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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를 뒤흔든 이탈리아 정계 다툼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곤 말하지 않았다

  • 박세회
  • 입력 2018.05.30 17:17
  • 수정 2018.05.30 18:00

이탈리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걸까?

최근 이탈리아 정계의 지각 변동이 대륙을 건너 뉴욕 증시는 물론 우리나라 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연합뉴스는 뉴욕증시가 29일(현지시간) 오전 이탈리아 정세 불안과 미·중 무역갈등에 출렁였다고 보도했으며, 서울경제 등은 30일 오전 한국 코스피 지수가 증시가 오전에 잠시 하락세를 보였다고 전한 바 있다. 

불씨의 정체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 가장 과격한 정권의 탄생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며 어쩌면 이 정권이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네 번째로 큰 이탈리아를 유로존 밖으로 끌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반기성 정치 정당 ‘오성운동’(Five Stars Movement)이 최대정당으로 올라서고, 극우 정당 ‘북부동맹’(Northern League)과 연정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

오성운동의 대표인 31살의 디 마이오.
오성운동의 대표인 31살의 디 마이오. ⓒAlessandro Bianchi / Reuters

최대정당 ‘오성운동’

지난 3월 4일(현지시간) 있었던 이탈리아 총선에선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 집에 살고 있던 31세의 대학 중퇴생 루이지 디 마이오가 10년도 되지 않은 9년 차 정당 ‘오성운동‘을 이끌고 단일 정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은 것. 정당명 ‘오성’(Five Stars)의 연원이기도 한 수자원,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의 5가지를 주요 의제로 삼는 이 정당은 이번 총선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보장, 환경 일자리를 통한 청년 실업률 감소 등을 주장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다만 서방 매체들은 내부적으로는 분배의 목소리를 강조하면서도 반이민 정책, 유럽연합 탈퇴 등을 주장하며 ‘자국 우선주의‘의 목소리를 내는 이 정당의 정체성을 ‘포퓰리즘’으로 정의했다.

이들은 단일 정당으로 32.7%의 득표율로 1위를 하기는 했지만, 하원 630석 중 227석, 상원 315석 중 11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연정 없이 정부를 구성할 순 없었다.

한편 연합으로서 1위를 차지한 ‘우파 연합’ 역시 37%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형제들’, ‘가톨릭 정당’ , ‘북부동맹’이 모인 이 중도 우파 성향의 연합 중에서는 이탈리아 북구 지역에서 폭발적 지지를 받은 ‘북부동맹’이 17.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단일 정당으로서도 신풍인 오성운동, 집권당인 민주당의 뒤를 잇는 3위의 성적이었다.

북부동맹의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의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Tony Gentile / Reuters

포퓰리스트 정당과 극우 정당의 연정

과반의석을 확보한 정당 없이 ‘헝 의회’(hung parliament) 상태에 빠지자 연정의 쪽지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열쇠를 쥐고 있는 세 개의 정당은 오성운동(32%), 민주당(19%), 북부동맹(17%). 이탈리아의 정치 체제에서 정부 구성을 위한 하한선은 40% 정도로 본다.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과 오성운동의 연정 가능성이 제일 높을 것으로 점쳐졌으며, 실제로 오성운동의 대표 디 마이오가 민주당에 구애까지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중진 마테오 렌치 전 대표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제시된 것은 ‘포퓰리즘’ 성향을 공통으로 가진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의 연합.

그러나 이 역시 도덕성을 중심 가치로 내세운 오성운동이 북부동맹에게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 등의 추문을 달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우파연합’과 의절할 것을 요구하며 물 건너 가는 듯했다.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유권자들에게 우파연합으로 평가받았다”며 이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후 ”어쩔 수 없이 7월 초에 조기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오며 거의 두 달간을 무정부 상태로 지내다가 갑작스러운 변화가 감지된 것이 바로 이달 초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의 연정 소식이었다.

세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7일 각 정파의 수장들을 불러 중립 인사에게 총리를 맡기고 중립 내각을 꾸려 연말까지 정부를 맡기고, 급한 불을 끈 후에 2019년 초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안하자 불과 이틀 후인 9일 양당의 대표가 만났다는 소실이 들렸다.

9일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와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가 로마에서 직접 만나 연정 가능성을 조율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나흘에 걸친 협상 끝에 14일 합의 내용을 들고 대통령 궁을 찾아 승인을 요청했다.

 

유럽연합 탈퇴의 움직임

유럽 언론은 이 연정의 탄생을 ‘극우 포퓰리즘’ 정권의 탄생이라 정의했으며, 허프포스트 이탈리아판이 입수한 연정 계약의 초안을 보면 여지없이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연정의 기치를 ‘변화의 정부’로 정한 두 정당은 초안에서 ”망명지를 찾는 이민자들의 이주를 강제적으로 할당하는 더블린 조약의 개정을 위해 이탈리아가 유럽 연합 협상의 테이블에서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방안을 찾는다”는 등의 반이민 조항이 포함되어있다. 또한, 유럽의 단일 통화 정책에서 빠져나갈 방안을 찾을 것과 이탈리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참여 비중을 낮추고 의무 백신 접종을 없애는 등에 합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탈리아 남부 빈곤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북부의 반이민 정서에 불을 지펴 창당 이후 최대 득표율을 기록한 극우 정당 북부동맹이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고 결국 ‘위대한 이탈리아를 위하여’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5월 29일 전 국제통화기금 고위급 관료 출신인 카를로 코타렐리(좌)가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우)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의 대통령궁을 찾았다.
5월 29일 전 국제통화기금 고위급 관료 출신인 카를로 코타렐리(좌)가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우)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의 대통령궁을 찾았다. ⓒHandout . / Reuters

연약한 신사 마타렐라의 강단

이탈리아의 포퓰리스트-극우 연정이 유럽연합 탈퇴를 꾀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 주가는 지난 주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로 총리를 맡겠다며 다투던 디 마이오와 살비니 양당 대표가 한발씩 물러나 절충안으로 행정법 교수이자 정치 신인인 주세페 콘테(54)를 선택하고 지난 23일(현지시간) 마타렐라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하며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지난 27일 제동이 걸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레이(회색)‘, ‘투명인간’ 등으로 불리는 마타렐라 대통령이 총리 지명자가 구성한 내각 중 파올로 사보나 재무장관 후보의 지명을 거부했다. 이탈리아 행정부의 실질적 권한은 내각의 수장인 총리가 쥐고 있으나, 대통령에게는 이 내각을 지명하고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 거부권 행사로 콘테 총리 역시 ”‘변화의 정부’ 내각의 조직을 그만둔다”며 사퇴 의사를 표했다. 반유럽 성향의 재무장관 낙마 및 포퓰리스트 연정의 실패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마타렐라 대통령의 용기와 큰 책임감을 환영한다”라며 지지의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29일 자신의 자문 역할을 해오던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고위 관료 출신 카를로 코타렐리를 과도 내각을 이끌 총리로 지명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보면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대표는 ”슬픈 사실은 공화국의 대통령이 이탈리아 국민보다 유럽 시장의 이익을 택했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디 마이오는 ”우리는 유로존을 떠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속고 있다”라며 ”조기 총선이 치러진다면 지금의 대통령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을 통해 과반의 세력을 확보하고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디 마이오는 금융권 입김이 개입되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마타렐라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명확히 하자”라며 ”정부가 금융권 로비와 신용 등급에 따라 결정되는 거면 우리가 왜 투표를 하러 가나”라고 밝혔다.

한편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4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지만, 그리스에 이어 2번째로 가장 큰 채무를 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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