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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이식한 남편의 대변이 내 생명을 구했다

내 대변에서는 남편의 것과 똑같은 냄새가 났다!

ⓒRyanKing999 via Getty Images

내 몸에 타인의 대변을 넣는다는데 내가 동의할 거라고, 적극적으로 반길 거라고 예전에 누가 말했다면 나는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생명이 달려있을 경우, 기분이 나쁜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2011년 5월, 나는 치아가 감염되어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게 되었다.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면역 억제제를 먹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쉽게 감염이 되었다.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강한 항생제를 먹는 동안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에 더욱 취약했다. 나는 항생제 때문에 감염 걱정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닥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였다.

치아 감염 때문에 일주일 동안 클린다마이신을 복용했다. 몇 주 뒤 나는 묘한 장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첫 증상은 어느 날 새벽 4시에 깨어나 변의를 느낀 것이었다. 변기에 앉자 설사가 찾아올 것 같고 토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갈라짐(fissure)과 치질을 앓아봤지만, 직장과 주변 부위에서 처음 느껴보는 심한 통증을 겪었다. 다음 날 낮까지는 통증이 가라앉아서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자 피가 섞인 짙고 검은 점액질이 나왔다. 이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호러 영화나 의학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것 같았고,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

의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날은 나를 봐줄 수가 없다며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응급실 의사는 내 증상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해 전문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그 전문가는 위장병 전문의가 아니라 외과의였다. 나는 어쩌지도 못하게 되었다. 실망과 공포를 느꼈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의 가장 흔한 증상인 설사는 없었기 때문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몇 주 뒤에도 욕지기, 경련통, 대변 속 점액질, 식욕 감퇴, 골반 부위 전반의 통증 등의 증상은 그대로였고, 나는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다. 화장실 바닥에 웅크리고 누운 채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나는 결국 응급실에 갔다. 그때 의사들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가능성을 처음으로 이야기하며 내게 테스트용 대변 샘플 제출을 요청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나는 후라질(Flagyl 메트로니다졸) 처방전을 받아들고 퇴원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치료에 제일 먼저 사용하는 항생제다. 당시에는 나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이 얼마나 심각한지, 치료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테스트 결과를 전화로 알려왔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양성 반응이 나왔다.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주 동안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려니 했다. 앞서 말한 면역 억제제 때문에 보통은 2주 동안 복용하는 약이지만 나는 4주 동안 먹어야 한다고 병원에서는 말했다. 곧 몸이 나아졌고,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때문에 미뤄왔던 다발성 경화증 약 복용도 계속할 수 있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약 복용 이후 며칠 뒤에 다시 증상이 찾아왔다. 의사는 테스트를 위해 다시 대변 샘플을 가져오라고 했다. 대변 샘플 채취 솜씨가 꽤 좋아진 나는 작은 버터 용기를 잘 씻어서 대변을 담고 갈색 종이 봉투에 넣어 대수롭지 않은 양 병원 연구실에 제출했다. 다음 날 나온 결과는 양성이었다. 나는 또 한 달 동안 후라질을 복용했다. 이번에는 증상이 더 심했다. 후라질의 부작용(욕지기, 복통, 경련통, 두통, 구갈, 쇳내, 어지러움)도 참기 힘들었다. 당시 나는 약 22주 동안 위장과 대장 증상을 겪고 있던 터였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과 치료 둘 다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후라질 복용이 끝나고 불과 며칠 만에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이 기승을 부렸다.

이번에는 후라질이 듣지 않을 때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치료에 쓰는 다른 항생제인 IV 반코마이신의 합성 내복약을 처방받았다. 2주 동안 복용한 뒤 일주일 쉬었다가 재발하여 다시 처방받고 2주 동안 더 먹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재발할 때마다 더 심해지는 것 같았고, 내성도 강해지는 듯했다. 선택지가 점점 줄어갔다. 내 몸은 감염에 맞서 싸우지 않았고, 장기들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탈모가 시작되었고 원래 마른 몸에서 체중이 더욱 줄기 시작했다. 평생 그렇게 심하게 앓았던 적이 없었다.

