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6월 07일 13시 37분 KST

북한은 어떻게 제재를 피해 러시아 사업가들과 거래를 해왔나

"우리는 서로를 친구처럼 대했다"

Tatyana Makeyeva / Reuters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비좁은 사무실의 선반에는 사업가 이고르 미추린이 그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인 누군가와 악수하는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다. 미추린이 ‘리’라고 부르는 북한 대사관 관계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북한 당국자들의 협상 기술, 국제적 경제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남는 부품이나 와인, 담배에서부터 노동자 고용 제안에 이르기까지 무역을 시도해온 방식에 대한 드문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자신이 보유한 두 개의 회사에서 2016년 기준 4200만루블(약 7억2000만원) 가까운 매출액을 기록한 이 러시아 사업가는 1년 전 미국 재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도운 곳이라고 지목한 북한 업체와 자주 거래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미추린은 북한과 거래를 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떤 법도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오랜 동맹에 뿌리를 두고있다. 북한은 옛 소련에 의해 건국됐으며, 소련은 독자 국방 장비 상당수를 북한에 공급했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들로 제재가 단행되던 시절에도 러시아는 이를 거부하곤 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제 적극적으로 제재 위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추린이 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2011년 무렵, 유엔 감시관들은 북한이 재고로 쌓여있는 이런저런 낡은 민간 장비들과 한물 갔거나 버려진 부품들을 가져다 미사일에 쓰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부품들은 옛 소련 동맹국들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

미추린이 북한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제품들이었다.

그의 회사 중 하나인 아디스-베어링스는 볼 베어링 무역에 특화되어 있다. 베어링은 기기의 움직이는 부분에 들어가 부드러운 움직임을 돕는 부품이다. 베어링은 군사적으로, 민간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어서 ”군민(軍民) 양용” 기술로 알려져 있다. 유엔 회원국들은 특정한 형태의 베어링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을 특별히 금지하고 있다.

미추린은 자신이 리에게 판매한 것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보통의 대량생산 제품, 남는 재고, 오래된 베어링”을 팔았다.

지난해 러시아 외무부는 미추린에게 북한에 판매한 것에 대해 물었으며, 당시 외무부 관계자는 자신들이 미국의 메시지에 응답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미추린은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나 미국 재무부는 이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Maxim Shemetov / Reuters

 

″불꽃”

큰 키와 흰 머리카락에 캐주얼 차림을 한 39세 미추린은 벨라루스 태생으로 공업용 베어링 무역을 하던 모스크바의 작은 회사에서 일한 뒤인 7년 전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그는 곧 아시아 고객들의 관심을 알아챘다.

″인터넷에 베어링을 팔겠다는 광고를 올리면 곧바로 항상 어떤 아시아인들이 나타났다.” 그가 올해 초까지 사업체를 운영했던 모스크바 남쪽의 사무실에서 미추린이 말했다. ”그들은 항상 다른 베어링을 샀고, 그것들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의 장례가 끝난 직후인 2011년 말, 미추린은 리가 자신을 북한 대사관에 초청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고인이 된 지도자의 초상화 앞으로 이어진 레드 카펫을 함께 걸었고, 헌화를 했다.

″우리 사이에 불꽃이 붙었다.” 미추린이 말했다. 그는 몇 번 더 대사관을 방문했다. 북한 노래와 춤이 펼쳐진 공연을 관람했고, 대사관 구내 북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으며, 대사관 접견실에서 협상을 했다.

미추린은 ”우리는 서로를 친구처럼 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모스크바에 가족,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있었고 우리는 만나서 가족 같이 친분을 나누곤 했다.”

2013년, 리는 북한 자선 기금에 1000달러를 기부하도록 미추린을 설득했다. 김일성-김정일재단이었다. 이 재단의 홈페이지는 러시아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으나,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는 이 재단이 김정일의 사망 이후 설립됐으며, (김일성의 시신이 영구보존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보존하고 ”교육, 공공의료, 환경보호”를 위한 기금 모금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됐다.

기부 대가로 미추린은 증명서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은 인류의 심장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증명서에는 두 지도자의 초상화와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리와 미추린의 거래는 소규모였다. 리는 누군가를 시켜 몇 십개의 베어링을 가져가곤 했다. 북한 측이 한 번에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한 거래는 10만루블(약 170만원)이 규모였다.

미추린은 ‘개인 사업자’로서 제품들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세법에 따르면 이 경우 공급자가 고객의 연락처를 꼭 확보하고 있거나 고객의 신원을 입증할 증명서를 입수하지 않아도 된다. 공급자는 고객에게 영수증만 발급하면 될 뿐이다.

