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 사무장이 혼자 싸우느라 힘들었다.”
대한항공 소속 운항 승무원 2명과 남녀 객실 승무원 3명이 ‘벤데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유가 뭘까.
이들은 5월 30일 익명으로 진행된 <비비시>(BBC) 코리아 인터뷰 대한항공 직원들, ‘회장님은 왜 대국민 사과만 할까요’에 출연해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담담히 증언했다.
영상 속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박 사무장은 한때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 선망받는 직원이었다.
인터뷰에 나선 한 객실 승무원은 “(땅콩 회항 사건 전에) 박 사무장은 오히려 잘 나가는 분이었다.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씨가 해외를 가면 불려 나가는 전담팀에 소속된 분이었다. 그만큼 인정받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박 사무장을 바라보는 내부 분위기는 달라졌다.
익명의 운항 승무원은 “‘(박 사무장이) 미국 변호사를 선임했다더라’, ‘돈(보상)을 좇고 있다’, ‘이상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는 등 이런 내용의 루머가 (대한항공 내부에서) 엄청나게 돌았다”며 “회사에서 언론 플레이를 진행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월 박 전 사무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직위를 다 잃고, 마치 회사를 욕 먹인 사람처럼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직원들에 따르면, 회사 쪽이 박 전 사무장의 동료들을 회유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의 객실 승무원은 “(회사에서 박 사무장과) 같은 클래스에서 서비스하던 승무원들을 회유해서 ‘박창진 사무장님만 나쁘게 말해라. (회사 쪽에서) 너희 진급 시켜줄게’라고 했다고 알고 있다. 지금 그들은 이름도 개명하고 다 진급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인터뷰에 나선 직원들은 박 전 사무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 운항 승무원은 “(대한항공) 직원들이 그동안 너무 박 사무장을 외롭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직원들이 박 사무장에 대해 오해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 사무장의 편에 서는 사람은 모두 박 사무장과 같은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며 “그렇게 회사에서 찍힌 분들은 국제선을 타지도 못하고 국내선만 몇 년씩 타다가 지금 정년 바라보는 분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운항 승무원도 인터뷰에서 “박 사무장이 혼자 싸우느라 힘들었다. ‘내가 먹고 살려면 이런(박 전 사무장의 상황을 외면하는) 건 다 감내해야 한다. 다른 회사도 다 똑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순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며 “(최근 조현민 전 전무의 ‘물세례 갑질’ 사건 뒤) 시민들이 남긴 (기사) 댓글을 보고 많이 반성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구나. 자발적 노예임을 스스로 자처한 게 아닌가?”라고 씁쓸해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직원들은 한목소리로 조양호 회장 일가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총수 일가는) 직원들에게 한 번도 사과해본 적이 없다. 땅콩 회항 사건 때도 (총수 일가는) 영혼 없는 대국민 사과만 했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직원들은 안중에 없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조 회장 일가 모두 반성하고, 대한항공 직원들한테 사과해야 한다. 너무나 큰 잘못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직원들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