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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조민기 죽음 후, 피해자들은 '죽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 김현유
  • 입력 2018.05.30 16:36
  • 수정 2018.05.30 16:41
ⓒNurPhoto via Getty Images

“고 조민기 교수에 대한 성폭력 고발은 올해 갑작스럽게 터진 것이 아닙니다. 2014년부터 그 문제를 조교나 선배와 상의했는데도 ‘불러도 가지말라’는 식의 대책없는 조언만 들었고, (조 교수의) 개인적인 연락을 피하면 과 사무실을 통해 연락을 받았습니다. 2016년 (관련 문제로) 학과 교수 총회가 열렸지만 (조 교수의) 성폭력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못된 소문’으로 치부돼 어떠한 조치도 없었습니다. 2017년, 피해자가 청와대 신문고에 조 교수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투고했고 교육부로부터 연락이 오자, 조 교수는 전현직 조교를 통해 고발자를 물색했고 피해자 신상이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들은 여러 차례, 여러 방법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된 채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 ㄱ씨

‘#미투’는 계속 되고 있다. 용기를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했지만 학교도, 직장도, 사회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제5회 ‘이후 포럼’에 참석한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 소속 ㄱ씨는 “조민기 교수의 자살 소식이 보도되자 오히려 피해자들이 무분별한 비난과 욕설의 대상이 됐다. ‘밤길 조심하라’, ‘죽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대학 환경을 만드는 건 모든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공공의 영역인데 왜 피해자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죄인이 돼야 하냐”라고 반문했다.

ㄱ씨는 “학교에 진상규명과 전수조사를 요구했으나 교수진들은 재학생의 심리적 안정과 학교 내부 상황을 이유로 들며 여전히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속적으로 2차 가해를 받고, 사회와 일상에서 소외받는다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건 피해자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마저 피해자가 전부 전가 받았다”며 “학교의 진상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촉구했다.

29일 오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이후 포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29일 오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이후 포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미투’를 한 뒤 형사·민사 소송 단계에 돌입해도 피해자들은 벽에 부딪힌다. 현재 한 지역 시설공단 내 성폭력 사건을 맡고 있는 김유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브라이트)는 이 자리에서 “한 개인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 사실을 구제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경험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해당 가해자가 직장 상사로 계속 근무하는 상황에선, 피해 사실을 알고 있던 직장 동료도 수사 단계에서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피해자 역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염려돼 사건 발생 직후에 바로 고발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즉각 대응하지 못한 점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한 약점으로 작용한다고도 했다. 김유리 변호사는 “직장 내 성범죄는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전문지식 없이 자체 해결하려고만 하면 피해 사실이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다. 초반부터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등 전문적이고 신속한 대응방안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 과정에도 2차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교육과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투’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는 지난 3월8일 출범한 뒤 현재까지 공공부문 432건, 민간 부문 250건(5월 22일 기준)의 사건을 접수받았다고 밝혔다. 특별신고센터는 피해자 관점에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를 지원하고, 사건 발생기관과 감독기관에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을 요청한 뒤 후속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에 근무하는 추국화 상담원은 “1977년, 1983년, 1995년 사건 신고도 들어온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법적·제도적 지원 방안의 한계가 분명하다”면서도 “‘내가 피해자라면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란 관점에서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 방안을 실제로 이행하는지 결과를 지속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전체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신고센터를 통해 성추행 사실을 고발한 비정규직 교사 ㄴ씨는 “가장 필요한 건 조직문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다. 지금은 가해자가 힘이 셀 경우 대부분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외면하거나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 경우가 그랬다”며 “만약 가해자를 외면하고 가해자를 저지하는 분위기였다면 아예 그런 성추행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ㄴ씨는 또 조직이 침묵하지 않도록, 조직 관리자가 성폭력 피해 신고를 적극적으로 받고 가해자를 처벌했을 때 해당 조직에 상점(인센티브)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기력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 용기 있고 당당한 목소리를 소개하고 싶었다”는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신고 센터를 운영해오면서 사회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변 진흥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지게 됐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며 “‘피해자들이 어떻게 삶을 다시 행복하고 유쾌하게 이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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