감염 때문에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에 질린 나는 다른 사람들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에 어떻게 맞섰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대변이식을 알게 되어 정말 놀랐다. 결장경 검사 같은 절차를 거쳐 문자 그대로 한 사람의 위장관에서 대변을 다른 사람의 위장관으로 옮기는 시술이었다. 기증자의 대변 샘플에 식염수를 섞어 걸쭉하게 만든 다음, 튜브를 써서 환자의 항문을 통해 주입한다. 기증자의 대변 속에 있는 건강한 박테리아가 환자의 감염된 대장에 들어가 번식하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사실 멋진 아이디어이긴 하다. 인체에 필요한 수백만 마리의 건강한 박테리아를 보충하기 위해, 실제 박테리아를 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반코마이신을 두 번째로 복용하는 동안 다시 한 번 재발이 일어났다. 나는 의사에게 대변이식을 시도해볼 수 있을지 물었다. 위장병학자인 그가 대변이식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나는 놀랐다. 그는 좀 알아본 다음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몇 주 뒤 의사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 증상이 처음 시작된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의사는 대변이식을 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즉시 하겠다고 했다.

그뒤로 몇 달 동안 후라질과 반코마이신을 함께 복용했다. 의사가 대변이식 준비 작업을 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버티기 위해서였다. 의사는 대변이식 경험이 있는 다른 주의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배우며 내가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기증자는 남편이었다. 우리는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함께 하기로 한 사이이지 않은가?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제 당신은 남편에게 ‘똥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라는 말은 영영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몇 달 동안이나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준비가 끝나고, 남편이 대변을 통해 내게 옮길 질병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혈액 검사도 마쳤다. 나는 2012년 3월 2일에 대변이식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걸쭉한 액체를 만들기 위한 새 믹서를 사라고 했다. 남편에겐 시술일 아침에 대변을 채취하여 가져오라고도 했다. 나는 결장결 검사 준비와 같은 준비를 했다. 건강한 박테리아가 들어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내 위장관을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병원 최초로 대변이식을 받는 환자였다. 어쩌면 유타주 최초였을지도 모른다. 그 날 오전에 의사가 휘파람을 불고 미소 지으며 내 병실에 들어왔던 게 기억난다. “오늘은 우리 두 사람에게 아주 길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술을 기대하고 있었고 성공을 바랐다.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다면 대변이식을 통해 호전될 수 있는 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변비에 걸려 고생하다가 마침내 볼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를 말고는 똥 때문에 그렇게 신나 하는 사람은 정말 처음 보았다. 나는 몸이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흥분했다. 죽음을 피할 수도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부터 기분이 훨씬 좋았다. 경련통과 통증은 사라졌고 배가 출출했다. 즉시 나은 것이다! ‘치료제’를 최대한 몸 안에 오래 두어야 했고,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가 변을 보았더니 모두들 너무나 황홀해 했다. 시술 후 처음으로 대변을 보았을 때의 냄새에는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내 대변과 방귀에서는 남편의 것과 똑같은 냄새가 났다! 남편이 방귀를 뀌면 난 그냥 거리를 두면 되지만 내 자신에게서 거리를 둘 수는 없었다! 지독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하지만 낫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대가였다. 불안하고 좀 역겹긴 해도, 그의 박테리아는 제 구실을 했고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나중에 의사는 대변의식이 잘 되지 않았다면 내 결장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에 완전히 장악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장기가 하나둘씩 기능을 멈춰 내가 죽게 되었을 것이라 했다.

대변이식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의사가 내 말을 듣고 필요한 절차를 취해 주어 감사하다. 대변이식은 아직 상당히 실험적인 시술로 간주되고 있고 전문의들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치료이지만, 성공률이 아주 높고 다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방편이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나 역시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겪어본 입장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알길 원한다. 누군가에겐 생사가 갈리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변을 몸 안에 넣는다고 생각하면 역겹지만, 내 남편의 똥이 문자 그대로 내 목숨을 구했다.

*허프포스트는 이 기사에서 다룬 치료의 효과를 지지하거나 일체의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의료 관련 이슈가 있다면 전문가에게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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