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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게르마늄이 몸에 좋다? 이런 ‘비과학’ 왜 유행했을까

사이비 과학의 문제와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라돈 침대’ 사태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방송사와 정부 사이에 위험성 유무 논쟁이 일어나고, 국민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방사능 피폭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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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은 퀴리 부인이 발견한 방사성원소 라듐이 붕괴해 생성되는 방사성 기체다. 라돈의 모체인 라듐은 20세기 초엽 방사능이 건강에 좋다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성행하는 가운데 초콜릿·생수 같은 먹을거리와 좌약·콘돔 등에까지 첨가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런 제품을 사용하다 건강을 해치고 죽는 일이 생겨나고 방사능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사라져갔는데,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는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한국에선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라돈탕’ ‘라돈온천’을 들어봤을 것이다. 신경통이나 류머티즘에 좋다며 라돈 성분이 든 온천에서 수증기와 함께 떠다니는 라돈 기체를 마심으로써 방사선을 쬐는 것이다. 아직도 성업 중인 곳이 있는데, 미량의 방사선을 가끔 쬐는 것이기에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엄연히 담배연기·석면·벤젠과 함께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한다.

음이온은 몸에 좋다?

이번 침대 사태에서 라돈의 위해성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니 좀더 기다려보자. 그 전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라돈 함유 물질을 침대에 사용하게 된 배경이다. 이 물질은 가루 형태로 이른바 음이온을 방출한다고 주장한다. 음이온은 공기를 정화하고 산성화된 혈액을 중화하며 항산화 작용을 하고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키며 신진대사 촉진, 집중력 강화 등 온갖 효능이 있는 것으로 선전되는데,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동시에 음이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Photitos2016 via Getty Images

 

음이온은 화학 혹은 물리학 용어로, 원자가 이온화하며 전자를 얻은 상태다. 원래 원자는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과 음전하를 띠는 전자가 만나 전기적 중성을 유지하는데, 여기에 전자가 더 끼어들어 음전하 상태가 된 것이 음이온이다. 즉, 마이너스 전하를 띠는 원자다. 음이온은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만 구성된 수소 외에 거의 모든 비금속과 준금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장치는 도대체 어느 원자의 음이온이 나온다는 걸까? 그런 설명도 없이 마치 음이온이 하나의 개별적 물질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설사 유익한 음이온이 나온다 쳐도, 우리 몸은 원래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몸속에 음이온이 많아질 수 없고, 산성화된 혈액을 중화한다는데 혈액이 산성이면 애당초 우리는 살아 있을 수도 없다. 공기 1mm 속에 3천 조 넘는 산소와 질소 분자가 있기에 기계 장치로 아무리 많은 음이온을 만들어도 공기 중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다. 이렇듯 ‘음이온 효과’는 대부분 근거 없고 비과학적인 것들이다.

이런 음이온 제품들의 주원료이자 이번 라돈 침대에도 사용된 방사성물질 ‘모나자이트’는 음이온 팔찌나 모자, 심지어 생리대에까지 사용되고 있기에 비록 미량이라도 그 유해성 여부를 확인해야 마땅하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에 따르면 음이온 공기청정기 같은 기계 제품들이 만들어내는 건 사실 음이온이 아니라 오존이다. 오존이 살균·탈취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을 음이온 발생기로 쓰면 효과가 없음은 물론, 실내에서 오래 작동시키면 오존 농도가 위험수위를 넘기도 한다. 오존은 자극성과 산화력이 강한 기체이기에 감각기관이나 호흡기관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고,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특히 위험하다. 굳이 방사선을 내뿜지 않더라도 또 다른 건강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오존 농도 높여 오히려 위험할 수도

최근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게르마늄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자연 상태의 게르마늄은 음이온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으며 몸속으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몸에 이롭다는 증거조차 없다. 그런데도 통증, 관절염, 백내장, 간기능 장애, 심지어 백혈병조차 완화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게르마늄이 원적외선을 방출한다는데, 가열하지 않은 일반 게르마늄에선 원적외선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원적외선 자체도 일반 열보다 80배나 깊은 피부 심층 4∼5cm에 침투해 세균과 암세포를 죽이고 혈관과 뼛속까지 침투해 치료하고 신진대사가 높아지고 혈전을 분해하고 체질을 산성에서 약알칼리성으로 개선하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 모두 아무 근거가 없거나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일단 몸속 깊이 침투한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피부 표면 0.2mm, 즉 각질 부위까지만 침투해 사실상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Evgeny Gromov via Getty Images

 

그렇다면 만병통치에 가까운 효능을 버젓이 주장하는 사이비 제품들이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일본 쪽에서 근거 없이 유행하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음이온과 게르마늄은 십수 년 전부터 일본에서 건강 물질로 각광받았다. 2002년 일본 유수의 전자제품 회사인 히타치는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컴퓨터까지 출시했다. 2006년께 일본에서 음이온이 아무 효과도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후 히타치는 자사의 음이온 컴퓨터 출시에 대해 사과했다.

결국 라돈 침대 사태의 배경에는 이렇듯 아무 효과도 없는 비과학적인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마케팅에만 활용한 일부 업체들의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전혀 효과가 없는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며 안전하지 않은 방사성물질을 대거 사용했고, 그 결과 건강 증진은커녕 많은 소비자가 방사능에 피폭되는 결과를 낳았다. 방사성물질을 허술하게 관리한 정부의 감독 체계와 건강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맹신도 이를 부추겼다. 피폭량 정도나 유해성 여부를 떠나 이 현상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과학으로 점철돼 있다.

한때 ‘침대는 과학’이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했다. 그 문구를 쓰던 업체는 이번 일에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여하튼 과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늘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돼 거의 상식이 되어 있음에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투성이다. 단지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것이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는 일도 많다.

사회 깊숙이 침투한 사이비 과학

잘못된 개념과 관점, 거짓 제품이 판치는 가운데에서는 진정한 과학과 합리성, 양질의 제품이 설 자리는 오히려 좁아진다. 그래서 라돈 침대 사태의 해결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 깊이 침투한 사이비 과학의 문제와 실태를 정부와 언론, 과학계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손을 놓고 있다면 제2, 제3의 라돈 침대가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나 국민 건강을 위협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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