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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국 정부에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미리 통보하지 않은 이유

전격 취소 결정의 내막.

  • 허완
  • 입력 2018.05.25 16:33
  • 수정 2018.05.25 17:1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한 24일 오전(현지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중이었다.

그는 23일 밤부터 이날 아침까지 이어진, 회담 취소를 논의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식 발표에 앞서 이 내용을 다른 국가들에게 통보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우리가 누구에게 통보했는지 밝히고 싶지는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 부분은 백악관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사전에 통보를 못 받았다는 보도가 있다’는 질문에는 한국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Win McNamee via Getty Images

 

‘극도의 보안’

워싱턴포스트(WP)NBC뉴스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결정한 과정의 내막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 결정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뉴스가 먼저 흘러나올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 때문이었다.

N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회담 보류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한 건 23일 저녁이었다. ”북한이 (회담 취소를) 선수 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취소하는 게 자신이 되길 원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NBC에 말했다.”  

7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WP는 24일 동이 틀 무렵부터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백악관에 모였다고 전했다. “7시가 되자, 관계자들은 아직 관저에 있던 트럼프와 전화로 여러 옵션들을 논의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취소하겠다는 신속한 결정과 함께 집무실에 도착했다.”

보도에 따르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 새라 샌더스 대변인, 닉 에어스 부통령실장, 조 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 미라 리카르델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은 종종걸음으로 사무실들을 오가며 이 결정을 발표할 계획을 마무리했다. 

WP는 백악관이 다른 국가에 이 소식을 미리 알리지 않기로 한 데에는 뉴스가 미리 새어나갈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가 깔려 있었다고 전했다.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 이는 이날 발표의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으로도 보인다.

다만 백악관 일부 측근들은 동맹국들에게 무례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따라 타국 외교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소식을 공개적으로 밝힌 오전 10시경, 기자 및 일반 대중과 똑같은 시점에 회담 취소 사실을 접했다. 청와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메시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볼턴의 조언

WP는 최근 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 측이 보여준 불성실한 태도가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두 차례나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논의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북한에 회담 무산의 책임을 돌렸다.

그는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들에게 최근 미국이 ”보낸 질의들에 대한 응답을 북한으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발신음만 잔뜩 들었다”는 것. 

또 실무 협의를 위해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던, 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미국 측 준비팀은 만나기로 했던 북한 측 대표자들에게 ‘바람’을 맞았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그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바람맞힌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5월24일)

또 트럼프 정부 내 일부 관계자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트럼프에게 심은 뒤 회담을 바람 맞힐 경우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 고위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에 따라 측근들은 지난주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해왔다고 WP는 전했다. 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들뜬 기대를 가라앉히는 역할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맡았다. 

ⓒKevin Lamarque / Reuters

 

WP가 인용한 관계자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23일 밤 10시경,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성명을 트럼프에게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협적 언사들이 매우 좋지 않은 신호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북한의 호전적인 레토릭에 깜짝 놀란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에서 발을 빼 미국을 ‘필사적인 구혼자’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책략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를 치기로 결정했다는 것.

NBC 역시 회담 준비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의 결정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 바로 볼턴 보좌관이라고 전했다. 볼턴은 북한이 공개적으로 지목하며 비난했던,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을 주장하곤 했던 ‘슈퍼 매파’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NBC는 이번 결정 과정에서 폼페이오와 볼턴의 대립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전했다. 북한과의 대화 과정을 주도했던 폼페이오 장관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진전을 망치고 있다며 볼턴 보좌관을 탓했다는 것. 

특히 두 사람은 회담이 처음 제안됐을 때부터 의견대립을 이어왔다고 한 고위 관계자는 NBC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처럼 측근들을 경쟁시키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긴 하다.

다만 북한이 극도로 경계했던 볼턴이 결과적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코리 가드너(공화당, 콜로라도) 상원의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말투가 그대로 묻어났던,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을 받아적은 것은 바로 볼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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