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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 오만인가 무능인가

‘부적절한 모의는 있었으나, 처벌 대상은 없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마지막 회의 일정을 지난 5월25일로 예고했을 때부터 이상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회의는 늦도록 이어질 것이고, 조사 보고서는 방대할 게 뻔했다. 곤혹스러운 일을 주말을 앞둔 ‘금요일 늦은 오후’에 알리는 일이 종종 있다. 전략 축에도 못 끼는 상투적 수법이다. 이번 발표가 그럴 사안인가 싶었다. 보고서는 밤 10시 넘어 공개됐다. 특조단은 ‘요약 과정에서 발생할 오류 등을 고려해 별도의 보도자료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부적절한 모의는 있었으나, 처벌 대상은 없다’는 취지였다. 대신 의혹을 더 키울 만한 문서 제목만 잔뜩 나열돼 있었다. 공개 시점과 방식, 내용 모든 면이 오만하고 고압적이었다.

특조단은 지난 2월12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직접 꾸린 조직이다. 법원 스스로 의혹을 철저히 밝히겠다며 외부 위원도 배제했다. 누가 조사 일정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103일이나 충분히 조사했다. 그런데도 조사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국민’에게 설명하는 절차도 없이, 한밤중 작전하듯 보고서를 내던진 것이다. 이런 불친절한 관료적 행태가 ‘사법불신’으로 퇴적되고 있는 걸 대법원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날 밤 퇴근하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사결과 평가’와 ‘후속 조처’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해 말씀드리기 어렵다. 결과를 면밀히 살펴 다음에 밝히겠다.” 이쯤 되면 ‘오만이 아니라 무능한 건가’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슷한 장면이 계속됐다. 특조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수사의뢰하거나 고발하거나 하는 조처를 할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았다”고 못 박았다. 법관 ‘뒷조사’ 문건이 있지만 불이익을 준 사례를 못 찾았고, ‘재판 거래’ 논란을 낳은 문건도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말 사이 여론이 나빠졌다. 김 대법원장은 보고서 공개 사흘 뒤 관련자 고발까지 포함해 “모두 고려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미 내부 엇박자가 드러난 뒤였다.
특조단이 고발이나 수사의뢰와 관련해 “행정처가 고발하면 ‘유죄 심증’을 주기 때문에 일선 법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반대하는 장면은 그중 압권이었다. 행정처의 결정이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법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관료주의에 찌든 ‘양승태 대법원’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인식이다.

김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을 포함해 두루 의견을 듣겠다고 시간을 또 끄는 것도 미덥지 않다. 자신의 책임 아래 꾸린 조사단이 결과를 내놓았으면, 이에 대한 판단과 후속 조처도 리더의 몫이다. 취임 1년도 안 된 김 대법원장의 법원 내 입지가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법원이 수사를 받을 수 있느냐’며 권위·특권 의식에 찌든 고위 법관이 여전히 법원의 주류인 것도 맞는다. 하지만 이번 일은 사법부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다. 김 대법원장이 봐야 할 곳도, 귀 기울여야 할 대상도 법원 내부가 아니다. 커지는 사법불신이고, 싸늘한 바깥 민심이다. 국민이 사법부 전체를 의심하는 형편인데, 전국의 법원장들과 판사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들어 뭘 어쩌자는 것인지 의문이다.

‘진상조사위원회’ ‘추가조사위원회’ ‘특별조사단’ 등 지난해 3월 이후 1년이 넘도록 이어진 세번의 조사는 그 성과가 작지 않았다. 자체 조사는 그걸로 충분하다. 모든 갈등과 의혹을 검찰과 특별검사 등에 떠맡겨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를 참 싫어하지만, 이번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김 대법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뼈와 살을 도려내야 하는 긴 고통의 시간”이 법원 바깥에서 찾아올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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