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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 모기는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을 좋아한다?

저소득 구역에 가장 많았고 고소득 구역에서 가장 적었다.

ⓒfrank600 via Getty Images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100년 동안 상어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1035명인데 모기에 의한 사망자 수는 하루에 1470명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게이츠는 2000년 자신과 아내 이름으로 된 재단을 세워 세계의 전염병 퇴치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몇해 전에도 “인간의 살인으로 한 해 42만5천명이 숨지는데 모기에 의한 감염으로 72만5천명이 사망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파리목 모기과에 속하는 모기는 3500여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에 서식하는 것은 56종이다. 하지만 사람한테 바이러스나 기생충을 옮겨 질환을 일으키는 모기종은 극히 일부다. 모기가 매개하는 감염병은 얼룩날개모기(아노펠레스속)에 의한 말라리아, 숲모기(아에데스속)에 의한 뎅기열·황열·지카바이러스, 빨간집모기(쿨렉스속)에 의한 일본뇌염과 웨스트나일열(WNF) 등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월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아 “2016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2억1600만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돼 44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주의 케리생태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모기 감염과 도시민 생활양식의 관계를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소는 주로 전염병 예측을 위해 설치류, 박쥐와 같은 동물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연구팀은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주택가격, 교육수준, 범죄율, 기대수명 등 사회경제적 조건별로 지역을 나눠 구역별 모기의 생태를 연구했다. 지역은 도시 평균소득(4만1천달러)과 비교해 낮은 2곳(저소득 구역), 비슷한 2곳(중위소득 구역), 높은 1곳(고소득 구역)을 선정했다. 연구팀은 2015~2016년 5월부터 10월까지 3주마다 사흘씩 이산화탄소와 옥테놀로 유인해 모기를 채집했다. 모두 2만551마리를 잡아보니 흰줄숲모기(73.1%)가 가장 많았고, 이어 빨간집모기(24.1%), 일본숲모기(2.4%) 차례였다.

연구팀은 모기 속에 남아 있는 충혈의 디엔에이를 분석해 모기가 어떤 숙주의 피를 빨아먹었는지 추적했다. 흰줄숲모기의 72%, 일본숲모기의 50%는 시궁쥐였다. 흰줄숲모기의 경우 나머지는 사람(14%), 집고양이(12%), 개(1%), 사슴(1% 이하) 등이었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나 저소득 구역에서는 인간 숙주 비율이 6%로 낮은 데 비해 고소득과 중위소득 구역에서는 50%에 이르렀다.

모기 수로 보면 저소득 구역에 가장 많았고 고소득 구역에서 가장 적었다. 모기에게 물린 사람도 저소득 구역에서 가장 많았지만 모기의 흡혈 숙주 중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중위소득 구역이었다. 케리생태연구소의 질병생태학자인 섀넌 러두는 학술지 <기생충과 매개체>에 실은 논문에서 “모기들은 선호하는 숙주를 찾아 물기보다는 접근이 쉬운 숙주를 문다. 따라서 모기의 흡혈 행위는 모기 유충들이 서식지로 사용하며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사람들이 야외활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숲모기류는 성장한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100m 남짓에서 서식하는 반면 집모기류는 수㎞까지 서식 영역이 넓다. 볼티모어시에는 1만6천여개의 빈 건물이 방치돼 있는데 모기와 다른 해충들의 좋은 서식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저소득 구역 주민들은 밀집된 주택 앞 포장된 지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데 비해 중위소득 구역 주민들은 공원이나 녹지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고소득 구역 주민들은 뒤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러두는 “감염병 전파 위험은 모기 같은 매개체가 얼마나 번성하고 인간을 숙주로 이용하는 비율이 얼마나 높으냐에 달려 있다. 중위소득 구역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최고로 나타났다. 모기 수는 고소득 구역보다 많고, 모기의 인간 흡혈 비율은 저소득 구역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 방법이지만 한국 연구팀의 분석에서도 모기에 의한 발병 분포의 도시지역 치중 경향이 나타났다. 고려대 지리교육과 김영호 교수 연구팀이 말라리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인문·환경 요인을 분석해 한국지도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분석 대상으로 삼은 12개 요인 가운데 소 사육 두수, 표준공시지가, 성비, 아파트 비율, 군사분계선 거리, 기후요소, 논 비율 등이 말라리아 발생과 상관관계가 높았다.

한국에서 1980년대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가 1993년 다시 등장한 이래 발병 사례가 2000년 4천여명에까지 이르렀다 줄어들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515명이나 말라리아에 걸렸다. 연구팀이 2001~2014년 말라리아 발생의 평균 중심점을 분석해보니 2001년 경기도 양주 근처에 있던 중심점이 점차 남서쪽으로 이동해 2014년에는 고양시에 위치했다. 기온·강수 등은 모기 유충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고, 기존에 강화도와 파주에서 이뤄진 연구를 보면 한반도에서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인 중국얼룩날개모기 유충의 50% 이상이 논에서 채집돼 연구팀이 기후요소와 논 비율을 말라리아 발생과의 상관관계 분석 요인에 넣은 것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연구팀이 중국얼룩날개모기가 사람보다는 대형동물에 대한 기호성이 훨씬 강하다는 점에서 소 사육 두수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흥미롭다. 표준공시지가는 주택 수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성비는 군인과 야외활동 비율이 높은 남성의 발병률이 여성에 비해 2.5배 높다는 점에서 분석 대상에 들어갔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 한국 말라리아 발생이 기후요소보다는 소 사육 두수와 아파트 비율 등 역학적, 사회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4년 기후요소가 말라리아 발생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화했음에도 말라리아 환자 발생(638명)이 전년(445명)보다 증가했다. 또 말라리아 발생은 2001년 환자의 43%가 동 단위 거주자, 34%가 면 단위 거주자였던 데 비해 2014년에는 동 단위가 70%, 면 단위가 19%로 변했다. 아파트 비율이 높은 경기 북서부를 중심으로 말라리아 분포가 집중되고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는 말라리아가 초기에 전방지역의 군인을 중심으로 전파됐지만 토착화 양상이 강해지면서 점차 민간인 환자 비율이 증가하고 휴전선 인근이 아닌 지역에서 발병이 나타난 사실을 반영한다. 말라리아의 효율적인 방제와 박멸을 위해서는 말라리아 발생의 공간적 분포 변화와 지리적 요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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