″상점에서 빵을 살 때 여권이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미추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Maxim Shemetov / Reuters

 

공산주의

북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그의 증언은 다른 러시아 사업가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러시아 국영 군수품 제조업체에 전문적인 금속을 납품해 온 루벤 키라코시안은 모스크라의 무역 박람회에서 북한 외교관들을 만났고, 그 다음으로 대사관을 방문했으며, 북한 대표단이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아르메니아 담배와 와인에서부터 압연 알루미늄 및 철강에 이르는 여러 종류의 상품들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는 키라코시안 역시 지난해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있다고 지목한 조선단군무역회사(Korea Tangun Trading Corporation)에 금속을 납품했다는 이유에서다.

키라코시안은 자신은 아무것도 공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북한 측이 원했던 금속 제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들이 비현실적인 조건을 제시했었다는 것. ”북한사람들은 공산주의 체제다.” 키라코시안이 말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건 적절한 제안이 아니다.”

단군무역회사는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유엔주재 북한대사 측은 답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Tatyana Makeyeva / Reuters

 

다양화

미추린의 친구 리는 ”베어링 말고도 항상 돈을 벌 기회를 찾았다”고 미추린은 말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약 3년 전, 리는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고용하는 협력 업체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10만명에 달하는 북한 국외거주자들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에 머물며 한 해에 5억달러(약 5340억원) 가량의 임금을 보내 북한 정권의 자금 마련을 돕고 있다.

미추린은 건설회사를 세우고 령생무역회사(Ryungseng Trading Corporation)라는 이름의 북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령생무역이 북한에서 노동자들을 고용해 모스크바로 보내면 미추린이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미추린은 북한 노동자들을 건설 현장에 투입했다. 그 중 하나는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오를로프 지역의 주택 개발 현장이었다.

개발 업체 페크라-포크롭스코에 측 대변인 유리 일류슈킨은 미추린이 데려온 북한 노동자들이 ”심지어 러시아인들보다 훌륭했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괜찮았다”고 말했다. 

Maxim Shemetov / Reuters

 

″획득하려는 욕구”

미추린은 2015년 당시 리가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그해 말, 리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오거 러스에어로시스템즈(Augur RosAeroSystems)’라는 업체 임원진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 업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 국방 물품 조달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었다. 러시아 국방부 의뢰로 테스르를 진행했으며, 러시아군도 이 업체의 일부 제품을 사용했다.

북한인들은 경비행기로도 알려진 100만달러(약 10억원)짜리 비행선을 구입하는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했다. 미추린은 자신이 북한 측 대표단을 모스크바 북동쪽 베레스베트에 위치한 오거의 공장에 두 차례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상무이사였던 미하일 탈레스니코프는 자신이 재직중일 때 북한인들이 오거 측과 접촉해왔다고 확인해줬다. 그는 ”그들은 소형 경비행기 같은 걸 사고 싶어했고, 광범위한 협력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 측의 방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자신은 북한인들과 어떤 협상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레스니코프는 경비행기 그 자체는 군사 장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감시, 도청, 가스 탐지 같은 것들을 장착해 탑재 화물과 함께 묶으면 이미 군사적 또는 준군사적으로 쓸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끝내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거의 입장에서 ”국제적 제재에 반하기 때문에” 이건 너무 위험했다고 탈레스니코프는 말했다. 오거는 현재 다른 사업과 연관된 문제 때문에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미추린은 북한 측이 ”특별한 요구사항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 카피 의도, 북한 땅에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려는 욕구, 비표준 장비 및 비표준 크기의 비행선 요청.”

그는 그들을 ”매우 까다로운 고객들”로 묘사했다. ”돈은 없지만 동시에 (물건을) 획득하려는 욕구”를 지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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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의 복귀

2년 반 전, 리와 그의 가족들은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미추린은 말했다. 그가 떠나기 전, 그들은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모스크바 카페에서 만나 그들의 관계를 기념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미추린은 스스로를 모스크바 대사관의 무역 대표라고 소개한 또다른 북한 인사로부터 베어링을 비롯한 다른 제품들을 얻는 데 관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 대사관의 새 무역대표는 김주혁이라고 그의 동료 두 명이 말했다. 그는 이메일에 답하지 않았다.

미추린은 북한인으로 보이는 다른 아시아 고객들에게도 베어링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초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가 찾아왔으며 북한 측에 판매한 물품들의 목록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 뒤인 2017년 6월1일, 미국의 제재를 시행하는 미국 재무부 해외재산관리국(OFAC)은 미추린과 그의 회사를 제재 목록에 포함시켰다.

OFAC는 미추린이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기로 한 계약을 맺은 령생무역이 거래 금지 대상에 오른 단군무역의 해외 차명회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령생무역 측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추린은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이쪽에서 뭘 어긴 건 없다고 나는 거의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내가 왜 의심의 흔적을 남기겠는가? 법 때문에, 너무 많은 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다 따라갈 수는 없다. 내가 아무것도 어기지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