위원 추천 권한이 있는 고법원장들에게 ‘맞춤형’ 판사 명단과 정보를 일부 전달했다. 이 자료에는 ‘핵심 그룹과의 유대 관계’, ‘주류 법관의 논리 대변’, ‘특정 연구회 소속 여부’ 등 자의적 기준으로 판사 성향과 추천 순위를 분류했다.
실제 법원장이 행정처 ‘수족’ 구실을 한 사례도 확인됐다. 2015년 8월 김동오 당시 인천지법원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은 온라인 익명 법관 카페 ‘이판사판야단법석’ 개설자인 같은 법원 홍아무개 판사에게 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한 ‘경고장’ 수준의 공지글을 그대로 전달하고, 면담 내용을 행정처에 보고한다. 특조단은 “행정처가 공지글 초안까지 작성해 전달하는 것은 사법행정권의 지나친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농단 ‘무죄 예단’ 논란

법원장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법관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는 지난 5일 형사고발이나 수사 촉구 등이 법관과 재판 독립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의 인식과 같다. 법원장들은 한발 더 나아가 “합리적 근거 없는 재판 거래 의혹 제기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목소리까지 냈다.

법원 내부에선 이런 법원장들의 태도 자체가 ‘재판 독립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형사 조치를 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법원장 자신들은 ‘재판 거래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단정했다. 향후 검찰이 수사 또는 기소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근거 없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일선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는 “공개된 98개 문건 전문을 보면 재판 절차와 결론과 관련한 계획이나 전망을 담은 문건이 있고, 실제로 실행된 경우도 있다. 이마저도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근거를 내놓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힘 받는 법원장 임명 개선

98건의 사법농단 의혹 문건 전문이 추가 공개되기 전에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4일 공개)에서도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는 응답(63.9%)이 ‘신뢰한다’는 응답(27.6%)에 견줘 2배 이상 많았다. 한 판사는 “기수와 서열 중심의 수직적 의사소통에 익숙한 법원장들은 국민들이 왜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일선 판사회의 의결과 크게 동떨어진 의견을 냈다. 법원장 및 고법부장 인사제도 개선에 여론의 힘이 실릴 것 같다”고 했다. 사법발전위원회(위원장 이홍훈 전 대법관)는 지난 5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지방법원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는 소속 법관들의 의사를 반영해 해당 심급 법관 중에서 보임”하는 방안 등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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